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의 잇따른 조선(북한) 관련 보도는 황장엽 비서 망명을 계기로 극도로 악화된 남북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하다. 특히 미확인 소식통을 인용해 ‘예측 불가능’한 조선(북한)을 자극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할 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지난달 27일자 중앙일보 기사와 관련해 조선(북한)의 대남 전위기구인 조평통과 중앙통신이 잇따라 “수령님의 서거와 관련한 모략기사를 실었다”며 보복을 공언하는 등 파문이 일고 있는 상황은 언론의 대북 경각심 ‘실종 사태’를 우려하게끔 하고 있다.

중앙일보가 문제의 기사를 쓴 노재현 일본 특파원에게 주의를 주고 지난 3일자 신문에 노기자의 취재일기를 통해 ‘김일성부자 언행설등 보도 유감’이라는 해명성 기사를 게재하기는 했으나 이한영씨 피격 사건 등을 고려할 때 조선(북한)의 보복 발언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 경찰당국의 분석이다.

북경 MBC 지사 화재 사건과 관련한 언론의 보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부분 언론은 남상욱 총영사의 말을 인용, 조선(북한)의 방화 가능성을 보도했다. 그러나 남 총영사는 “지난 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중국공안당국에 때가 때인 만큼 철저히 조사해 달라고 얘기한 내용만 전했을 뿐”이라며 “중국 당국이 어떻게 북측에 의한 방화 가능성이란 말을 할 수 있는가.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밝혔다.

또 지난 3일 중국 공안 당국이 MBC 지사측에 통보한 감식 결과에 따르면 이번 화재는 방화가 아니라 팩시밀리의 전선 연결부위에서 누전이 발생하면서 일어난 실화로 밝혀졌다. 그러나 북경 특파원들은 “분명히 남 총영사가 그런 말을 했다”고 반박했다.

중국 공안 당국에 대한 직접 취재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한국총영사관측을 통해 취재할 수밖에 없는 현지 특파원들의 고충이 적지 않다는 점, 그리고 황장엽 비서 망명 이후 조선(북한)이 영사관 직원과 언론인 2∼3명을 테러 대상으로 지목했다는 설이 퍼진 상황이 이같은 보도를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감안한다 해도 언론은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됐다. 중앙일보의 경우 자체적으로 기자에게 주의를 준 점을 볼 때 스스로 오보를 인정했다고 봐야하며, 화재 건도 중국 공안당국에 의해 ‘공식 부인’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미확인 정보에 의존해 보도한 결과 잃는 것은 언론의 공신력이고 얻는 것은 조선(북한)의 반발이다.

더욱이 이번 보도가 자초한 것은 조선(북한)의 위협만이 아니다. 이후 우리언론의 조선(북한) 관련 취재 활동에 적지 않은 지장을 초래하게 됐다. 황씨 망명 뿐 아니라 4자회담, 경수로 지원 등 남북관계의 주요 현안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조선(북한)측이 ‘앙심’을 품고 우리 언론의 취재활동을 거부하거나 물리적으로 방해한다면 이는 언론의 차원을 뛰어넘어 국민의 알권리의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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