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모두 2004년, 2005년 사설과 기자 칼럼으로 개헌이 필요하다고 썼다. 어떤 신문은 2006년 말, 2007년 초가 적기라고 명백하게 썼다."

   
  ▲ 노무현 대통령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개헌을 정략적 발상으로 보는 시각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자신은 대통령으로서 책무를 다할 것이고 개헌도 그 연장선에서 제안된 것이란 설명이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개헌 논의 자체를 반대하는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언론의 태도를 정면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2004년 4월29일 <개헌, 우선순위 아니다>라는 사설을 통해 "2008년은 현 대통령과 17대 국회 임기가 함께 끝나는 해다. 우리는 이에 앞서 2006년 말이나 2007년 초 쯤에 개헌논의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 동아일보 2004년 4월29일자 사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비판한 노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이 개헌을 하라고 하더니) 지금 와서 안되겠다 하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이 하는 일이니까 반대를 해서 기를 죽이자는 얘기 아닌가. (개헌 발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돼도 대통령은 기죽을 일이 없고 헌법상 권한도 소멸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날 기자간담회는 예정에 없이 추진된 것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이날 오전이 돼서야 대통령 기자간담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는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단순히 '해보자'가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개헌 발의권을 행사한다는 것이어서 정국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구상은 시작부터 벽에 부딪혔다.

노 대통령 개헌제안 시작부터 반대 부딪혀

협상의 파트너인 한나라당은 개헌논의 자체를 불허하고 나섰고 다른 야당들도 조건부 찬성에서 부정적 기류로 흐름이 달라졌다. 여당 내부에서도 대통령의 개헌 주장에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됐다.

특히 여론의 방향타가 될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언론이 참여정부 임기 내 개헌은 적절하지 않으며 개헌 제안에는 '정략적 목적'이 담겨 있다고 비판하면서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탄력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 발의가 여의치 않거나 국회에서 부결될 경우 '하야' 등 제2의 카드를 준비할 것이란 관측도 무성했다. 11일 기자간담회의 초점도 노무현 대통령의 '제2카드'가 무엇이냐에 모아졌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단축은 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노 대통령 "개헌에 대통령 신임 걸지 않겠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단축을 하겠다고 하면 (한나라당이) 찬성하려다가도 안할 것이다. 개헌이 부결되면 임기를 그만두게 되면 당연히 부결시키고 선거를 빨리 하고 싶지 않겠는가. (웃음) 그건 그렇다는 것이고 그것과 관계없이 임기 단축은 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개헌 부결을 불신임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헌에 신임을 걸었을 때 불신임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신임을 걸지 않을 것"이라며 "개헌을 제안하는 것은 역사적 책무이다. (대통령의) 신임을 걸 필요는 없다. 남은 (임기동안) 국정을 착실히 마무리 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러한 주장은 개헌이 부결될 것을 알면서 제안을 했고 마지막에는 '하야'를 정치적 카드로 사용해 한나라당의 대선 구도를 흔들 것이라는 언론의 분석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야당이 탈당을 개헌 전제조건으로 요구하면 탈당 고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여당 탈당 문제에 대해서는 가능성을 닫아두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적 문제는 야당들이 개헌의 전제 조건으로 요구해온다면 고려할 수도 있다. 그런 정도로 열어 놓겠다. 임기단축은 하지 않겠다. 한나라당이나 한나라당 일부라도 개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면 입장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개헌 제안을 정략적 발상으로 여기는 정치권과 언론의 시각에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한나라당을 겨냥해 발언의 수위를 높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 정당은 대화도 안하겠다 토론도 안하겠다 하는데 민주주의 안하겠다는 것 아닌가"라며 "이것이야말로 여론의 지지를 가지고 국정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공당이 취할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 (의원) 함구령까지 내려버리는 것은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 대통령, 한나라당 겨냥 "민주정당 맞는가"

   
  ▲ 한나라당 의원총회 모습. ⓒ한나라당  
 
한나라당이 자당 소속 의원들의 개헌 관련 언론 인터뷰·방송 토론 참여 제한을 비판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정당이 그런 정당이 있는가. 민주정당 맞는가. 차기 지도자도 중대한 국가적 과제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며 "장차 5년 국정운영을 맡겠다는 정치 지도자가 발등에 떨어진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과거 정치역정을 설명하며 '원칙의 정치'를 강조했다. 그는 "자꾸 정략 얘기를 하는데 1990년 김영삼 대통령이 3당 합당할 때 안 따라간 것도 정략인가. 모두 당선 안 된다는 14대 총선을 부산에서 치른 것도 정략인가"라고 반문했다.

또 노무현 대통령은 "95년 경기도지사 선거 여론조사에서 1위를 한 일이 있다. 아마 몇 번 될 것이다. 그러나 불리하지만 부산에 가서 출마했다. 도리를 좇아서 갔다"며 "98년 종로에서 국회의원 당선되고 2000년 4월 다시 부산에 내려갔다. 제 양심이 지시하는대로 그때 그때 서야 할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 "정략적으로 정치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번 탄핵도 한나라당이 낭패를 보기는 했지만 제가 꾸민 공작이 아니고 그들 스스로 뛰어든 것 아닌가. 그 후 저를 공작의 대가로 평가한다. 높이 평가하는 것은 고맙지만 정략으로 정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개헌 문제 때문에 국정에 손을 놓는 일은 없을 것이란 점도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다 열심히 하겠다. 지장 없다. 한가지 일에만 매달리는 대통령이 어디에 있는가"라며 "제 일정표를 보여 드리고 싶다. 아무리 바빠도 경제 사회 정책 부동산 교육 정책과 관련된 일정을 취소하고 뒤로 미룬 일이 단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개헌 제안이 1회성 주장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원칙이고 옳은 일이면 끝까지 가야한다면서 대 국민 설득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나는 우리 정치에 대해 우리가 너무 정략적 계산 숫자놀음, 여기에 빠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뻔하더라도 그것이 가치 있는 일이고 옳은 일이면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추진해야 정치의 자세이고 국민의 자세"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 기자들에게 당부…"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이면 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87년 4.13 호헌 조치가 나왔을 때 (전두환 정권에) 항거하는 것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때 서릿발 같은 5공 정권 맞서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역사는 도도한 흐름이 있어서 이뤄질 것은 다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국운이 있는 나라다. 창창한 미래가 보이는 나라다. 나라가 있다면 필요할 때 개혁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앞으로 경쟁의 요체는 변화의 속도이다. 필요한 개혁 제대로 이뤄지면 따라잡는 나라에서 앞지르는 나라, 선두로 가는 나라 될 수 있지만 변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뒤떨어진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간담회 마지막에 기자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기자들이) 안 된다는 전제로 말씀을 좀 안했으면 좋겠다. 안된다는 전제로 기사쓰고 안된다고 하면 안된다.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이면 하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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