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단체의 근현대사 대안교과서 내용을 두고 일부 보수언론이 토론회장에서 벌어진 폭력만 집중 부각하는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뉴라이트 단체의 후원을 받고 보수성향의 교수들이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교과서포럼은 지난 11월30일 서울대에서 교과서 시안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들은 시안에서 △일제식민지 시기를 ‘근대로의 주체적 이행과정’으로 △4·19 혁명을 ‘4·19 학생운동’으로 △박정희 시대를 ‘군부 엘리트가 주도한 산업화 시대’로 △5·18 광주 민중항쟁을 ‘소외된 세력의 분노’로 규정했다. 이 자리는 시안 내용에 반발하는 4·19혁명동지회 등 4·19 단체들이 주최 쪽과 심한 몸싸움을 벌이면서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 지난 11월30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서울대학교 사범대 교육정보관에서 열린 ‘교과서포럼 6차 심포지엄-한국근현대사 대안 교과서, 이렇게 고쳐 만듭니다’에서 포럼 도중 4.19혁명동지회, 4.19유족회 등 5개 관련단체 회원들이 들어와 포럼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앞서 언론들은 이러한 내용이 알려진 11월 말부터 집필진의 역사인식을 문제삼는 기사와 사설을 내보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교과서 내용에 대한 자사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시안 토론회장에서 벌어진 폭력사건만을 눈에 띠게 보도했다.

실제로 조선일보는 사회면(10면) 머리기사로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 ‘아수라장’>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4·19를 혁명이 아닌 학생운동으로 폄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4·19 민주혁명회 소속 안승균씨의 말 한마디 이외엔 이들이 왜 폭력을 휘둘렀는지에 대한 설명도, 분석도 싣지 않았다.

같은 날 동아일보도 <4·19에 ‘뺨 맞은’ 뉴라이트 교과서/관련단체 회원들 심포지엄 참여교수들 폭행>(10면)에서 “아침에 신문을 보고 화가 난 회원들이 버스 2대를 빌려서 왔다”는 단체 회원들의 짤막한 방문 경위와 함께 이들의 폭력행사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그러나 동아는 2일자 사설을 통해 “어떤 경우에도 역사 인식이 반동의 경향을 보여선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조선일보 이선민 문화부 차장은 2일 <사관전쟁>이라는 칼럼에서 “오랫동안 학계와 교육현장을 장악해 온 좌파민족주의에 대항하는 다양한 역사 해석이 제시되며 합종연횡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번 사태(토론회장 몸싸움)는 이런 역사관의 백화제방이 자칫 폭력에 의해 위협받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이 차장은 한겨레 경향 등이 새 교과서를 일본의 ‘새 역사를 만드는 모임’에 빗대어 비판한 데 대해서도 “국민의 반일 정서에 호소해 자기와 다른 사관을 공격하려는 정치선동”이라고도 규정했다.

결국 조선일보는 사설이나 기자개인의 칼럼 어디에도 새 교과서 내용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도, 반대로 교과서의 주장이 옳다는 판단도 하지 않고 ‘폭력사태’와 ‘정치선동’의 우려만 평가하고 말았다.

5·18유족회 정수만 회장은 “사실보도도 중요하지만 일부 언론은 교과서의 문제점에 대해 제대로 짚지 않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국론만 더 분열될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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