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비겁했다. 언제는 아니 그랬을까마는, 이번 뉴라이트 교과서 건과 관련해선 특히 그러했다.
 
입만 열면 교과서 타령을 해댄 조선일보였다. 작금의 역사교과서가 편향되고 왜곡됐다고,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고, 서둘러 고쳐야 한다고, 그래야 대한민국이 바르게 된다고 목이 쉬도록 노래한 그였다. 
 

   
  ▲ 조선일보 12월1일 10면  
 
얼마나 열심히 불러댔는지 기억을 되살릴 겸 몇 개만 끄집어내어 감상해 보자.
 
조선일보는 지난 9월에 "사회주의 중국은 이렇게 좌파 이데올로기와 '민족끼리' 신화를 벗어던졌는데 우리 역사 교과서는 여전히 이념에 파묻혀 허우적거리고 있다"며 "이러다간 사회주의 중국에서 한국 중·고교생 역사 교과서까지 수입해야 할지도 모를 처지가 돼 버린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고 바람을 잡았다.(사설, <중·고교 역사 교과서도 중국 것 수입해야 하나>, 2006.9.4)
 
보름 전엔, 8월15일을 건국일로 떠올리는 국민이 너무 적다는 갤럽의 여론조사를 인용하며 (이런 현상이) "민주체제를 지켜 온 지난 60년 성취의 건국사를 모독하고 부인하는 세력이 기승을 부리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고 언성을 높였다. "건국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가 등장"한 탓에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을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집권세력이 단정하는 세상이 됐다"는 것이다.(사설, <8·15에 생각하는 대한민국 건국의 의미>, 2006.8.15)
 
2004년 10월, 국회 교육위 국감에서 권철현 한나라당 의원이 "일선 고등학교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금성출판사)가 북한 쪽에 편향돼 있다"고 주장하자, 조선일보는 기다렸다는 듯 "우리 아들 딸들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적 시각에서 서술한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교재로 배우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사설로 되받으며, "역사 교육을 학생들의 머리 속에 좌파적 이념을 심으려는 정치투쟁, 이념투쟁의 도구로 삼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고 맞장구쳤다.(사설, <'새마을' 비판하고 '천리마' 찬양하는 역사 교과서>, 2004.10.5)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권 의원의 발언을 '의도적 왜곡 날조'요 '정치선동'이라고 비난하며 사과를 요구하자, 조선일보는 그 다음날 "도대체 권 의원이 말한 문제 가운데 무엇이 잘못됐다는 것인가"고 감싸안으며 "이런 식의 역사를 걱정하는 쪽이 정상인지, 오히려 이런 걱정을 색안경 썼다고 몰아붙이는 쪽이 제정신인지는 국민들이 판단할 일이다"고 쏴붙이기도 했다.(사설, <역사 교과서 편향 따지지 않으면 뭘 따지나>, 2004.10.6)
 
그런 조선일보였기에,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교과서 포럼'을 추진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반색하고 나선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고 논리적인 반응이랄 수 있었다.
 
"정치학·경제학·사회학·서양사 등을 전공한 40~50대 중견 학자들이 대한민국사를 다시 쓰겠다고 나섰다. 고교 현대사 교육의 좌파 편향성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교과서 포럼'도 추진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역사는 말이 아닌 대접을 받고 있다.... 자라나는 세대를 가르치는 현대사 교과서는 대한민국을 태생적으로 잘못 태어난 국가처럼 기술하고 있다.... 이제 양식있는 학자들이 나서서 과감하게 수정주의 사관의 폐기 선언을 해야 할 때가 됐다.... 대한민국을 만들고 대한민국을 지키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역사인식을 반영한 진정한 대한민국사가 나와야 한다."(사설, <균형과 긍정의 대한민국사 복원을>, 2005.1.7)
 
이후 조선일보는 '교과서 포럼' 쪽에서 무슨 말이 흘러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사설을 동원해 여론화작업을 불지폈다. "(필자들의) 폐쇄적·감상적 민족주의가 현대사 교과서의 좌편향을 초래했다"는 말이 나왔을 때, 조선일보가 즉시 사설로 "폐쇄적 민족주의의 관점에다 역사적 증거에 의해 배격당한 좌파 수정주의 사관을 얹어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술했으니, 분단과 예속과 독재의 역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에코 효과를 넣은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사설, <편향된 역사 교과서, 편향된 필진이 문제다>, 2005.1.24)
 
조선일보는 또 최문형 한양대 명예교수가 '교과서 포럼' 심포지엄에서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들이 구한말 역사에서까지 학생들에게 민중·민족 이념을 불어넣는 데만 치중해 한반도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던 열강들의 국제관계를 제대로 기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을 때도, 사설로 "'민족'과 '민중'의 이름 아래 특정 이념을 주입하고 망국에 대한 자아도취적 합리화나 가르친다면 그런 역사교육은 자라나는 세대를 '눈 먼 세계인'으로 만들 뿐이다"고 화답하기를 마지 아니하였다.(사설, <'민중·민족'으로 진실과 세계를 덮어버린 역사교과서>, 2005.12.14)
 
그리고 드디어 2006년 11월29일. '교과서 포럼'측에서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모아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시안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근대의 이행과정이었다"고 기술하고, 4.19는 혁명 아닌 학생운동이라 격하시키고, 5.16은 군사쿠데타 대신 '5.16혁명'으로 높이고, 유신체제를 "국가적 과제 달성을 위한 국가의 자원동원과 집행능력을 크게 제고하는 체제"라고 찬양한 뉴라이트 교과서는 이른바 조선일보판 '진정한 대한민국사'라 할 만 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조선일보의 예상을 크게 비껴나갔다. 여론은 싸늘했다. 싸늘하다 못해 겨울바람처럼 매서웠다. 편향을 바로잡는답시고 반대편 극단으로 치달은 뉴라이트의 시대착오적 극우행보에 대해 시민들은 크게 분노했고, 언론들은 등을 돌렸다.
 
경향신문은 <왜곡과 편견에 찬 뉴라이트 근·현대사 교과서>(2006년 11월30일자 사설)라는 사설을 통해 "산업화와 경제발전에 성공하면 쿠데타도 '혁명'으로 둔갑할 수 있다는 그 '용감한' 역사인식이 놀랍기만 하다"고 "구시대적 수구극우의 편향으로 회귀하려는" 교과서 포럼의 시안에 직격탄을 날렸다.
 
한국일보도 경향신문보다는 조심스러웠지만 "미시적이든 거시적이든 군이 무력을 사용해 정권을 잡는 행위나 그런 행위를 용납하는 행위는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5ㆍ16이 쿠데타가 아니라는 주장에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사설,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에 대한 우려와 기대>, 2006.11.30)
 
한겨레신문은 한결 날선 목소리로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독재와 인권유린을 예찬하고, 시장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듯하면서도 국가 동원체제의 효율성을 찬미한다. 자유주의를 앞세우면서도 자유·인권·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를 외면한다"며 "책자 곳곳에서 정신병증이 느껴지는 것은 이런 착종 때문"이라고 일갈했다.(사설, <스스로 반민주·반자유·반시장주의를 선포한 뉴라이트>, 2006.12.1)
 
서울신문과 국민일보도 각각 <뉴라이트 교과서의 위험한 역사인식>과 <뉴라이트 역사교과서의 자승자박>이란 사설을 통해 "합의된 역사 평가를 비틀고 유신과 5·18 피해자들이 엄연히 살아있는 현실에서 독재를 찬양하거나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일은 뉴라이트가 모종의 목적을 지닌 정치지향적 수구세력이라는 의심을 확신으로 굳히게 한다"거나 "이쯤 되면 정치적 의도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불순한 의도에 앵글을 들이댔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마저 딴소리를 내뱉은 것이었다. 중앙일보는 <뉴라이트, 유신까지 찬양하나>는 제하의 사설에서 "우리는 이 교과서의 역사 인식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본다"며 "좌파의 역사 인식을 비판한다고 해서 반동적으로 유신까지 정당화한다면 누가 뉴라이트 운동을 지지하겠는가"고 선을 그었다.(2006.12.1)
 
'조선일보 아류'란 말을 들었던 동아일보 또한 하루이틀 늦게 <현대사 해석의 극단성을 경계한다>는 사설을 통해 "좌편향 시정이라는 이유만으로 유신까지 찬양한다면 또 다른 '극단'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어떤 경우에도 역사 인식이 반동의 경향을 보여선 안 된다. 그것은 역사의 퇴보일 뿐이다"고 뉴라이트 교과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2006.12.2)
 
이쯤되면 조선일보도 가타부타 목소리를 내야 했다. 뉴라이트 교과서가 올바른데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국민이 잘못됐다든지, 아니면 뉴라이트 교과서가 의욕이 너무 지나쳐 왜곡과 편향의 헛발질을 했다든지, 무언가 분명한 소리를 내야 했다. 평소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신문이라 자부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조선일보는 침묵했다. 끝내 침묵했다. 뉴라이트 교과서 파문이 인지 1주일이 다 돼가는데도 조선일보는 그 흔한 사설 하나 작성하지 않고 비겁하게 입을 다물었다. 대신 대안교과서 토론회에서 4·19혁명 관련 단체 회원 수십 명이 토론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토론회 자체가 무산된 것만 물고 늘어지며 "지금 우리 사회는 20세기의 집단기억을 둘러싸고 '사관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고 애매하게 둘러댔다.(조선데스크, <사관 전쟁>, 2006.12.2) 조선일보의 말은 그게 다였다.
 
왜 그랬을까. 뭐가 무서워서 굳게 입을 다물었을까. 모두가 '아니오'라고 말할 때 홀로 '예'라고 말하는 건 용기다. 그러나 모두가 '아니오' 라고 말할 때 이처럼 홀로 침묵하는 건 비겁이다. 겁약이다. 더구나 역사교과서 문제라면 조선일보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이슈 중의 이슈 아닌가.
 
틈날 때마다 불만과 선동의 군불을 때며 근현대사 교과서에 담긴 친북 반미 자학사관을 개조해야 한다고 설치던 조선일보가, 막상 교과서 시안이 공개되고 그에 대해 비난의 쓰나미가 몰려올 기미가 보이자 눈알만 굴리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기회주의적 처세의 전형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배포도 없이 어떻게 '대한민국 일등신문'이라 자임하는가.
 
지난 92년 조선일보는 <조선일보가 가는 길>이란 제하의 창간기념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어렵다고 해서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고 큰소리쳤다. 또한 "조선일보는 창피하다고 해서 잘못된 판단에 집착하지 않는다"고도 했다.(1992년 3월5일자 사설) 나아가 2000년 3월5일에는 "조선일보의 '하고 싶은 말'을 아예 말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 어떤 기도에도 조선일보는 굴복하지 않는다"(사설, <상소의 정신으로>, 2000.3.3)고 호언하기도 했다.
 
'조선일보가 가는 길'이 그새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리고 '상소의 정신'이 휘발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뉴라이트 교과서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하지 않을까? 비겁하고 심약한 신문이란 말을 정녕 듣기 싫다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문한별 / 언론인권센터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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