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4시 쯤 네이버 실시간 인기검색어에는 ‘채숙진’이라는 낯선 이름이 2위에 올랐다. 공연도중 어깨끈이 내려간 신인 여가수거나 가수나 배우를 남편으로 둔 여자거나 이혼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잊혀진 B급 연예인이 아닐까, 하는 궁금증 속에 ‘채숙진’을 검색해보니 ‘대만 인기 모델 채숙진’의 ‘매춘’으로 ‘연예계가 발칵’했다고 한다.

주요 신문사닷컴 ‘대만 모델 성매매’ 두고 속보싸움

   
  ▲ 13일 오후 4시30분 경 네이버뉴스에서 채숙진을 검색한 화면  
 
'사연'은 이렇다. 스포츠서울닷컴이 13일 오전 11시30분쯤 <대만 인기모델 매춘 파문 ‘대만 연예계 재계 발칵’>이란 제목으로 “‘대만의 한 주간지는 최근호에서 대만의 인기모델 카이슈젠(蔡淑臻·채숙진)이 지난해부터 하룻밤에 50만 대만달러(약 1400만원)를 받고 매춘을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고 보도했다”고 1보를 네이버에 ‘날렸다'. 그러자 <인기모델 채숙진 1400만원 매춘 소식에 대만 연예계 긴장> (중앙) <대만 인기모델 하룻밤 1400만원 ‘매춘’파문> (한경) <대만 인기모델 채숙진 매춘... 연예계 발칵> (조선) 등의 제목으로 조선 중앙 한국 한경 등 신문사닷컴들이 그 뒤를 좇기 시작했다.

이들 언론에 따르면 한국 가수 ‘비’에게 호감을 표시해 한국에서 유명해졌다는 대만의 모델은 부도덕한 ‘매춘 연예인’으로 밝혀진 셈이다. 포털과 네티즌도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야후는 이를 주요 기사로 처리했고,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는 채숙진이 2위로 랭크됐다.

   
  ▲ 13일 오후 7시경 네이버뉴스에서 채숙진을 검색한 화면  
 
그러나 같은 날 오후 4시30분쯤 한국아이닷컴이 13일 아침 발행된 무가지 스포츠한국을 인용해, “대만의 섹시 슈퍼모델 차이수전(채숙진)이 연루된 국제 매춘사건이 실제론 차이와 외모가 비슷한 짝퉁에 의해 저질러진 ‘사기극’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네이버 검색을 기준으로, 한국아이닷컴 기사 위로 조선 조인스닷컴 등의 ‘매춘’기사가 뜨면서 사실과 오보가 인터넷상에서 공존하는 어색한 상황이 연출됐다.

사실 확인 없는 클릭수 경쟁이 빚어낸 오보 사태

   
  ▲ 13일 오후 4시(왼쪽)와 오후 7시 야후코리아 메인페이지 뉴스박스 화면  
 
그러나 속보를 미덕으로 여기는 언론사들은 재빨리 기사를 교체했다. 오후 7시 경 네이버에는 ‘매춘’기사는 모두 사라졌다. 대신 그 언론사들이 ‘매춘’기사를 보냈던 시각과 같은 입력시각으로 <대만 인기모델 짝퉁 매춘 ‘대만연예계 안도 한숨’>(스포츠서울) <국제매춘 알고보니 ‘짝퉁’사기극이라고?>(한경) <대만인기모델 채숙진 매춘... 사기극으로 드러나> (조선) <대만 인기모델 채숙진 매춘설, 사기극으로 밝혀져>(중앙)라는 기사로 교체됐다. 채숙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 언론사에 의해 5시간동안 ‘매춘’(성매매 절대 아님) 연예인이 됐고, 그로 인해 한국 제 1포털의 검색어 2위에 오르게 됐다. 

한 사람의 인권에 치명타를 가하는 기사는 한국에선 없었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대만 주간지가 어떤 시점에서 오보를 낸지 모르나 한국 언론이 1보를 날리던 시점인 13일 오전 11시는 이미 대만에서는 채숙진의 성매매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지고도 남았던 시각이었다. 한국 언론들이 뒤늦게 ‘사기극’ ‘안도한숨’이라며 호들갑 떨며 썼던 후속 기사에서 인용한 대만언론 ‘중국시보’는 이미 11일부터 채숙진의 성매매설이 사실이 아니라고 보도했다. 늦게 친 북이 잘못된 음을 낸 것이다.

더 황당한 사실은 13일 오전 한국에서 발행된 스포츠한국이 ‘중국시보’를 인용해 대만 언론의 채숙진의 성매매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보도한 것이다. 하나 같이 ‘대만 주간지’라고 출처를 밝힌 기사대로라면 스포츠서울 조선 중앙 등 언론사닷컴은 지나간 대만 주간지의 기사를 봤을텐데(?) 지나간 대만 주간지는 보면서 당일 발행된 한국 신문은 보지 않았는지, 신기한 일이다.

   
  ▲ 13일 오후 4시54분 경 채숙진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2위에 올랐다  
 
혹시, 한국 연예인이 아니니까?

대만 주간지를 인용해(직접 확인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나) 1보부터 오보를 날린 스포츠서울닷컴과 주간지를 인용하는 수고도 하지 않은 것 같은, 그러고도 마치 자신들이 그 주간지를 본 것처럼 보도했다는 혐의가 짙은 언론사닷컴, 누가 더 문제인지 얘기할 가치가 있을까? 방문자 수에 눈이 멀어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낸 오보, 다른 언론사의 보도를 손쉽게 취하려다 난 오보 앞에서는 할 말이 없다.

대만 연예인이 성매매를 했고, 안했고가 촌각을 다투면서 내보내야하는 중요한 뉴스였을까? 그렇게 중요했다면 사실 확인을 해야하지 않았을까? 혹시 한국 연예인이 아니니까, 그래서 소송당할 일은 없을 테니까? 언론사끼리 줄오보 내보내 ‘발칵’했다가 기사를 삭제하고 ‘안도’하면 없었던 일이 되는 걸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