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는 22일 37개 정부청사 브리핑룸·기사송고실을 3개 합동 브리핑룸과 5개 단독청사 브리핑실 체제로 통·폐합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이른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기자들의 공무원 접촉도 크게 제한된다. 이에 대해 전체 언론계와 학계, 일부 시민단체는 물론 한나라당 등 야권은 국민의 알 권리와 정부 감시·비판 기능을 약화시킬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우리 속담에 미워하면서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청와대의 이번 언론 대책이 그 꼴이다. 청와대는 독재정권의 후계자들인 수구 보수 세력을 미워하더니 그들의 언론 탄압 수법을 흉내 내려 하고 있다. 청와대가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민주 정부라는 자부심이 자만심으로 흐르면서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독선과 전횡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노무현 정부는 그간 기회만 있으면 수구 보수 세력에 대해 적개심을 드러내왔다. 참여정부의 민주적 수준을 ‘언론보다 허약한 집권세력’이라는 말로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집권 세력에게 당연한 외부의 비판을 참지 못하는 소심증이 악화되면서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국민의 알 권리를 짓밟는 최악의 선택 쪽으로 가고 있다.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은 소름끼치는 발상이다.

   
  ▲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22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각 정부부처에 마련된 브리핑룸과 기사송고실을 3곳으로 통·폐합하는 내용을 담은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이창길 기자 photoeye@  
 
이 언론대책은 정부 각 부처 기자실을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것이다. 언론 역할과 기능을 억제하고 통제하는 폭거다. 그런데도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라는 깃발을 내걸었다. 썩은 생선을 그럴싸한 포장지로 싼다고 악취가 감춰지는가? 국민의 세금으로 돌아가는 현 정부가 겉 다르고 속 다르게 하는 기만술책은 과거 독재 정권이 하던 짓과 닮아있다.

참여정부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한국 언론사에 대입시키면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언론탄압사와 맥락이 닿는다. 우선 신군부가 지난 1980년 언론을 도륙 낼 때 앞세웠던 허위의 깃발을 연상케 한다. 신군부가 수많은 정기간행물을 폐간조치하고 언론인 수백 명을 강제해직한 뒤 언론사 통폐합을 자행할 때 국민 앞에 내걸었던 깃발은 ‘언론자율정화 및 언론인 자질향상에 관한 결의문’이었다.

박정희 정권이 1961년 언론 죽이기를 할 때 내걸었던 깃발은 ‘사이비 언론인 및 언론기관 정화’였다. 그는 쿠데타를 자행한 일주일만인 5월23일 언론통폐합과 기자 해직을 강행했다. 그 당시 통일과 혁신의 기치를 내걸고 언론활동을 하던 민족일보는 강제폐간을, 조용수 사장은 사법 살인을 당했다. 이번에 참여정부의 언론대책깃발은 더 세련되었다고나 할까?

청와대의 기자실 통폐합은 결국 기자 수를 줄이는 효과를 갖는다. 그것은 기술적인 면에서 기자 해직과 같다. 청와대의 언론대책이 일거양득의 효과를 갖는다. 이 정부는 기자들의 문제는 언론사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 말할지 모르나 이는 눈감고 아웅 하는 간교한 짓에 불과하다. 브리핑룸 과 기사송고실이 줄어들면 정부에 대한 언론의 감시 기능은 현저히 약화되면서 많은 기자들이 할 일이 없어진다.

참여정부는 정부와 언론의 직접적인 접촉을 줄이는 대신 정보 제공 방식은 개선한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오늘의 정부 시스템이 언론과의 접촉을 대폭 제한해도 괜찮을 만큼 개혁되고 민주화되어 대 국민서비스 정신으로 충만해있는가? 아집과 독선은 결국 전횡으로 치닫는다.

민주사회에서 언론이 행하는 주요 역할의 하나는 정치권력에 대한 파수견 역할이다. 정부도 대 국민서비스를 강화하려면 외부 비판과 견제에 귀를 막으려 해서는 안 된다. 자신 있는 민주정부라면 언론과 더불어 간다는 철학과 자세로 임해야 한다. 언론을 길들이거나 언론이 정부를 찬양 고무하는 식으로 몰아가려 해서는 안 된다. 차제에 박정희, 전두환 식 언론 통제를 부추기고 앞장서는 언론통제 기술자들이 정부 내에 있다면 그들을 청소하기 바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