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이래 최대 규모라 할 수 있는 고성산불 이후 화재지역에 대한 1년동안의 기록을 담은 문화일보 사진부 김선규기자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해 4월 23일 인근 군부대의 폭발물 처리과정에서의 부주의로 일어난 고성군 죽왕면 토성면 일대의 산불은 3천7백62㏊의 면적을 태우며 사흘 밤낮동안 계속됐다. 마침 인근을 취재중이던 김기자가 현장에 도착한 날은 초기 진화에 실패하고 때마침 불어오는 강풍으로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진 후였다.

고성산불과의 첫 대면을 김기자는 거침없는 기세로 이산 저산을 날아다니고 있는 불덩이들은 분노한 자연의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지표 위 40㎝까지 섭씨 6백-8백도에 이르는 화마가 땅위 땅속 할 것 없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삼켜버린 뒤, 채 열기가 가시지 않은 죽음의 땅에서 김기자가 느낀 것은 두려움이었다. 잇따른 대형재해에도 불구하고 금세 망각하고마는 안전불감증을 꾸짖는 엄중한 경고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7월 중순 다시 찾은 고성 야산에서 김기자는 자연이 속삭이는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검게 탄 나무들만이 시체처럼 서있는 그 곳에서 발견한 소나무 싹 하나. 고성화재가 세인들의 기억에서 잊혀질 때쯤 팔랑이는 잎사귀 소리하나 없는, 바람조차 숨죽이는 죽음의 땅에서 새 생명이 잉태하고 있었다. 죽음의 땅에서 돋아나는 싹들의 성장을 보는 기쁨으로 휴가, 휴일, 명절조차 잊고 고성을 찾았다. 이렇게 남겨진 사진 작품이 50여점.

인간에 의해 파괴돼 스스로 치유하고 복원해 나가는 자연의 전형을 보이는 현재의 고성 일대는 그 자체가 훌륭한 자연생태학습장이다. 현재 경제적 가치를 앞세워 해안가에 콘도를 짓는 등 개발을 시도하고 있는데 섣부른 행정이 고성을 또 한번 병들게 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김기자는 앞으로 40~50년은 걸릴 자연 생태계의 회복과정을 기록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힌다.

고성 산불 1년의 기록 나무도 사람도 새도 슬피우네전시회는 이달 18일부터 29일까지 문화일보 갤러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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