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달아 터지고 있는 대형사건 보도에서 우리 언론의 명암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보 특혜의혹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보도태도는 아직 성급하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한국 언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아 무척이나 고무적이다. 반면 황장엽 조선(북한) 노동당 비서의 망명사건이나 이한영 피격사건에서는 안보상업주의에 편승해 무책임한 보도를 남발하고 있다.

한보 특혜의혹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보도 태도는 과거 권력형 비리사건등에서 보였던 보도 태도와는 상당히 다른 점을 보이고 있다. ‘몸통’에 다가가기는 커녕 ‘깃털’마저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검찰의 중간수사발표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추궁하면서 김현철씨에 대한 엄정 수사를 촉구하는 등 의혹 파헤치기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황장엽 망명사건 및 이한영 피격사건에 이어 등소평 사망등 나라 안팎으로 ‘한보의혹’을 뒤덮을만한 대형사건들이 잇달아 터졌는데도 ‘한보 의혹’을 지면 및 보도시간 배정에서 비중있게 배치하고 있는 점도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사설 및 칼럼의 문제제기 및 비판적 여론 조성이 돋보인다.

언론계 안팎에선 이같은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 ‘레임 덕’(임기말 권력누수) 때문이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권력의 눈치보기에 급급했던 과거 언론의 보도태도에 비추어 볼 때 한보 의혹을 파헤치려는 언론의 노력을 과소평가하거나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이라고만 치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언론이 지금 보이고 있는 한보의혹 규명 노력은 어쨌든 높이 평가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도 ‘한보의혹’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지금부터가 정말 중요하다. 검찰의 중간 수사발표 수준에서 한보의혹을 덮어버리려고 할 게 분명한 정부 여당이나 검찰의 의도에 언론이 결국 따라가고 만다면 지금까지 보인 언론의 노력은 불행히도 또 한번의 도로(徒勞)에 그치고 말 뿐이다.

한보의혹 보도와 달리 황장엽 비서망명이나 이한영 피격사건 보도는 과거 북한관련 보도의 구태를 그대로 재연하고 있다. 황비서 망명에 대해 언론들은 망명 경위 및 배경등에 대해 온갖 억측과 설이 난무했다. 이씨 피격사건에서도 조선(북한)의 소행이라는 예단하에 추측성 보도들이 홍수를 이뤘다.

언론의 보도는 어디까지나 확인된 사실에 기초한 것이어야 한다. 특히 북한 관련 보도는 그것이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까지를 고려하는 책임있는 보도여야 한다.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하더라도 남북관계를 고려해 보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남북관계를 고려해 최소한 사실 확인 등에 있어서는 보다 철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언론의 북한관련 보도는 사실 확인이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오히려 무책임한 보도를 양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황비서 망명이나 이씨 피격사건 보도도 예외가 아니다. 여권 고위관계자라는 익명의 출처로 남한내 고정간첩 5만명설을 보도한 문화일보의 보도나 기초적인 사실확인도 하지 않은채 이씨 피격사건을 ‘황장엽 망명에 대한 북한의 응징’식으로 예단 보도한 것등이 대표적이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탄피가 경찰이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한 주요한 근거가 된 벨기에제 브라우닝 권총에서 발사됐다고 단정할 근거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 드러나고 목격자의 진술마저 오락가락하면서 경찰의 초동 수사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백일하에 드러났다. 언론의 보도 또한 별로 다를게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같은 낯뜨거운 엉터리 보도는 지금까지의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소설쓰기’는 이제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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