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각계 각층에서 발벗고 나서고 있는 조선(북한) 동포 돕기운동에 대한 언론의 태도를 보노라면 우리 언론의 도덕적 가치 기준이 도대체 어느 수준인지를 의심치 않을 수 없다.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믿을만한 국제기구의 보고와 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선(북한) 동포 돕기운동을 거들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폄하하거나 견제하고 있는데 이르러서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을 뿐이다.

모든 언론이 곤경에 처한 조선(북한)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겨레가 조선(북한)의 기아실상을 중국 연변등지의 현지취재를 통해 보도하면서 민간차원의 조선(북한) 동포 돕기운동을 적극 지지 후원하고 있으며 중앙일보도 사설등을 통해 “늦기 전에 온 국민이 북한동포 돕기에 적극 관심을 보여야 할 때”라며 조선(북한)의 참담한 기아실태에 국민적 관심을 호소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등 대다수 신문들은 조선(북한) 동포 돕기운동을 폄하하거나 견제하고 있다. 조선(북한) 동포들의 참상은 눈뜨고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감성적 동포돕기 차원’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조선(북한) 식량난의 1차적인 책임은 조선(북한) 당국에 있고 지원에 앞서 이들의 ‘자조·자구’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군량미만 풀어도 조선(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현재의 기아상태는 상당히 호전시킬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주민들이 굶어죽는데도 군비 증강에 여념이 없거나 잠수함 침투등 도발행위마저 일삼는 조선(북한) 당국을 비난하지는 않고 인도주의라는 이름으로 조선(북한)에 식량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극히 ‘감상적’일 뿐만 아니라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통박하기까지 한다. 정부에 대해서는 굶주린 조선(북한) 주민을 볼모로 삼은 조선(북한)의 이른바 ‘식량외교’에 단호히 대처해야 할 것이라는 주문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서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굶주려 죽어가는 조선(북한) 동포를 돕자는 겨레중에 그 누구도 조선(북한) 당국을 옹호해서 하는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누구도 아닌, 한 핏줄을 나눈 동포들이 굶주려 죽는 것을 모른채 방관할 수 없기 때문일 뿐이다.

그것이 ‘감상주의’라면 감상주의라고 해도 좋다. 다른 민족, 국가가 겪는 기아라 하더라도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는 것은 인류의 당연한 책무이다. 하물며 한핏줄인 북녘의 동포가 굶주려 죽어가는 것을 두고 남북의 대립이나 체제경쟁을 이유로, 나아가 조선(북한)의 붕괴를 염두에 두고 대북 지원에 제동을 거는 것은 동포애에 대한 반역이자 인류애에 대한 모독이다.

우리의 체제가 조선(북한)체제보다 낫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단지 조선(북한) 보다 경제적으로 잘 살기 때문인가. 인류가 쌓아온 문화의 토양위에서 보다 인간다운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닌지 이들 언론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북녘동포를 돕자는 운동이 결코 남북관계의 현실을 무시해서도 아니다. 조선(북한)의 기아사태가 더 진행된다면 조선(북한)의 체제가 지극히 위태롭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조선(북한)의 정정이 위태롭게 될 때 한반도의 긴장도 고조될 것이 자명하다.

그런 사태가 야기될 때 닥칠 파국적 상황도 우려되지만 조선(북한) 주민들의 아사사태를 방관한 다음에 조선(북한)측과 어떤 대화가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차제에 조선(북한)의 조기붕괴를 염두에 둔 ‘흡수통일’을 주장하고자 한다면 우리 사회가 파국적 상황의 조선(북한)을 흡수할만한 준비가 돼있는지를 먼저 헤아려봐야 할 것이다. 막무가내로 조선(북한)을 압박하는 것이야말로 ‘감성적’ 대응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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