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부터 이달 8일까지 진행된 국회 노동법 재개정 협상은 노동법 재개정의 기본 취지는 실종된 채 여야간 이해득실에 따른 ‘눈치보기’와 파행으로 점철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야는 지난 7일 정책위원장 회의와 원내총무 회담을 통해 주요쟁점들에 대해 대부분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 공개하고 있지 않다.

잠정합의한 쟁점법안 내용이 미리 알려질 경우 노동계는 물론, 사용자측으로부터 쏟아질 비난을 잠시나마 비켜가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당초 2월말까지로 잡혀있던 합의시한을 한차례 연기해 주위의 따거운 시선을 받아온만큼 이달 8일까지는 어떤 형태로든 노동법 재개정 문제를 마무리하되 급한 불은 피해보자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그러나 이번 노동법 재협상 과정을 지켜본 노동계를 비롯한 일반 국민들은 적지 않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국회 여야간 협상에 대해 “여야간 합의 날치기”라며 강력히 비난했다. 전국연합 등 주요 시민 사회단체들 역시 “여야는 노동법 재개정 협상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처럼 노동계와 시민 사회단체들의 비난과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것은 주요 쟁점 법안이 졸속 타결됐다는 데도 원인이 있지만 그보다는 정치권의 무원칙한 태도가 더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정치적 이해타산을 고려한 각 정당 지도부의 판단에 따라 하루 아침에 입장을 번복하기가 일쑤였고 직접 협상에 나선 여야의원들도 당 지도부 눈치보기에만 급급한 꼴이었다. 실제 신한국당은 당초 정리해고제를 강력 주장하다가 백지화로 돌아서더니 다시금 2년 유예로 후퇴했다. 야당 역시 정리해고제를 완전삭제하자고 주장하다가 3년 유예로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그뿐 아니다.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와 관련해 신한국당은 5년후 지급 금지에서 30대 기업 즉시 금지로 바꿨다가 또 단계적 감축으로 물러섰다. 야권 역시 5년 유예를 주장하고 있으나 이전에는 단계적 감축을 오락가락했었다. 무노동무임금에 합의하면서 야권은 당초의 원칙적 반대 입장을 뒤집었다.

이렇듯 무원칙한 정치권의 재협상 과정은 그 결과가 어떤 형태로 나오든 결국 국민적 불신만을 확산시킬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이 이미 올 연말 대통령 선거에서 ‘반노동자 후보 낙선 운동’을 벌이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것도 이런 정치권의 파행적 정국 운영상과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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