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업 전선이 붐빈다. 언론사의 새로운 풍속도다. 다른 일반 기업체와 마찬가지로 명퇴, 조퇴 바람 탓이다.
논술 지도 교사, 학원 강사, 번역사 등 ‘원맨’ 방식부터 음식점 개업등 ‘투자형’까지 다양하다. 부인들이 조리사 학원 등 만일에 대비해 자격증 취득에 나선 경우도 꽤 있다.

한 조간지 편집부 K모기자. 낮에는 세상소식의 무게를 다는 엄숙한 편집자이지만 해가 지면 컴퓨터 논술지도교사로 돌변한다. 강남의 한 논술학원과 계약을 맺고 해당 학원에서 보내온 수강생들의 논술 원고를 손보아 주는 것이 주임무. 학원측과는 컴퓨터를 통해 논술 원고 수정 작업이 오간다. 한 건당 5천원선. 한달에 1백만원대의 부 수입을 올린다. 논술 학원 지도 교사는 ‘선’만 닿는다면 한번 해 보겠다는 기자들이 상당수이다.

수원지역에 소재한 모 지방일간지 H기자는 영어 강사. 저녁 6시부터 두 타임을 뛰고 있다. 박봉을 이겨내기 위해서 할 수없이 나선 길이다. 취재에도 제약이 많고 무엇보다 몸이 곤죽이 되지만 ‘먹고 살자’면 할 수 없다.

공인 중개사 자격 시험 공부는 중견 기자들이 내심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 한 석간지 기자의 증언.”무심코 선배 기자 책상위에 놓인 책을 들여다보니 공인중개사 수험서였다. 올해 15년째 접어든 선배였는데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조금은 비참했다”고 털어놨다. 번역 부업도 내근 기자들이 선호하는 일이다. 취재 기자들보단 내근 기자들이 아무래도 이러한 부업이 수월하다.

일부 신문사 기자들은 부인들이 미용사·조리사 학원에 나가는 경우도 있다. 언제 있을지 모르는 ‘정리해고’ 영향을 최소화하자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인 것은 당연지사. 한 기자는 “명퇴 바람이 불면서 부쩍 아내가 불안해 한다”고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편집국에 비해 비편집국 사원들은 훨씬 절박하다. 이미 정리해고의 최우선 사정거리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식당 개업이 가장 많다. 한동안 명퇴 바람이 불었던 모 신문사의 경우 판매국 직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식당을 은밀히 개업해 ‘숨은 사장님’들이 적지 않다. 태릉에 갈비집을 개업한 한 사원은 ‘짭잘한 수익’을 올리면서 회사 근무는 그야말로 부업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들의 부업 전선은 극도의 보안속에서 진행된다. 부업 사실이 알려지면 회사쪽이나 동료들로부터 달가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신문사는 사규에 부업이나 2중 취업을 금지토록 명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이 부업전선에 나선 것은 당장 먹고 살기가 어려워서는 아니다. 앞으로를 대비하자는 미래 투자에 가깝다. 그것이 과거와는 다른 점이다.

최근 경향신문 7년차 서모 기자가 건강 탓으로 회사를 퇴사한 후 개업한 김밥 체인점이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각 언론사 기자들의 문의전화가 쇄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언론사에 불어닥친 고용 불안 현상이 기자 직업의 정체성을 그 어느 만큼 허물고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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