오익제씨 입북 사건과 관련한 방송 보도는 언론이 지양해야 할 문제점들을 총체적으로 보여주었다. 과거 성숙되지 못한 정치, 사회적 여건 속에서 방송이 소모적인 사상 논쟁의 선봉 역할을 해왔던 악몽이 이번 사건을 통해 되살아 났다.

오익제씨 입북 사건을 다루는 데 가장 큰 문제점은 역시 ‘핵심 비켜가기’식 보도다. 언론은 당연히 오씨가 왜 입북했으며, 이 과정에서 국가 안보 기관은 적절하게 대처했는지, 그리고 안보에 허점은 없는 지를 집중적으로 따져야 했다. 그러나 방송 보도는 엉뚱하게 정치권의 공방 쪽에 일방적인 무게를 뒀다.

‘색깔 논쟁’이라는 단어의 표현 자체도 적절성 여부를 따져야 하겠지만, 방송은 ‘색깔 논쟁’이라는 말을 내세워 소모적인 싸움을 부채질했다. 8월 16일 오익제씨 사건이 발생한 이후 매일 주요 뉴스의 톱 블록에 ‘또 색깔 논쟁’ 또는 ‘막가는 색깔 공방’ 등 천편일률적인 내용을 반복해 편집함으로써 언론의 사명이라는 차원에서 직무 유기에 가까운 한계를 드러냈다.

심지어는 주요 뉴스에서 오씨에 대한 ‘수사 속보’보다 ‘정치권의 공방’이 우선 순위로 편집돼 나간 경우도 있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논쟁이 사안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음을 현장 기자들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기계적으로 기사를 송고하고 이 내용이 곧바로 뉴스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판단컨대, 오익제씨의 ‘평통 자문위원’과 ‘국민회의 상임 고문’의 약력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비중이 있는 지는 명확하다.

현장 기자들도 이 정도는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회의 상임 고문’이라는 약력에서 비롯된 정당간 논쟁의 톱니바퀴 틀에 기자들이 끼어들어 자동적으로 기사를 양산하는 셈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보도의 큰 줄기를 잘못 잡다보니, 방송은 ‘안보’라는 보다 중대한 문제를 놓칠 수 밖에 없었다. 오익제씨는 입북 전에 국내 활동을 하면서 방북 신청을 했는가 하면 북한에 있는 가족을 보고 싶다는 탄원서를 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국가 안보 기관은 당연히 오씨를 ‘잠재적인 월북자’로 분류해 ‘관리’를 했어야 했다.

오씨가 입북할 때까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책임은 어디에 있으며, 우리의 안보망은 과연 믿을 만한가? 이런 문제에 대해 방송은 철저히 침묵을 지킴으로써 방송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성역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입증해 보였다.

방송이 오익제씨 입북 사건을 사상 문제와 연관시켜 열을 올리고 있는 동안 청와대의 주목할 만한 반응이 나왔다. ‘사상 논쟁’이 향후 대선에서 결코 여당 후보에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문들은 이미 ‘색깔’ 운운이 더 이상 국력 신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지의 사설을 내고 정당간 논쟁과 관련해 최소한의 내용만을 다뤘다.

그러나 방송은 ‘색깔 논쟁’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는커녕, ‘색깔 문제’에 대해 과거처럼 탄력이 붙어 좀처럼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 ‘색깔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판단은 갈수록 냉철해지고 현명해지는데 방송은 스스로 ‘거꾸로 가는 바보상자’의 역할을 떠맡은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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