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중앙지법은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펴낸 책 <일본은 없다>가 재일 르포작가 유재순씨의 원고 내용을 무단 도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 1993년 말 발간된 이 책은 100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였고, 저자이자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가 KBS 도쿄특파원 출신인 전여옥 의원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전 의원은 표절 논란이 계속 되던 지난 2004년 '내 원고를 표절했다'고 주장한 작가 유씨와 관련 기사를 다룬 오마이뉴스 등을 상대로 5억 원의 소송을 제기했었다. 그러나 법원은 소송 제기 3년 여 만에 전 의원의 무단 도용을 인정하며 유재순씨와 오마이뉴스의 손을 들어줬다.

무단 도용의 피해를 주장했지만 오히려 명예훼손 가해자로 법정에 섰던 유씨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인정한 당연한 결과"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가 "'돈도 빽도 없는 사람의 진실이 재판에서 통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의가 살아있다는 증거'라는 재미교포 부부의 전화를 받고 울었다"며 이번 판결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 지난 11일 법원은 <일본은 없다> 저자인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재일 르포작가 유재순씨의 원고를 무단 도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유씨는 한국 언론이 무단 도용 건을 취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일본은 없다1>과 내 말을 비교해 취재하면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인데 이를 취재하지 않고, '그렇다면 왜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느냐'며 전여옥씨의 말만 듣고 다그쳤다"며 "그러나 이 건을 취재하다 전씨의 협박 등으로 한 기자가 회사를 그만둔 것은 가장 미안하고 아프다"고 말했다.

유씨는 전 의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제발 거짓말 좀 하지 말아달라"며 "나와 협박을 당했던 주변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정치권에서 물러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유씨는 전 의원이 "너무나도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다"며 항소의 뜻을 밝힌 것에 대해 "짐작했었다"며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가지고 이후 재판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 의원의 무단 도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손해배상을 청구해 피해받은 만큼 보상받고 싶지만 재판은 현실이고, 자본주의에서 재판은 시간과 돈이 결과를 좌우한다"며 "억울하고 비참하지만 생계형 잡문을 쓰는 내게는 비현실적인 얘기"라고 말했다.

다음은 지난 13일 일본에 있는 유재순씨와의 서면 인터뷰를 요약한 내용이다. 

-이번 판결에 대한 소감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인정한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에 특별히 소감이라고 말할 것도 없다."

-주변에서 어떤 반응인지?

"사실 당사자인 나보다 주변 분들이 더 기뻐해주셔서 판결이 있던 11일은 하루 종일 전화를 받으며 웃다 울다 했다. 11일 오전 11시30분 경부터 전화가 오기 시작해, 12일 새벽 5시까지 축하전화를 받았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전화를 받아보긴 처음이다. 한국의 가족과 친구, 언론계 선후배, 아는 정치인 등, 미국 태국 심지어는 중국에 사는 북한사람에게서까지 축하전화가 왔다. 특히 취재로 알게 된 재미교포 부부가 울면서 '정말 잘 됐다. 돈도 빽도 없는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의 진실이 이번 재판에 통했다는 것은 아직도 대한민국의 정의가 살아있다는 증거'라며 전화를 해왔는데, 그 부부의 말이 나도 울게 만들었다."
 
-어느 부분이 무단 도용인지?

"간단하게 재판에 제출했던 자료와 증인으로 법정에 섰던 오정애씨의 예를 들겠다. <일본은 없다> 126 페이지에 나오는 '객관적인, 너무나 객관적인'에는 도쿄대의 한 교수가 한국 여성을 비하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스커트가제: 치마바람>라는 책을 한국의 실정을 정확하게 꼬집어 쓴 훌륭한 책이라고 극찬을 하면서, 한국 유학생에게 이 책을 읽어보고 리포트를 써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유학생은 심하게 반발했고 내가 <스커트가제>를 쓴 오선화라는 한국 여성에 대해 심층취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오선화의 실체를 폭로해야 한다면서 약 2개월간 나와 함께 관련 인물들을 만나러 다니기도 했다. 이 같은 내용을 전여옥씨가 절대로 쓸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내용은 내가 당시 남편과 같은 학교에 다니던 인연으로 우리집에 자주 왔던 오정애씨 부부에게서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추가 취재를 해 쓴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 후 전씨가 우리집에 왔을 때 내가 초고를 보여주며, 이처럼 나쁜 국립대학 교수도 있다면서 한번 KBS가 취재해 방송해보라고 권유를 했다. 그때 전씨도 나와 함께 분노하면서  초고를 복사해 갔다. 그런데 이 내용이 <일본은 없다>에 그대로 나온 것이다. 이번 재판에서 오씨가 '유재순 외에 이 같은 사실을 말한 사람은 남편뿐이고 전여옥씨는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결국 내 원고가 없으면 절대로 쓸 수 없는 내용이었고, 이 같은 사실을 재판부가 인정한 것이다.

121페이지의 '오선화라는 여자'라는 글도 내 원고를 그대로 도용한 것이다. 나는 수개월 동안 <스커트가제>를 쓴 오선화를 인터뷰하고 관련 인물들을 만났으며 오선화가 일본 텔레비전에 출연해 한 발언들도 정리했다. 전씨는 내 원고를 그대로 도용하면서, 이런 사실을 숨기기 위해 도입부에 오선화란 여자가 '텔레비 아사히'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오선화는 텔레비 아사히에 출연한 적은 있지만 <일본에 없다>에 나오는 내용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텔레비 아사히에 가서 오선화가 출연한 비디오 테이프을 봤고, 후에 이런 사실을 법정에 제출했다.

이런 것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은 독자들이 확인하기 어려운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책의 절반 이상을 도용했다. 증거를 대기가 모호한, 말로 전한 취재기(어떤 것은 토씨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문장도 있다)까지 합하면 책의 3분의 2가 내가 취재한 내용들이다.

이 기회에 한국 언론사에게 <일본은 없다1, 2>를 읽어보고 두 권이 어떻게 다른지, 내 취재기의 절반 이상이 들어간 <일본은 없다1>에 대한 청문회를 열어보라고 제안하고 싶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모두 6하 원칙에 의해서 누가 인터뷰를 했는지, 또 취재 현장에 누가 갔는지, 그 책에 나오는 인물들을 만나 유재순을 만났는지, 전여옥을 만났는지 확인해 진실을 가려내자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누가 진짜인지 금방 확인할 수 있지 않겠는가?"

-왜 전 의원에게 취재내용을 보여줬는가?

"당시에는 그대로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신분이 유학생인 관계로 조그만 아파트에 살아 따로 작업실이 없었기 때문에 살림방이 그대로 작업실이 됐고, 책상이 식탁이 되기도 했다. 손님이 오면 작업하던 원고를 방바닥에 내려놓고 식탁을 차렸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원고를 보게 됐다. 더구나 그때는 지금처럼 컴퓨터가 아닌 워드로 타자를 치듯이 종이를 한 장씩 끼워놓고 원고를 쓰던 때여서, 초고 원고가 방바닥에 늘 널려 있었다. 게다가 당시 전씨와 친했었고, 내가 책을 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특히 전씨 본인이 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마디도 안 했기 때문에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그래서 보여줬다. 설마 친구의 원고를 도용하리라고는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친한 친구였다고 하는데 출간당시, 또 소송을 제기했을 때 충격이 컸을 것 같다.

"처음 책을 접하고 전씨가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것을 보고 분노에 몸을 떨었다. 어느 날 갑자기 불면증에 시달리다 목이 마비돼 움직일 수 없어 대소변을 누운 채로 받아내기까지 했다. 3개월 동안 죽다 살아났다. 그러다 2004년 전씨가 소송을 제기했을 때는 너무도 분노한 나머지 매일 청심환으로 분노를 삭혀 나중에 위가 탈이 났다. 불면증에 시달려 한동안 수면제에 의지해 잠을 자야 했다."

-일각에서 '무단도용이라면 그동안 왜 소를 제기하지 않았나'라는 이야기도 한다. 

"전씨의 변명 겸 항의다. 2004년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밝혔듯이 당시 우리 집에 우환이 겹쳤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언니는 출산 중에 사망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나? 게다가 표절 건을 취재하던 모 신문사 여 기자는 전씨에게 온갖 욕설과 협박을 당하고 결국 회사까지 그만뒀다. 뿐만 아니라 우리 두 사람을 잘 아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표절사실을 퍼뜨렸다며 협박을 일삼았고, 나에겐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솔직히 그 당시에는 가족의 우환과 지인에 대한 협박이 심해 '언젠가는 죄값을 받을 것이다. 똥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심정으로 소송하는 것을 포기했다."

-다른 국내 언론들은 취재하려 하지 않았나?

"미안한 얘기지만 난 한국 언론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그때도 표절 사실을 묻는 기자들에게 <일본은 없다1>에 나오는 내용 중 간단히 3개 정도를 짚어 줄 테니 내용을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 그러면 누가 취재를 했는지 금방 알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것을 확인하는 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왜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느냐고 전씨의 말만 듣고 다그쳤다. 전씨는 당시 내 형편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번 해 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나를 약올렸다. 하지만 일본의 몇몇 주간지들은 안 그랬다. 물론 그 책이 다룬 현장이 일본이기도 했지만, 몇 가지를 확인하고 금방 표절로 규정지었다."

-한 기자가 이 건을 취재하던 중 회사를 그만뒀단 이야기를 들었다.

"가장 미안하고 아픈 부분이다. 모 신문 여 기자는 실제 '너 하나 자르는 것은 일도 아니다' '언론계에서 발 못 붙이게 할 줄 알아' 등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협박을 당했고, 결국 그 문제로 사장과 크게 다퉈 회사를 그만 뒀다. 당시 그 기자와 전화 인터뷰만 했을 뿐 직접 만난 적이 없어 나중에 내 문제로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만나 사과했다. 그랬더니 그 기자가 '유 선생님이 사과할 일은 아니지요. 그런 사람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이 세상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재판에서 그 기자는 당시 전씨에게 당한 일을 기록한 진술서를 써서 법정에 제출했다."

-전여옥 의원은 11일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다"며 항소하겠다고 했다.

"짐작했던 대로다. 언제 전씨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인정한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가지고 재판에 임할 뿐이다. '사실' 외에 더 큰 진실이 어디 있겠는가? 얼마든지 항소해보라. 성실히 대응해 줄 테니."

-전 의원은 공교롭게 판결 다음날 이명박 후보 캠프로 들어갔다.

"그녀다운 선택 아닌가? 정몽준에서 박근혜, 박근혜에서 이명박까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너무 많다. 우선 제발 거짓말 좀 하지 말았으면 한다. 재판도 전씨가 일방적으로 계속 연기하는 바람에 1심이 끝나는 데 자그만치 3년이 걸렸다. 그것도 미리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당일날 일방적으로 연기해 변호사가 수도 없이 헛걸음을 했다. 그래놓고 빨리 끝내달라고 재판정에 요구했다고 기자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책도 도용을 안 했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그렇다면 '10년 전에 왜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느냐'는 추상적인 말로 공격하지 말고, 내가 제기한 30여 꼭지의 내용에 대해 6하원칙에 근거해 증거를 대봐라.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취재를 했는지. 제발 이 재판을 정치적으로 호도해 합리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저작권 문제이지 정치적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나는 물론이고 욕하고 협박했던 주변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정치권에서 물러나라. 더 이상 정치판 오염시키지 말고."

-전 의원이 93년11월 <일본은 없다>를 펴냈기 때문에 당신의 <일본인 당신은 누구인가> 출판 계획이 무산됐고, 94년 12월 <하품의 일본인>을 펴냈다. 이 사건으로 심적인 고통 뿐 아니라 재산상의 손해도 입었을 것 같다. 손해배상을 청구할 생각은 없나?

"최근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그런데 내게는 비현실적인 얘기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가장으로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 생계형 잡문을 쓰기에 급급하다. 게다가 이번 재판 때문에 지난 3년 동안 20여 차례나 한국을 왔다갔다했고, 일방적인 재판 연기로 한 번에 갈 일을 몇 번씩 가야 했다. 그 비용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온다. 지금 변호사 비용도 제대로 못 줘 담당변호사가 거의 자원봉사 수준에서 재판을 담당하고 있다.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손해배상액에 해당하는 인지를 사서 붙여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아마 수천만원의 비용이 들 것이다. 변호사 수임료도 줘야 하는데, 설령 빚을 내서 손해배상을 청구해 나중에 받아낸다 하더라도, 이번 재판처럼 법이 허락하는 최대 한도까지 전씨가 악의적으로 재판을 연기하면 판결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장담 못한다. 그 이자는 어떻게 감당하나. 주위에서 손해배상 청구를 해야한다고 권유하지만, 형편상 아직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당당하게 손해배상을 청구해 피해받은 만큼 정당하게 보상받고 싶지만 재판은 현실이다. 자본주의에서 재판은 시간과 돈이 결과를 좌지우지한다. 이 부분이 내게는 가장 억울하고 비참하고 아픈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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