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에 무죄가 선고된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 조중동은 끝내 깨끗하게 인정하지 않았다.

조선 "법적 안정성 위협하는 무분별한 재심사건 수용은 경계해야"

이번 판결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무고한 생명권의 강탈, 박정희 정권의 사법살인'이었다는 것을 32년이 지난 뒤에야 후대의 사법부가 인정한 사건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도 이런 평가를 외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스스로 이런 평가에 '물'을 흐렸다.

   
  ▲ 조선일보 1월24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24일자 사설 <'인혁당 사건' 재심, 무죄 선고의 의미>에서 "인혁당 사건은 정치권력이 법을 억압하던 시대의 산물"이라며 "재심 판결은 사법부가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인정하고 바로잡았다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조선의 평가는 여기까지였다. 정작 조선 사설의 마무리는 이렇다.

"다만 이번 재심을 계기로 정권의 과거사 파헤치기 파람에 올라탄 또 다른 재심 요구들이 무분별하게 잇따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진실의 발견'은 중요하다. 그러나 판결 뒤집기가 남발되면 '법적 안정성'이 위협받게 마련이다. 재심 결정권을 지닌 법원의, 옥석을 가려내는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과연 "30여 년 동안 반국가사범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어간 생명들에게 다시 숨을 불어넣을 수도 없는 너무나 처절한" 사건에 대고 할 소리인가. 조선의 주장처럼 "권력이 법을 억압하던 시대"엔 수많은 무고한 희생과 죽음이 아직 그 억울함을 해소하지 못하고 명예라도 회복할 심정으로 재심을 기다리고 있다.

동아 "현 사법부도 정치에 물들지 않았나 되돌아봐야"
중앙 "권력 아닌 정의의 요구에 부응하는 판단해야"

정권의 과거사 파헤치기와 이를 따르려는 이용훈 원장의 현 사법부가 아무리 못마땅해도 말이란 해야할 때가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이런 '물흐리기'식 평가는 조선일보 뿐이 아니었다. 동아일보는 사설 <재심에서 무죄판결 난 '인혁당 재건위'> 맨 마지막 문장에서 '개운치 않은' 우려를 던졌다.

"그리고 오늘의 사법부도 과거의 사법부와는 역방향에서 '정치에 물들지 않았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과거 사법부는 독재정권에 물들었고, 현재 사법부는 독재정권의 역방향 정권에 물들어 이런 결정을 했다는 것인가. 과거 사법부와 역방향은 도대체 어떤 방향을 말하는 것인지 도통 알 길이 없다.

   
  ▲ 중앙일보 1월24일자 사설  
 
중앙일보는 사설 <인혁당 무죄 선고, 국가 차원 사과·배상 있어야>에서 "무죄 선고로만 그칠 일이 아니"고 "국가 차원의 사과와 위로, 배상 등 적절한 조치가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역시 뒷부분은 '묘한' 기대로 마무리했다.

"이들 사건에서도 권력의 요구가 아닌 정의의 요구에 부응하는 사법부의 올바른 판단을 기대한다."

'권력'의 요구라니…. 이번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은 정권의 시녀 사법부에 의해 억울하게 사형당한 피해자의 유가족과 부당한 행위를 바로잡자는 수많은 시민들의 노력에 따른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도 중앙일보는 '권력'의 요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권력의 요구는 뭐고, 정의의 요구는 뭔가.

반성없는 조중동의 딴죽

   
  ▲ 동아일보 1월24일자 사설  
 
조중동을 제외하고 한겨레를 비롯한 대부분의 신문은 이번 재심 결과를 '역사를 바로세운 사건'이라고 평가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했다.

"부끄러운 (역사의) 대상에는 수사 과정서부터 선고 이튿날 전격적으로 사형이 집행된 야만적 '사법살인'이 저질러지기까지 한 마디도 진실을 말하지 못했던 우리 언론도 포함됨은 물론이다."

   
  ▲ 한국일보 1월24일자 사설  
 
적어도 독재정권의 부당한 사법살인에 저항하지 못했던, 언론의 도리를 하지 못한 자신의 과거를 속죄하지는 못할 망정 역사 바로잡기에 딴죽을 걸어서야 되겠는가. 역사 바로잡기는 한가한 얘기가 아니다. 누구나 잘못된 권력의 횡포에 희생될 수 있는, 현실의 위험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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