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2월19일 대선을 앞두고 진보와 보수진영은 사활을 건 대결을 준비하고 있다. 대선 결과에 따라 한국사회의 흐름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인지 올해는 벌써부터 언론의 정파적 편향성이 극에 달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노골적 대선 개입, 부끄러운 과거= 지난 97년 12월16일. 대선을 하루 앞둔 이날 주요 언론사 정치부 기자 103명은 대선 공정보도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중앙일보가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노골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기자들은 성명에서 “언론이 ‘정권을 창출할 수 있다’는 오만과 독선을 갖거나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자처한다면 더 이상 언론과 이 나라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중앙일보는 12월15일 <대선 양자구도 압축>이라는 기사를 내보내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쪽으로부터 ‘편파보도’라는 항의를 받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경고까지 받았다. 2005년을 뜨겁게 달궜던 MBC 이상호 기자의 ‘안기부 X파일’에서도 97년 대선 당시 상황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2002년 12월19일 조선일보의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 제하의 사설은 5년 만에 재현된 언론의 노골적인 대선 개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설로 꼽히고 있다.

▷정치권·언론계 “대선 보도 벌써 불공정”=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과 언론계 모두 벌써부터 불공정보도에 대한 우려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는 미디어오늘이 15개 주요 언론사의 보도책임자(보도·편집국장)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전원이 “국내 언론들이 정파적 편파성을 띄고 있다”고 응답한 것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정치권은 언론보도에 대한 평가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도 ‘편파보도’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대체로 공감했다. 우상호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특정 정당에 소속된 후보 중심으로 보도함으로써 여야의 기계적 균형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방송의 편파성을 오랫동안 문제삼았던 신문매체가 더 심각한 편향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2002년 대선 때 방송, 신문, 인터넷신문 보도의 공정성이 논란이 됐는데 올해도 벌써 그런 경향을 띄고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며 “모 언론사가 지난해 말 발표한 2006년 10대 뉴스를 보면 북 핵실험이 꼽히지 않았는데 의도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신년 사설에 담긴 ‘대선 메시지’= 일부 언론의 신년 사설도 논란의 대상이다. 특정 정당의 대선 구호를 대변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1일 사설에서 “대한민국은 지난 10년 가까이 세계 공통의 선진화 화살표를 거슬러 혼자서 거꾸로 달려왔다”고 주장했다.

문화일보도 같은 날 사설에서 보다 노골적으로 “2007년은 1987년 체제의 ‘잃어버린 후반 10년’을 만회하는 부활의 정초(定礎)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잃어버린 10년’은 한나라당이 정권을 내준 지 10년이 됐다는 것으로 한나라당의 정권탈환 구호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전여옥 의원은 지난해 6월 <잃어버린 10년, 한나라당 꿈은 이루어지는가>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일부 언론이 신년 사설에서 바람직한 대선 후보의 구체적인 기준을 공개한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동아일보는 “‘생산적인 일을 해서 꼬박꼬박 세금을 내 봤느냐’ 여부도 차기 정권을 고르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선 개입 논란, 반복되는 이유= 언론의 대선 개입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는 ‘국민의 시각’이 아닌 언론사 또는 언론사주의 시각으로 대선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87년 민주화운동 이후 권력으로부터의 압력은 줄어들었지만 언론사주나 자본으로부터의 압력은 오히려 강화됐다.

언론의 신뢰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지만 영향력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그러나 일부 언론의 ‘대선 개입’이 여론의 물줄기 자체를 뒤바꿔 놓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언론이 정보를 독점하는 시대는 지났고 언론의 불공정 보도 감시도 예전보다 체계화, 전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용성 한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신문이 지지후보를 밝힐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정치적 중립성은 중요하고 지지후보를 밝힌다 해도 논설과 기사는 분리돼야 한다”며 “언론의 대선 개입을 막기 위해 미디어간 상호 감시와 시민사회의 견제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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