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시절을 포함해 군사독재정권 시절 내내 언론 본연의 소명과 책무를 다하지 못했던 점을 통렬히 뉘우치고 국민과 독자들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

   
  ▲ 경향신문 2월3일자 사설  
 
긴급조치 판사 명단 공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의 과정에서 가장 먼저 국민과 독자들에게 사과한 경향신문 사설(지난 3일자 <역사적 과오의 규명과 참회에는 시효가 없다>)의 한 대목이다. 이 구절은 세상의 거울이어야 할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수많은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했다면 그 책임을 지고 반성과 사죄를 통해 다시 거듭나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너무 당연한 경향신문 반성이 돋보이는 이유

그럼에도 경향신문의 이같은 자세가 돋보이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유신 독재 시절 경향신문과 신문발행업에 종사한 여타 신문들이 현재 보여주고 있는 보도태도 때문이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서울신문 한국일보는 1970년대에도 신문 발행을 했다. 이들은 지난 74년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선포에 대해 단 한차례의 고언은커녕 난국을 극복하기 위한 대통령의 결단이었다며 잇따라 사설을 내보냈다.

대통령긴급조치 1호 선포(74년 1월8일)에 대해 당시 정부 기관지 노릇을 했던 서울신문은 74년 1월9일자 2면 <대통령의 결단>을 통해 "난국을 극복하는 길이며 총화를 창출하는 계기"라며 발벗고 미화했다.

   
  ▲ 경향신문 74년 1월10일자 사설  
 
경향신문은 같은 해 1월10일자 사설 <시련극복 위한 집약치의 단안-박대통령의 긴급조치선포의 의의>에서 긴급조치가 "번영을 지키기 위한 유신체제의 일환으로 시기적절한 예방적인 결단"이었으며 "대화를 넓혀 일체감을 심화시켜나가자"고 선동했다.

조중동·경향·한국·서울, 긴급조치 발동할 때마다 '난국 극복의 길' 선동

잇따라 발동된 긴급조치 3호(1월14일) 때에도 중앙일보는 15일자에 <국민생활안정을 위한 긴급조치>라는 사설을, 조선일보는 <1·14긴급조치의 함축-난국극복을위한 적절한 시석되기를>이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이 뿐만이 아니라 경향 동아 서울 한국일보는 긴급조치가 발동될 때마다 1면 머리기사와 2·3면을 할애해 해설기사 긴급조치 전문을 적극적으로 소개했고, 그 내용도 천편일률적이었다.

이들 신문들은 1월15일 비상군재검찰부가 장준하 전 국회의원과 백범사상연구소 백기완 대표를 첫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구속시켰다고 발표하자 약속이나 한 듯 모두 1면에 이들의 사진과 기사를 실었다.

이 같은 기사와 사설은 언론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린 일이다. 비록 당시 중앙정보부와 군 기관원들이 상주하며 지면구성에 간섭하는 등 자유로운 지면제작이 불가능했다 하더라도 수 십 년이 흐른 지금에도 상당수 언론들은 국민들을 상대로 사죄와 반성 한번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 서울신문 74년 1월9일자 사설  
 
경향신문은 지난 3일자 사설에서 "'긴급조치 시대의 언론'도 역사적 과오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며 "영구집권을 획책하며 독재체제를 강화한 유신정권이나, 이를 '법치'의 이름으로 지탱해준 법원·검찰·경찰을 비판·질타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강경한 목소리로 '불온세력 척결'을 강조하기 일쑤였다"고 했다.

경향 "지난날의 잘못 참회, 국민·독자에 용서구해야"

경향은 스스로에게도 채찍질을 했다.

"언론은 그 어떤 권력기관 못지 않게 유신정권 유지의 한 축을 담당했던 셈이다. 경향신문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수차에 걸쳐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하고 반성한 바 있다. 이번 기회를 빌려 다시 한번 유신시절을 포함해 군사독재정권 시절 내내 언론 본연의 소명과 책무를 다하지 못했던 점을 통렬히 뉘우치고 국민과 독자들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

경향은 "불행했던 과거의 상처를 치유·극복하기 위해 많은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그것 못지않게,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가해자라 할 수 있는 해당 법관·검사·경찰관·언론인들이 진심으로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는 사실"이라며 "참회와 사죄는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경향은 박정희 정권 시절 정부 기관지인 서울신문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독재정권에 협조했지만 그 시절을 청산하려는 노력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제호를 대한매일이라고 고쳐가면서까지 민족의 신문임을 자처하려 했던 서울신문은 어떤가. 일제시대엔 조선총독부의 기관지로, 독재정권 시절엔 군사정부의 기관지로 국민의 눈을 멀게 했던 서울신문은 그동안 이를 극복하려 많은 애를 써왔다. 하지만 정작 진실화해위의 판사 실명 공개 방침에 대해 "경솔한 일"이며 "마녀사냥"이라 일축했다.

'판사 명단 공개' 서울 "경솔한 일", 한국·중앙 "마녀사냥", 조선·동아 "인민재판"

무죄로 선고된 인혁당 재건위 재심 결과에 대해 "그 시절 언론도 자유롭지 못했다"고 반성했던 한국일보 역시 판사 실명공개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 동아일보 74년 1월9일자 1면  
 
유신정권에 저항하다 백지광고 사태까지 겪었다고 자찬하고 있는 동아일보 역시 지난 1월31일 <반화해 과거사위 본색 드러내기>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진실화해위의 방침이 옳지 않다"며 "진정한 화해에 역행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유신시절 광고사태를 겪으며 저항했던 주체가 회사가 아닌 동아일보 기자·동아방송 PD들이었음을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 오히려 동아일보 회사 쪽은 당시 독재에 저항하며 언론자유를 외쳤던 기자·PD 130여 명을 해고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그들이 떠난 뒤 그 역사를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또다시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아직 반성의 기색도 없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면 누구나 다아는, 지극히 당연한 말임에도 경향신문의 이번 사설이 돋보이는 이유는 바로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사에 대한 반성없이 '과거사파묻기'에만 열중하는 이들 신문들과 너무나 비교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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