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도 연극 <미란다>를 계기로 한때 외설이냐 예술이냐 논쟁이 뜨겁게 타올랐던 시기가 있었지만, 그러한 외설론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 사회에서는 래리 플린트라는 한 인물을 정점으로 수정헌법 제1조의 해석을 둘러싼 '표현의 자유' 논쟁을 불렀다.

   
  ▲ 영화 '래리 플린트' 포스터.  
 
사실 2시간이 넘는 분량을 가진 이 영화의 주제는 아주 단순하다. 래리 플린트는 자신이 발행하는 잡지 <허슬러>에 낸 술 광고에서 대통령 다음으로 미국 사회에서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 제리 폴웰 목사가 어머니와 간음했다는 내용을 담아 미국 사회에 엄청난 논란을 불러온다. 1심 재판에서 폴웰 목사에게 정신적인 가해를 했다는 죄목이 인정돼 감방 신세를 진 래리 플린트는 평생을 그래온 것처럼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연방대법원에 항소한다. 그리고 이 복잡 미묘한 사건에 대해 연방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수정 헌법 제1조는 자유로운 사상의 표현을 존중한다. 표현의 자유는 개인의 자유이며 진리 탐구를 위한 초석이자 건강한 사회의 밑거름이다. 좋은 의견이든 나쁜 의견이든 전부 들어보기 위해 수정 헌법 1조가 존재한다."

표현의 자유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70년대 말, 리옹 대학의 불문과 교수였던 로베르 포리송이라는 사람이 2차 대전 당시 나치가 유태인들을 가스실에서 학살했다는 주장을 부인해 대학에서 쫓겨났다. 미국의 석학 노엄 촘스키(Noam Chomsky)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탄원서에 서명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기꺼이 탄원서에 서명했다. 그러자 프랑스에서 엄청난 반발과 비난이 일었다. 촘스키는 급기야 유태인 학살을 부인한다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촘스키는 이 사태를 해명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짤막한 글을 써, 평생의 동지인 세르주 티옹에게 보내면서 글을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허락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문제였다. 티옹과 출판인인 피에르 기욤이 촘스키의 글을 포리송의 책 <나를 역사의 왜곡자로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글 - 가스실의 문제>의 서문으로 사용한 것이었다. 훗날 촘스키는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영화 '래리 플린트'의 한 장면.  
 
"내가 포리송 사건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근본적인 권리가 중대하게 침해당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나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탄원서나 선언에 주저없이 서명하고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표현의 자유입니다. 우리가 증오하는 사람들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허락되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는 생각만을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정직하다면, 괴벨스와 즈다노프의 주장까지도 수긍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드는 표현만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그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문화일보의 '강안남자'가 끝끝내 존중되어야 할 표현의 자유를 당연히 누려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만일 문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품위'와 '수준'의 차원에서 논의될 성질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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