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23일 '회사기회 유용을 통한 지배주주 일가의 부(富) 증식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발표는 했는데 신문지면과 방송화면, 인터넷 등에서 이 내용을 찾기가 쉽지 않다. 보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4일자 신문에서 한국일보와 한겨레가 각각 사회면과 경제면에서 다룬 게 거의 전부다.

"일부 재벌, 회사기회 유용 통한 사익추구 행위 심각"

   
  ▲ 한국일보 11월24일자 8면  
 
한국일보와 한겨레 언급된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국내 주요 기업집단(재벌) 지배주주 44명의 '회사기회 유용을 통한 재산 증가액'을 주식평가액과 배당수익, 주식매각액 등으로 분석 해보니 이들이 순자산가치 기준으로 약 17배의 재산을 증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지배주주 일가의 부 증식 규모는 순자산가치로 총 2조5102억19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상대가치 기준으로 계산하면 총 3조212억5100만원이다. 이들이 처음에 투자한 금액이 1471억500만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증식인 셈이다.

'이런 식으로' 재산을 가장 많이 불린 사람은 누구일까.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으로 56억5600만원을 투입해서 6387억8600만원(순자산가치 기준)을 벌어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2위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4179억6500만원), 다음이 이준용 대림그룹 회장(3521억2500만원),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2505억2200만원) 순이었다. 기업집단별로는 현대차그룹 지배주주(정의선, 정몽구)의 증식 규모가 1조567억5100만원(전체의 42.10%)으로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개혁연대가 이 조사를 한 목적은 분명하다. '일부 재벌의 회사기회 유용을 통한 사익추구 행위는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지난달 법무부는 '회사기회의 유용금지 규정'을 포함한 상법 개정안을 발표했는데 당시 재계는 기업활동 위축을 이유로 크게 반발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번 조사를 통해 "이번 상법 개정에서 회사 기회의 유용 금지 조항이 반드시 명문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의 모든 언론 '무관심'…재벌에 취약한 모습 드러내

재계의 반발 속에 이 문제가 제대로 여론의 조명을 받으려면 언론의 관심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신문 지면을 물론이고 미디어 전체를 통틀어 이 사안을 비중 있게 다룬 곳이 거의 없다. 재벌에 '약해진' 언론의 상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한국일보에 언급된 '회사기회 유용'(Usurpation of Corporate Opportunity)의 개념을 인용한다. '회사기회 유용'은 "이사 경영진 및 이사회를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지배주주가 회사 이익이 될 수 있는 사업기회를 자신 또는 제3자의 이익으로 편취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상법상 '이사 충실의무' 조항을 구체화한 것으로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회사 이익이라는 개념이 모호해 자칫 소송 남발과 경영 활동 위축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미국은 판례로 이를 인정하고 있으며 호주 일본 싱가포르 등은 성문법에 관련 규정을 두고 있다.

   
  ▲ 한국경제 11월24일 38면 '취재여록'  
 
한경 "건교부 고위공무원들 방송출연 힘들 듯"

앞으로 미디어(특히 방송)에서 건설교통부 고위공무원들의 모습이나 음성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것 같다.

한국경제 김문권 기자(사회부)는 24일 38면 <취재여록-건교부 "방송출연 하지마">에서 "고위공무원들이 설익은 상태인 부동산 정책을 방송에 나가 말하는 바람에 국민들에게 혼란과 불안감을 주고 정책 수립에도 혼선을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 부동산 정책관련 부처 공무원들의 방송출연을 전면 금지했다"고 밝혔다.

김 기자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건교부는 부동산 대책을 총괄하고 있는 재정경제부에도 방송 출연 때 협의가 필요한 사안은 반드시 건교부와 사전 조율해줄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타부서가 민감한 부동산 정책들을 여과 없이 방송에서 말하는 바람에 정책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주된 비난여론'이 건교부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매경이 바라는(?) 것은 부동산 시장 과열?

한국은행이 16년 만에 예금 지급준비율을 인상했다. 현행 5.0%에서 7.0%로 2.0% 포인트 올렸다. 지급준비율 제도는 은행이 언제든지 고객의 예금 지급요구에 응할 수 있도록 예금총책의 일정비율을 정해 의무적으로 보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지급준비율을 올린 것은 지난 1990년 2월9일 이후 처음이다.

   
  ▲ 매일경제 11월24일자 B3면  
 
한국은행의 이번 조치는 은행의 대출여력을 축소시켜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는 자금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이런 식으로라도 막겠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언급한 이유는 매경의 '연말 주테크' 섹션 때문이다. 매경은 이 섹션에서 부동산 전문가들의 집값 전망을 언급했는데 제목이 <"무주택자, 기다렸다가 신도시 분양 받아라">다. 이 섹션 3면에는 <꿈의 도시 U-city 머지 않았다>는 제목 하에 판교·흥덕·동탄 등 신도시에서 사업추진이 활발하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또 같은 면 하단에는 <행정기관·벤처기업·연구센터 대거 입주 예정 광교 'U-city 메카'로 뜬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다.

한 마디로 이 곳이 유망한 곳이니 투자하라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지급준비율 인상에 대해 '부동산 잡으려다가 경기를 긴축시킬 수 있다'는 쪽에 해석의 방점을 찍은 주요 경제지들의 보도태도에 비춰보면 일면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지만, 대체 이들의 속내가 어디에 있는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이들이 강조하고 있는 '경기 긴축에 대한 우려'가 혹 '부동산 시장 과열'로 대체될 위험은 없는지 요모조모 따져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서울경제는 오늘자(24일)에 '행복은 나누면 커집니다'는 일종의 '사회공헌' 섹션(12개면)을 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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