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방송법 제정이 국민적 호응도 받지 못하고 지지부진 늦어지는 것은 공보처 등 정부부처가 여론에
전혀 귀를 귀울이지 않는 독선적인 태도 때문이라는 비판이 강력히 제기됐다.

지난 22일 한국언론학회(회장 이정춘)가 주최한 ‘통합방송법의 제문제’ 토론회에 참석한 주제발표자와 토론자들은 통합방송법안이 방송의 공익성과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을 위한 장치로 적절하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공보처 등 정부부처는 각계의 비판과 대안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제발표를 맡았던 황근 선문대(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사회 각계의 이해가 엇갈려 있는 통합방송법을 정부부처가 독선적으로 추진하다보니 노동조합, 정통부, 학계 등 모두가 반대하는 고립무원의 상태가 됐다. 이와 관련 많은 연구논문이 제시됐으나 한번도 받아들여진 적이 없다”며 “오히려 제정 주체내에서 만들고 난뒤 잘 안되면 내년에 또 고치자는 시각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안이한 행정을 지적했다.

이번 토론회에서도 논의의 초점은 역시 방송위원회 위상과 대기업 및 언론사의 위성방송 진입 허용 여부.

황교수는 주제발표에서 “현 방송위원회는 공보처의 보조업무기관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하며 정치적으로 독립된 규제기구로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교수는 이를 위해 △방송위원회에게 방송국의 허가, 재허가권을 부여하고 △전문성과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해 방송위원 추천 대상자를 직능대표, 지역대표 등으로 구체화하며 △공영성 강화를 위해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에 각기 다른 심의규정을 적용하고 △규제 내용 또한 구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주제발표에 나선 장호순 순천향대(신문방송학과) 교수 역시 독립된 방송규제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장교수는 “지금의 틀에서는 장관이 바뀔때마다 정책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 정치권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장교수는 그러나 “대기업과 언론사의 위성방송 참여문제에 대해서는 허가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밝히면서 “오히려 여론의 독점을 막고 공익성을 해치지 않게 하는 장치를 마련하는게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즉, 영국, 독일 등지에서 실시하고 있는 것처럼 대기업의 언론사 소유, 광고제작업 소유 등 미디어산업 소유지분을 철저히 조사해 전체 미디어 시장의 소유 상한선을 정하는 방법 등 독점 방지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대호 통신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제발표에서 지금까지는 방송사업을 제작, 서비스, 송출까지 맡는 일괄업무로 규정했으나 이제는 각 업무가 분리, 분화된 새로운 방송체계가 들어서고 있으며 이에 맞게 법제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공보처 인병택 방송행정과장은 “헌법에 행정권은 정부에 속한다고 돼 있어 방송위에 행정권의 핵심인 인·허가권을 주는 것은 법리상 안될 일”이라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인 과장은 또 “(방송법이)방송위 구성문제 등 정치적 이유로 지연됐다는 지적에 동의하며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만 방송위 구성문제는 여·야간 합의사항을 존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해 방송위 위상과 구성문제에 대해 논의가 다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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