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돋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번에도 각 신문사들은 저마다 신년사설을 쏟아냈다. 대선의 해에 전국단위 종합일간지들이 꺼내든 화두는 무엇일까? 신년사설에 담겨진 신문사들의 금년 행보를 미리 짚어보자.
 
-조선 : 국가 지도자를 새로 뽑는 해
-중앙 : 국민이 중심을 잡아야 나라가 산다
-동아 : 깨어있는 국민이라야 산다
-한국 : 나라도 개인도 행복해야 한다
-경향 : ‘나와 너’의 세상을 위하여
-한겨레 : 소통의 바람길 내 불신의 장벽을 허물자

 
   
  ▲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사옥(왼쪽부터)  
 
조중동이 붙잡은 건, 위에서 봤다시피, '국민'이다. 조선은, 제목에서 암시하듯, (국민이) 국가지도자를 잘 뽑아야 한다고 분위기를 잡는다. 중앙도 "국민이 중심을 잡아야 나라가 산다"고 맞장구친다. 동아도 뒤질세라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고 거든다. 이 모양 조중동의 신년 레파토리는 '국민' 타령이다.
 
이것만 보면, 이들 신문이 누구보다 국민을 중시하고 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에게 국민은 노무현 대통령과 맞은편에서 대각을 이루는 허울좋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나라를 망친 노 대통령에 맞서 대한민국을 바로 세울 집단이 현 시점에선 국민 밖에 없다는 의미에서다.
 
그렇다고 해서 조중동이 국민의 힘을 무한정 떠받드는 것도 아니다. 국민의 각성이 요청되는 것은 자신들을 다스릴 국가 지도자를 뽑을 때까지에 한해서다. 그것 말고 다른 쓰임새는 없다. 요컨대 '빼앗긴 10년'을 되찾기 위해서 "국민이 중심을 잡아야" 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7년은 그야말로 "국가 지도자를 새로 뽑는 해" 아닌가 말이다.
 
'국민'을 강조한 조중동의 신년사설에서 '지도자'란 단어가 넘실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조선일보에게 '지도자'는 정감록의 주인을 기다리는 듯한 천기누설의 소망과 대망의 언어다. 이 말은 조선일보 사설에서만 무려 20회나 등장한다. 흔하디 흔한 '국민'이란 말보다도 더 많이 나온다. 이것만 봐도 조선이 정작 무엇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지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이 중앙일보 사설에서는 7회, 동아일보 사설에서는 2회 쓰였다.
 
반면 한겨레 사설에는 '지도자'란 단어가 아에 나오지 않는다. 경향과 한국에선 딱 한차례 등장한다. 그러나 그 의미는 조선과 천양지차다. 조선이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차기 대통령의 의미로 이 말을 사용했다면, 한국은 노 대통령을 가리키는 의미로, 그리고 경향은 광의의 정치인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했다. 모양은 같되 뜻은 정반대인 셈이다.
 
조선일보의 남다름은 이것 말고도 더 있다. 조선일보에는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노무현'의 줄임말인 '노'라는 말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대통령 혹은 '이 정권'이라 부를 뿐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동아일보 신년사설에도 '노무현'(노)이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위정자들' '현 정부' '현 정권'이란 표현만 언뜻 언뜻 눈에 스칠 뿐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왜 신년사설에서 '노무현'이란 이름을 부르길 꺼려했을까? 자세한 내막은 알 길이 없다. 다만 이제껏 노무현 대통령을 저주해 온 그간의 행적으로 미루어 보건대,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백마 타고 오실 님(지도자)을 그리는 신성한 공간이 '노무현'이라는 '사악한' 이름 때문에 오염되는 걸 방지하고자 그리 한 것은 아니었을까.
 
조중동이 신년사설에서 금년 대선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며 '지도자'를 바로 뽑을 '국민'의 각성을 촉구했다면, 한국과 경향 그리고 한겨레는 이 땅에 편만한 '불신'에 눈을 돌렸다. 제목부터 <소통의 바람길 내 불신의 장벽을 허물자>로 잡은 한겨레 사설에는 '신뢰'란 단어가 3회, '믿음'이란 단어가 1회, '불신'이란 단어가 5회 등장한다. 
 
마틴 부버의 '나와 너'(I & Thou)를 연상시키는 경향의 사설에도 '신뢰'란 단어가 5회, '믿음'이란 단어가 1회, '불신'이란 단어가 7회 등장한다. '나라와 개인의 행복'을 이야기한 한국일보도 '신뢰'란 단어를 4회, '믿음'이란 단어를 1회, '신용'이란 단어를 1회 사용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조선과 동아에는 이런 단어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07년을 맞는 국민에 대한 주문도 신문들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한겨레는 "희망의 공동체로 바꾸는 건 바로 당신"이라고 떠민다. 경향은 " '차이'와 '다름'을 기피, 혐오하는 집단주의, 순혈주의"에서 벗어나 "공존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고언한다. 한국일보는 양극단의 불신을 중화시키기 위해 언론의 역할을 다하겠노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반면, 조선은 "오늘 우리 사회의 모든 혼란은 그 뿌리가 지도자의 혼란에 있다"며 노 대통령에게 책임을 전가시킨다. 중앙은 "또다시 후회하지 않으려면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새 지도자를 제대로 선택해야 한다"고 훈계한다. 동아는 "국가적 우울증을 치유할 유능한 지도자를 유권자의 힘으로 탄생시키려면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고 선동한다.
 
모든 것을 새 지도자의 탄생에 귀착시키는 조중동의 말과 '나와 너, 우리의 소통과 연대'를 강조하는 한국, 경향, 한겨레의 말이 신년사설에서부터 이렇듯 충돌한다. 그런데 조중동의 말처럼, 지도자만 바꾸면 이 나라의 모든 문제들이 과연 일거에 말소될 수 있을까. 혹 그런 태도야말로 2007년에 우리가 힘써 배격해야 할 정치환원주의는 아닐까.
 
문한별 / 언론인권센터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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