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은 국민의 알권리와 취재 자유를 위축시키고, 행정 비밀주의를 부추기는 조치가 될 것이다.”

22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브리핑 실과 기자실 통·폐합 방안에 대해 언론 유관기관과 단체, 학계 등은 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명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등 언론 현업·유관 단체들은 정부의 기자실 통·폐합 추진이 공정한 취재환경을 조성하기보다는 국정 정보에 대한 언론의 접근기회를 차단하고 정부가 정보를 독점하게될 것으로 보고 있다.

언론노조는 “정부 부처 고위관리들은 입맛에 맞는 언론사, 특히 거대 언론사들만 골라서 접촉하고 싶은 유혹이 한층 강해”지고 “한미FTA 협상 과정과 가서명 과정에서 정부가 보인 것과 같은 정보 은폐와 비공개가 더 심해져”그 결과 “국민들과 더욱 멀어지는 행정의 비밀주의가 한층 강화될 것”이라며 기자실 통·폐합 방안의 철회를 촉구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도 “참여정부 출범 초기 정부가 기자실을 폐지하면서 설치한 브리핑제도도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브리핑제도 현실화에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운영 과정에서 나타난 일부 문제를 바로잡겠다며 또다시 브리핑 룸 통폐합과 같은 강제적이고 일방적인 조치를 내놓은 것은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정일용 기자협회 회장은 “기자실 통·폐합 이후 정보 서비스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에 대해 정부가 내놓은 방안이 여전히 미진하고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정부는 언론계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주장하지만, 지난 3월 정부 관계자를 만났을 때는 구체적인 방안이 없어 깊이 있는 얘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결정됐으니 밀어 부친다’고 할 게 아니라 언론계와 다시 협의를 통해 추진하는 것이 순서”라고 강조했다. 기협은 이번 방안과 관련해 오는 31일 저널리즘연구회와 함께 토론회를 열어 현장 기자들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학계에서도 이런 방식의 통폐합이 국민과 정부의 의사소통에 과연 효율적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엄기열 대구대 교수(신문방송학)는 “미국은 공공기관의 공적 회의에 기자와 주민이 참석할 수 있도록 회의공개법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관련법이 없고, 정보공개법과 기록물관리법은 유명무실한 상태인 데다 회의록에 대한 정보공개 소송에서는 회의록이 공개되는 경우 자유로운 의사개진이 힘들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판례가 있는 한국에서 회의공개법 같은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기자실을 통·폐합하겠다는 것은 국민과 언론의 정보 접근을 막고, 모든 정보를 정부가 일원화하겠다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그동안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정보공개를 청구해 온 시민단체들도 “지금 수준대로라면 국민의 알 권리를 만족시킬 만한 정보가 공개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재근 참여연대 행정감시팀장은 “정부는 정보공개제도의 활성화를 위해 비공개 대상 정보라도 공익 차원의 공개가 이뤄지도록 공익검증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하지만, 기관장이 공개 여부를 한 번 더 검토할 수 있는 재량권은 지금도 사실상 갖고 있는 만큼 국민의 알권리가 보장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 팀장은 또 “비공개 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을 낼 수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고, 소송 한 번에 몇 년씩 소요돼 정보 가치도 현격하게 떨어진다”며 “부처별 또는 담당자에 따라 청구된 정보의 공개 여부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게 문제인데, 이를 통제할 수단이나 악의적 비공개에 대해 처벌 조항도 없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없다”고 비판했다.

윤철한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부장도 “정보공개를 청구했던 많은 기관들이 ‘처음이라 잘 모르겠다’며 정해진 시한 안에 답변을 주지 못하거나, 비공개 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내면 그때서야 자료를 주거나, 받은 자료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이 바뀌어 충실한 답변이 이뤄지지 않는 등 정보공개제도의 운영 실태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윤 부장은 “정부부처나 공공기관, 지자체 등이 갖고 있는 자료와 정보가 무엇인지 기본적인 목록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는 상황부터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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