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자부 이경수 서기관 ⓒ국민일보 쿠키뉴스  
 
KBS의 칼라TV 시청료가 2500원으로 인상된 것은 KBS의 로비 때문이었다는 증언이 나와 파장이 예상된다.

현직 산업자원부 서기관으로 근무중인 이경수 씨는 28일 출간한 '과천블루스'(지식더미)에서 자신이 경제기획원 물가3과에서 근무했을 때의 경험을 근거로 이 같이 주장했다. 이 외에도 재정경제부를 거쳐 산자부로 옮기기까지의 공직에 있으면서 벌어졌던 공무원 사회의 각종 부조리에 대해 폭로했다.

"KBS 사장, 장관·국무총리·청와대에 전화해 시청료 2500원으로 해달라 요구"

이 서기관에 따르면 지난 81년 칼라TV 시청료 결정 당시 적정가격이 1100으로 산출됐음에도, KBS 사장이 경제기획원 장관, 국무총리, 청와대에 전화를 걸어 2500원으로 해달라는 요구에 따라 결정됐다는 것이다.

이 서기관은 81년 2월 칼라TV 시청료를 산출하라는 지침을 받은 뒤 KBS 직원과 만나 시청료 산출 관련자료를 보며 협의에 들어갔다. 당시 KBS에서 제시한 가격은 2500원이었다. 이 서기관은 "흑백TV는 800원인데 2500원은 너무 비싸다. 칼라TV 방송이 시작되면 수백배의 광고료 수입이 들어올텐데 2500원은 너무 높다"며 "KBS는 매년 예비비를 사용해 인건비를 올렸던데 이렇게 돈을 펑펑 써도 되느냐"고 되물었다.

KBS 직원은 이에 "KBS 직원 임금은 타 방송국의 60% 수준 밖에 안된다. 동종업종끼리는 비슷하게 임금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좀 올리다보니…"라고 대답했다고 이 서기관은 전했다.

이후 이 서기관이 수요 및 수요증가율, 광고료 수입증가율 등을 활용해 1100원이 적정 시청료임을 도출해 과장, 국장, 차관 결재까지 마치고 장관 결재만 남겨놓고 있었다. 그러나 KBS 내부에서 1100원은 너무 낮다며 정부에 로비를 하기 시작했다고 이 서기관은 전했다.

이 서기관은 당시 상관이었던 과장이 자신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고 썼다.

"어제 일요일에 KBS 사장을 비롯한 전 임원들이 시청료 1100원이 너무 낮다고 청와대, 국무총리실, 국회 등 온 동네방네를 쑤시고 돌아다닌 모양이야. KBS 사장도 우리 장관에게 전화하고, 국무총리와 청와대 경제수석에게도 전화했대.…그래서 국장이 지금 장관실에 갔다 왔는데 1안, 2안, 3안을 만들어서 결재를 다시 올리래. 1안은 1100원, 2안은 1800원, 3안은 2500원으로 해서."

이 서기관은 "국민들이 매달 1400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반면, KBS는 수십억 원의 여유 자금이 발생해 방만한 경영으로 연결된다.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느냐"며 저항했지만 결국 지시대로 3가지 안을 올려 결재를 받았다고 했다. 이후 칼라TV 시청료 징수는 81년 4월1일부터 시행됐다.

"건교부직원·투기꾼, 판교 신도시 개발 5년전부터 정보 빼내 땅 사들여"

이밖에도 이 서기관은 판교 신도시 개발 5년전부터 개발정보를 파악해 미리 땅을 사들였다고 폭로했다.

판교 신도시 개발을 발표한 지난 2001년 7월2일 산자부에서 근무하던 중 같은 부서 부하직원과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부하직원 박모 사무관 : "졸부·투기꾼·건교부 놈들은 5년 전부터 판교가 신도시 개발 예정지라는 걸 알고 미리 땅을 구입했어요. 그러니 떼돈 벌게 생겼지요."
이 서기관 : "뭐? 5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구?"
박 사무관 : "건교부는 택지개발을 위해 평소 산하 연구기관에 신도시개발 관련용역을 주고 있어요. 이 용역에는 토질 전문가, 지질학 전문가, 문화재 전문가 등이 다수 참가해요. 이들은 지표조사를 통해 지질조사, 토양조사를 하고, 조사가 끝나면…동시에 어느 지역이 택지개발지역이고 택지개발 가능지역인지를 결정하구요. 용역기관은 이런 결과를 담은 신도시 개발 용역보고서를 건교부에 제출하지요. 그런 후 입소문을 통해 관련 개발정보가 좌악 퍼져 건교부 직원들은 다 알게 돼요. 그들은 이 정보를 자기 친인척에게 알려주고 땅을 구입하라고 하지요."

이 서기관은 아예 이 보고서가 중개업소에 유출되기도 했다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런 보고서가 5년 전부터 강남 중개업소를 돌아다녔다는 거예요. 중개업자나 기획부동산 놈들이 돈주고 개발정보를 빼낸 거지요. 이제는 땅투기꾼·복부인·건설사 놈들이 땅 구입을 완료한 상태지요.…이제 건교부 장관이 판교 개발을 공식 발표했으니까 판교 땅값은 곧 폭등할 거예요…"(박 사무관)

또한 이 서기관은 노태우 정권 시절 행정계장의 업무가 고위 간부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안기부·보안사·시경 요원들에게 국고로 비자금을 만들어 금품을 건네는 것이었다는 관행도 소개했다. 혹시라도 정보기관의 요원들에게 밉보이면 허위로 보고해 해당 간부의 출세길이 막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공공연히 있었다는 것이다.

"가라공문 만들어 비자금 조성, 안기부·보안사 요원에 넘기기도"

이 서기관은 89년 1월말 경제기획원 근무 당시 심사평가총괄과장과의 대화에서 이같이 전했다.

당시 과장은 "행정계장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비자금을 마련해서 국장에게 드리면 국장은 그 돈을 안기부나 보안사, 시경 사람들에게 준다.…이들은 월 1회 중앙부처 국장급 이상 공무원들의 동향을 자기네 본부에 보고하는데, 그 때 어떤 국장이 여자를 밝힌다, 업자에게 돈을 많이 받아먹는다, 야당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고해버리면 그 국장은 출세가 끝이다."라고 말했다고 이 서기관은 전했다.

과장은 이어서 비자금 조성에 대해 "'가라공문'을 통해, 즉 공문을 허위작성해서 준비한다"며 "대한민국의 모든 행정계장들이 이 짓을 하고 있으니까 일종의 공인 도둑질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고 서기관은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