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단체의 근현대사 대안교과서 내용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일제식민지 시기를 '근대로의 주체적 이행과정'으로, 4·19 혁명을 '4·19 학생운동'으로, 박정희 시대를 '군부 엘리트가 주도한 산업화 시대'로, 5·18 광주 민중항쟁을 '소외된 세력의 분노'로 격하시킨 새 대안교과서의 내용은 과거 반세기 가까이 우리의 역사인식과 교육을 황폐화시켰던 시대로 회귀한 것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뉴라이트 교과서 조용하던 조선·동아, '아수라장'에 방점

이 교과서를 제작·의뢰한 곳은 교과서포럼으로, 뉴라이트 단체한테서 후원을 받고 보수적인 교수들이 공동대표와 운영위원회를 맡고 있다.

▷조용하던 조선·동아, '토론회 아수라장' 안놓쳐= 이틀에 걸쳐 이 내용을 보도하고 있는 언론 가운데 눈에 띠는 기사는 오늘자(1일) 조선일보에 실려 있었다.

교과서포럼은 어제(11월30일) 서울대에서 새 대안교과서의 시안을 놓고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는 4·19혁명동지회 등 4·19 단체들이 4·19를 학생운동으로 격하시킨 교과서 내용에 반발해 주최 쪽과 심한 몸싸움을 벌여 토론회 자체를 무산시켰다.

   
  ▲ 조선일보 12월1일자 10면  
 
조선일보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사회면(10면) 머리기사 제목은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 '아수라장'>이었다. 원고지 4매 분량의 짧은 기사에 "4·19를 혁명이 아닌 학생운동으로 폄하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4·19 민주혁명회 소속 안승균 씨의 말 한마디 이외엔 이들이 왜 폭력을 휘둘렀는지에 대한 설명도 분석도 없었다.

기사를 아무리 읽어봐도 그저 토론회장이 교과서에 반대하는 이해관계자들의 시위로 아수라장이 됐다는 말 외엔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찾을 수 없다.

   
  ▲ 동아일보 12월1일자 10면  
 
동아일보도 이와 유사한 기사를 실었다. <4·19에 '뺨 맞은' 뉴라이트 교과서/관련단체 회원들 심포지엄 참여교수들 폭행>(10면)이라는 기사에서 동아는 "아침에 신문을 보고 화가 난 회원들이 버스 2대를 빌려서 왔다"는 단체 회원들의 짤막한 방문 경위와 함께 이들의 폭력행사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이밖에 세계일보도 8면에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 아수라장>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들 신문의 대안교과서를 둘러싸고 벌어진 폭행사태에 대한 인식은 다른 신문들과 확연히 차이를 두고 있다.

<"뉴라이트교과서 통과 힘들듯">(서울 10면 머리기사) <뉴라이트 교과서의 위험한 역사인식>(서울 사설)
<교과서포럼 '역사왜곡' 일본 '새역모' 판박이>(한겨레 1면) <"5·16이 혁명이면 '일제 산업화'도 혁명인가"> <"4·19가 혁명 아니라니!" 격렬 몸싸움>(한겨레 10면) <스스로 반민주·반자유·반시장주의를 선포한 뉴라이트>(한겨레 사설)
<"4·19혁명을 학생운동이라니…"> <"5·16은 쿠데타"…뉴라이트 내부분열>(경향 8면)
<뉴라이트 역사교과서의 자승자박>(국민 사설)
<"좌편향 바로잡으려다 대안교과서 역편향 오류"> <4·19단체 "학생운동이라니…">(중앙 10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30일자 신문에서도 대안교과서에 대한 학계의 비판과 우려에 대해 한마디도 싣지 않았다. <"5·16은 쿠데타 아니라 혁명/유신체제가 국가 동원력 높여">(조선 21면) <"5·16은 혁명, 4·9는 학생운동/유신은 국가능력 크게 높인 체제">(동아 4면 하단)라는 제목으로 대안교과서 내용을 소개하고 현행 교과서와 차이가 있다고만 기술했다.

▷한겨레의 뒤늦은 역사왜곡 대응= 또 한 군데 주목해 볼 매체가 있다. 바로 한겨레. 한겨레는 1일 1면 기사에 관련기사 2건, 사설까지 게재해 이날 보도한 신문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를 비판했다. 그러나 전날 한겨레는 연합뉴스의 짤막한 기사를 그대로 전제하는데 그쳤다.

같은 날 경향신문은 1면 <교과서 '한국판 새역모' 파문>, 5면 <"일제가 근대문명 이식…한국발전 토대 마련"> <"퇴행적 역사인식 주입 황당"> <역대 대통령 어떻게 평가했나>, 사설 <왜곡과 편견에 찬 뉴라이트 근·현대사 교과서>까지 지면을 펼쳐 강하게 비판했다.

한겨레는 하루 늦게, 그것도 경향의 전날 1면 기사와 비슷한 내용으로 따라간 셈이다. 대안교과서 내용이 알려진 것은 이미 10월29일(연합뉴스 문화일보) 오전부터였음에도, 첫날(30일)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하루 늦게 문제제기한 것은 한겨레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 경향신문 11월30일자 1면  
 
▷5·18 유족회 "어제 우리 있었으면 교수들 더 혼났을 것"= 5·18 광주민중항쟁을 '소외된 지역 사람들이 김대중씨의 체포해 분노한 사건'으로 기술한 교과서포럼에 대해 5·18유족회 정수만 회장은 "아무리 민주주의 시대에 말할 자유가 있다고 해도 역사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하느냐"며 "어제 우리가 교과서포럼 토론회 현장에 있었으면 교수들 더 혼이 났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회장은 "심심하면 근현대사 문제를 왜곡하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적어도 5·18 문제에 비춰볼 때 정부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제대로 하지 않고 덮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정 회장은 또, 언론보도와 관련해 "사실보도도 중요하지만 교과서의 문제점에 대해 제대로 짚지 않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국론만 더 분열될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 한겨레 11월30일자 8면  
 
한편 교과서포럼 조주현 간사는 '대안교과서 내용이 5·16을 정당화하고 4·19, 5·18을 평가절하해 학생들에게 가르칠 교재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1일 밝혔다.

4·19 단체들의 토론회 폭행사태에 대해 조 간사는 "우선 경찰에 신고하는 등 조치를 취했고, 부상을 당한 교수들은 개인적으로 알아서 대응하기로 했다"며 "폭력사태가 빚어진 것은 좀 섭섭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조 간사는 "교과서포럼은 매달 한 두 차례 운영위원회를 갖는 한편 분기별로 심포지움을 개최하고 있으며, 운영비는 참여하는 교수들이 사재를 털거나 시민들의 후원으로 꾸려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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