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지난달 30일자 8면짜리 섹션. 1면부터 3면까지는 15단 전체가 완전히 세로쓰기, 그 뒷면에도 세로쓰기가 섞여있다. 2007년도에 웬 세로쓰기? 바로 '결산공고' 섹션이다.

   
  ▲ 매일경제 3월30일자 결산공고 섹션. 전면 세로쓰기(왼쪽)와 박스형 가로쓰기가 병존하고 있다.  
 
세로쓰기 결산공고의 숫자는 모두 한자로 적혀 있고, 일부 결산공고는 토씨만 빼고 내용 전체가 한자로 돼 있다.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 경제지에 집중돼 있지만 종합지에서도 간혹 눈에 띈다. 3월 결산 시즌을 맞은 신문의 풍경이다.

국내에서 신문·잡지 등 모든 인쇄매체를 망라해 가로쓰기는 대세가 된 지 이미 오래다. 한겨레가 가로쓰기를 도입한 것은 19년 전인 1988년 5월이다. 95년 10월 중앙일보가 그 뒤를 이었고 99년 5월 세계일보를 끝으로 '전국단위 10대 일간지'는 모두 가로쓰기를 도입했다. 스포츠신문이나 대학신문은 더 거슬러 올라간다. 매일경제(96년 9월), 한국경제(98년 3월)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결산공고는 부음란과 함께 국내 신문에서 세로쓰기 명맥을 지키고 있다. 왜일까? 신문사와 회계법인 쪽 관계자들은 주로 "관습상"이라는 이유를 말했다. 한 회계사는 "상법상 대차대조표를 공고하게 돼 있지만 형식에 대한 별다른 규정은 없고, 기업의 입장에선 전년도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을 무난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 매일경제 3월29일자  
 
한 경제지 광고국의 부장은 "결산공고는 세로쓰기와 박스형 가로쓰기를 병행하고 있는데, 같은 분량일 때 세로쓰기의 사이즈가 더 작고, 따라서 단가도 더 낮다"며 '예산상 이유'를 들기도 했다.

한글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이에 비판적이다. 독자들이 알아보기 불편한 형식을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고, 가로쓰기 결산공고도 정착 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남영신 국어문화운동본부 회장은 "부고란은 사적인 공간이라고 치더라도 기업의 결산공고는 주주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싣는 것인 만큼 가독성을 높여야 한다"며 "언어현상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으니 기업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최인호 한겨레 말글연구소장도 "일본식 신문 관습의 잔재"라며 "숫자야말로 눈에 잘 들어오게 해야 하는데, 독자들이 알아보기 어렵다면 아무런 긍정적인 효과가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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