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에 성역은 없다.”

지난달 27일 동아일보 편집국 새 사령탑을 맡은 정구종편집국장이 기자들에게 내놓은 취임 일성이다. 지난 67년 동아일보에 입사, 사회부장 출판본부장을 거쳐 기자생활 30년만에 편집국장 자리에 오른 정구종국장(53)은 “앞으로 동아일보 지면에서 성역을 없애자는 것이 기본 편집방침”이라고 밝혔다.

사회부장시절이던 87년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을 용기있게 보도했던 정국장에 대한 기자들의 기대도 매우 크다. 지난 5,6일 양일간 실시한 편집국장 신임투표에서 90% 가까운 절대적인 신임을 얻은 것도 이같은 기대의 반영일 수 있겠다.

이에 대해 정국장은 “책임이 무겁다”는 말로 취임소감을 대신했다. “기자로 시작해 편집국장 자리까지 올라온 것은 개인적으로 영광이다. 그러나 지금은 회사와 독자, 후배기자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그런 기분을 느낄 겨를이 없다. 대선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중책을 맡게 돼서 책임감이 더 무겁다.”

지난 6일 1판 마감시간이 끝난 직후 편집국에서 바쁜 시간을 쪼개 기자와 만났다. 먼저 대선보도는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끌어나갈지 물어봤다.

“동아는 전통적으로 선거보도에서 ‘공정성’을 중시해왔다. 특정정파나 인사에 대한 선입관이나 편향이 없다. 언론의 기본 자세이기도 하겠지만 엄정 중립의 자세에서 보도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여론조사 등을 통해 국민여론을 수렴, 국가와 민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입장을 논평을 통해 밝힘으로써 국민의 선택을 돕는 보도를 할 것이다.”

선거보도에서는 엄정한 중립을 지키되 사설이나 컬럼등을 통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안내자’의 역할도 자임하고 나서겠다는 선언이다.

-동아일보의 강점이나 약점은 무엇인가.

“동아일보는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신문이 탄압받던 시기나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위기에 대응하는 능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또 동아일보는 정론지라는 이미지와 정치신문이라는 강점이 있는 반면 다양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은 다소 약하다는 생각이다.”

정국장은 이를 위해 독자의 정보욕구를 채워주는 심층화, 전문화된 보도를 할 것이라며 기자들의 전문화를 돕기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국장은 또 “냉소적이거나 비판일변도보다는 적극적으로 국민의 여론을 수렴, 반영해나갈 것”이라면서도 “과거 동아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정론지’의 이미지와 컬러도 확실히 보여주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들어 과거 동아의 특색(야성)이 많이 약화됐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데.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기에는 부당한 권력에 항거함으로써 동아의 컬러를 분명히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민주화가 달성됐고 모든 사안을 비판적으로만 볼 수 없게 됐다. ‘동아가 유연해졌다’는 여론은 시대의 변화 때문에 오는 오해며 인식의 차이이다. 문민의 권력은 과거의 권력과는 다르게 봐야 한다.”

동경특파원, 동경지사장을 거치면서 8년 넘게 일본에서 근무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정국장은 일본언론과 일본언론인에 비춰볼 때 우리 언론인들이 보다 국제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얘기한다.

“국제화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며 “언론인들이 국제적인 시각으로 사안을 바라보고 보도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과거와 같은 ‘협소한’ 내셔널리즘에서는 벗어날 때가 됐다는 것이다.

편집국장이 광고나 판매등 경영에 까지 신경을 써야하는 것은 분명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의 현실’인 것도 분명하다. 97년 신문업계를 어떻게 보고있는지 물어봤다.

“지난해에 이어 광고시장 악화는 더 심화될 것이다. 신문매출에서 광고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광고시장 악화는 신문사에 큰 부담이다. 신문사들간의 협의아래 감면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정국장이 감면을 생각하는 것은 단지 경영상의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사전 준비없는 물량경쟁에 우리 언론이 앞다퉈 질주해나갔다는 자성의 측면이 크다.

“우리 언론은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미처 안된 상황에서 증면의 시대에 뛰어들었다. 일본과 같이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큰 일본신문들도 32면 체제가 기본이다.”

올해는 6·10 민주항쟁 10주년이다. 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세상에 드러냈던 동아와 정국장이 그때로부터 10년 세월이 흐른 지금, 대통령선거라는 또하나의 격변기속에서 어떤 ‘작품’을 만들어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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