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하면 '지도자론'이고, 남이 하면 '대선선동'인가.

3일자 동아일보에 눈에 띄는 기사가 실렸다. 동아는 1면 <친북성향 일부 단체 북한 신년사설 '복창'>에서 친북성향을 보여온 일부 단체가 북한의 공동사설과 비슷한 주장을 담은 신년사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면서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와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의 신년사를 제시했다.

"반통일 극우집권 분쇄"는 선동, "안보·시장 철학 확고한 인물에 나라 맡겨야"는 '지도자론'?

동아는 범청학련 남측본부가 새해결의문에서 "한나라당이 재생할 수 없도록 결정적인 타격을 안겨야 한다"며 "반보수 대연합을 구축하고 한나라당과 뉴라이트 등 반통일 극우세력의 재집권 기도를 분쇄하기 위한 투쟁에 총집중한다"고 '선동'했다고 보도했다.

   
  ▲ 동아일보 1월3일자 1면  
 
이어 동아는 "이들 단체가 예년에 신년사를 내지 않았으나 대선이 있는 올해 신년사를 통해 일제히 대선 개입을 공언했다"며 특히 "북한이 1일 남한 대선을 겨냥해 '반미와 반한나라당'을 부추기는 공동사설을 발표한 것을 두고 '부당한 내정간섭'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북측 주장과 비슷한 주장을 펴 논란이 일 전망"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의 주장은 한마디로 친북 성향의 국내 단체가 북한 신년사설을 본따 보수세력의 집권을 막으려고 선동하고 대선에 개입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친북성향이라는 것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정견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 단체가 내세운 '차기 지도자론'까지 막는 것은 지나친 주장이다.

무엇보다 잣대가 동일해야 한다. 같은 시기 동아일보의 주장은 어떠했나. 동아는 1일자 신년 사설 <깨어 있는 국민이라야 산다>에서 "혀끝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정치꾼이 아니라 국가안보와 시장경제에 확고한 철학을 가진 인물에게 나라를 맡겨야 한다"고 했다. 이 주장은 안보와 시장를 중시하는 '보수적인' 철학을 가진 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동아일보 1월1일자 사설  
 
동아일보가 합리적 보수를 자처한다면

동아일보가 합리적 보수를 자처한다면 자신의 주장과 배치되는 쪽에 있는 사람들의 주장에 어떤 논리가 잘못됐는지를 논박하면서 설득력을 확보하는 게 맞다. '친북' '반보수' '반미'라는 말을 동원해 상대방을 색칠하는 방식으로는 독자를 납득시키기 어렵다. 또한 남을 비난하기 위한 논리와 그 표현방식도 공정하고 공평한 잣대로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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