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소식이 25일자 상당수 언론사에 보도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해당 기업의 이름도 직접 쓰지 못하고 익명으로 처리했다. 조선일보만이 H그룹의 김모 회장이라고 표기했고, 이날 오전부터 인터넷 머니투데이가 한화그룹이라고 실명을 밝혔을 뿐이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폭행사건 전모…대다수 언론 익명보도

우선 언론보도에서 전한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H그룹 둘째아들 김모 씨가 지난 3월8일 청담동의 G룸살롱에서 A씨 등 옆방 손님 3∼4명과 시비가 붙는 과정에서 이들에게 떠밀려 계단에 구르면서 눈가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고 10바늘을 꿰멨다. 이 소식을 들은 김 회장이 경호업체의 경호원 20여 명을 동원해 북창동 S유흥주점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A씨 일행을 데려다가 폭행했고, 일행 중에 빠져있던 B씨도 찾아 폭행을 했다. 김 씨가 현재 예일대에 재학중이며 최근 귀국했다가 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보도했다. 서울경찰청은 같은 달 말 이 같은 정보는 입수한 뒤 내사에 들어갔지만 수사의 진전을 보지 못한 채 남대문경찰서로 넘겼다. 이 과정에서 외부에 일체 함구령을 내렸다고도 한다."

   
  ▲ 중앙일보 4월25일자 10면  
 
이에 대해 한화그룹 관계자는 "이 같은 기사 내용은 사실이 아닌 제보나 첩보에 근거한 것"이라며 "사실여부는 경찰 수사를 지켜보면 밝혀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사건 경위를 설명했다.

"당시 사건에서 피해자는 오히려 회장의 아들 김모 씨였다. 김 씨는 폭행당하고 나서 이들을 고소하겠다고 했으나 아버지가 대기업 회장이어서 고소 단계부터 언론에 노출될 우려가 있는 만큼 이들을 만나 정식으로 사과를 받기로 했다. 다음날 김 씨는 회사 경호원 몇 명을 대동해 A씨가 일하는 술집을 찾아갔으나 이 자리에서도 시비가 붙었고, 다른 A씨 일행도 현장에 와서 대치상태가 됐다. 이 소식을 듣고 회장이 직접 찾아와 사과하라고 촉구했고, 정식으로 사과를 받았다. 그리고 폭탄주 한잔 씩 마시고 훈계하고 끝낸 일이다"

   
  ▲ 동아일보 4월25일자 14면  
 
24일부터 25일 오전까지 언론사들은 이 사건 당사자들과 해당 재벌기업이 어디인지 밝히지 않고 익명을 썼다. 그 이유에 대해 기자들은 "가해자가 부인하고 있고, 경찰 조사에서도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섣불리 실명을 썼다간 위험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자들 "양쪽 주장 엇갈려" … 한화그룹 "회사 이미지 타격…익명 요청"

또한 한화그룹 쪽의 요청도 작용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사실확인이 정확히 안된 상태에서 실명을 보도하면 회사 이미지에 타격이 우려되는 만큼 '익명 처리해 달라'는 요청을 하긴 했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4월25일자 8면  
 
그러나 25일자에서 H그룹 김모 회장이라고 표기를 한 조선일보는 이 소식을 8면 머리기사로 배치했고, <재벌 회장 '보복 폭행' 구설수>라는 제목으로 사건의 전말을 가장 자세하게 보도했다. 기사를 쓴 박란희 기자는 "H그룹 쪽도 (일부) 시인을 했고, 현장 취재를 통해 증언을 많이 확보했다"며 "김 회장이 폭행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기업명을 특정하는 쪽으로 표기하게 됐다"고 밝혔다.

머니투데이 기자 "익명 보도 눈가리고 아웅"

이를 두고 양쪽의 주장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익명에 기대어 보도하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오전에 언론사 중 유일하게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실명을 표기해서 보도한 머니투데이의 박준식 기자는 "어차피 인터넷에 한화 김승연 회장이 인기검색어로 떠 있는 상태에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익명에 기대는 것보다 양쪽의 주장을 보여주는 게 훨씬 당당하다고 판단해 실명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이렇게 관심을 끄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기까지 한달 여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은 어떻게 된 걸까.

   
  ▲ 머니투데이 4월25일 오전 송고된 기사  
 
회장과 경호원들이 현장에서 폭행했는지를 둘러싸고 양쪽 주장이 엇갈렸다는 게 기자들이 밝힌 이유였다. 특히 일부 언론사 기자들은 사건 직후 피해자들로부터 제보를 받기도 했고, 직접 취재에 들어가기도 했으나 지난 24일 연합뉴스의 첫 보도 전까지 기사화하지 못했다.

한 언론사 경찰 출입기자는 "지난달 사건 발생 직후 피해자측으로부터 제보를 받아 이 내용에 대해 직접 취재에 들어갔지만 며칠 간의 취재 결과 양쪽 주장이 엇갈린데다, 심지어 맞은 쪽 피해자조차 부인하는 상황에 직면에 더 이상 취재를 진행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한달 전부터 언론에 제보…확인어려워 기사화안돼"

그는 "당시 제보내용은 '김 회장 일행이 피해자를 창고로 데려가 묶어놓고 '반죽음'이 될 정도로 폭행했으며 경찰 신고하면 안 좋을 것이라며 협박도 했다'는 내용이었다"며 "하지만 해당기업에서도 '회장과 아들 모두 미국에 있는데 말이 되느냐'고 부인했다. 그러던 차에 연합뉴스가 보도하면서 다시 취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른 방송사 출입기자도 "알고는 있었지만 확인되지 않아 보도하지 못했는데 연합이 어제 보도하면서부터 취재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연합뉴스 보도 이후에도 경찰이 구체적으로 확인해주지 않았다는 게 기자들의 설명이다. "첩보 수준이고 아직 내사중이라 아직 확인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해당 기업 역시 회장을 비롯한 경호원들의 폭행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합이 보도했다는 것 외엔 진전된 내용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반면, 이 사건을 가장 먼저 보도(<경찰 '대기업 회장 보복 폭력 수사>)한 연합의 서울경찰청 담당인 공병설 기자는 "우리는 이 내용을 파악한 지 며칠 되지 않았고, 확인된 즉시 기사화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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