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에 <나는 왜 조선일보를 비판하는가>라는 글을 올려,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비상식' '비정상'으로 몰아가는 '이념재판관' 조선일보의 전횡을 고발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20일엔 <조선일보가 우리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한다구요?>라는 글을 통해, 사실과 다른 엉터리 거짓기사로 독자를 기만·우롱하는 조선일보의 '대국민 사기극'을 폭로했습니다.
 
오늘은 조금 방향을 달리해 조선일보의 숭미 의존적 태도에 관해 얘기해 볼까 합니다. 미국으로 진선미를 삼는 조선일보의 사대적 성향이 얼마나 내면화·체질화되어 있는지, 그리고 조선일보가 그것을 어떤 식으로 독자들에게 교육 내지는 주입시키고 있는지에 대해서.
 
사설 하나만 갖고 말하면 "어쩌다 한 마디 한 것 가지고 시비한다"고 할까봐 오늘은 특별히 22일자 사설 <역사 법정에 오른 '386 정치인'의 대죄>와 23일자 사설 <"미, 북핵 파트너를 한국에서 중국으로 바꾸다"> 이렇게 두 편을 도마 위에 놓고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조선일보 11월22일자 사설  
 
먼저 22일자 사설입니다. '역사법정'과 '대죄'라는 살벌한 법정용어가 등장하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386 정치인'들이 '대죄'를 짓고 '역사의 법정'에 서다니?
 
말대로라면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게 분명한 듯한데, 주변을 아무리 둘러 봐도 그런 '사건'을 넘겨 짚을 수 있는 단서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도대체 '386 정치인'들이 누구에게 무슨 단죄를 받았기에 조선일보가 '역사의 법정' '대죄' 운운하는 무시무시한 말까지 입에 담는 것일까요?
 
놀라지 마십시오. 사설에서 말하고 있는 건 오직 한 가지,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노무현 정부의 주도 세력인 386세대들이 저조한 경제 성장, 소득 격차 확대, 동맹관계 악화 등을 불러들여 나라를 곤경에 빠뜨렸다'고 보도했다"는 첫머리 말이 전부입니다.
 
사설 나머지는 위에서 거론된 세 가지, 곧 '저조한 경제성장', '소득 격차 확대', '동맹관계 악화' 등을 각각 항목별로 나열하여 거기에 조선일보식 주해 혹은 추임새를 조금 곁들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컨대 조선일보에겐 미국 잡지인 뉴스위크에 실린 한 마디 말이 '역사의 법정'이고, 거기서 '386 정치인'들에 대해 "저조한 경제 성장, 소득 격차 확대, 동맹관계 악화 등을 불러들여 나라를 곤경에 빠뜨렸다"는 평가를 내렸다는 것이 씻을 수 없는 '대죄'가 되는 셈인거지요.
 
그런데 조선일보가 아무리 역사의식이 없어도 그렇지 명색이 한국신문이면서 미국 잡지의 말 하나를 가지고 '역사의 법정' 운운한다는 게 정말 골 때리지 않습니까? 이런 말은 조선일보가 스스로를 아메리카의 일원이라고 자임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 조선일보 11월23일자 사설  
 
다음은 23일자 사설입니다. <"미, 북핵 파트너를 한국에서 중국으로 바꾸다">. 따옴표를 붙인 제목 자체가 아예 미국의 소리입니다.   
 
조선일보는 사설 첫머리에서부터 미국이 중국과 새로 눈이 맞아 한국을 버렸다고 노발대발합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넷판과 뉴욕타임스의 말을 거두절미 인용하면서 말이지요.
 
물론 짐작하시겠지만 조선일보의 분노는 한국을 버렸다는 미국이 아니라 미국에 버림받았다는 한국에 가해집니다. 체인징 파트너가 기본인 춤판에서 미국의 바람기를 허물할 수도 있으련만 그러나 조선일보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대신 얼마나 못났으면 저런 대접을 받느냐고 한국 정부를 끊임없이 구박합니다. 
 
"미국과 우리 사이는 그런 게 아니다"고 항변하는 한국 정부의 목소리도 조선일보에겐 멀리서 짖어대는 개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글로벌한 조선일보 귀엔 영어만 들리는 탓입니다.
 
"한국과 미국 사이가 틀어졌다네" 하고 귓속말하는 몇몇 미국 언론을 절대시하며 그를 바탕으로 한국을 삿대질하고, 이어 "나라 꼴이 100년 전 그때 그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며 우리 신세를 자학적으로 한탄,조소하는 사설 나머지 내용은 패스하도록 하겠습니다. 붙들고 있어봐야 울분만 도지니까.
 
자! 이상으로 조선일보 사설 두 편을 간단하게 개괄했습니다. 조선일보의 문제점이 뭔지 대강 눈치 채셨겠지요?
 
보셔서 잘 아시겠지만, 조선일보 사설은 첫머리 말이 가장 중요합니다. 특히나 거기에 미국발 기사 한 줄이 실렸다 하면, 그 다음 내용은 읽고 자시고 할 것이 없습니다. 그게 다니까요.
 
문제는 조선일보가 이런 방식을 통해서 미국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숭미 의존적 체질을 은연 중에 독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 잡지 뉴스위크에서 386 정치인들을 비판했다. 그들은 역사의 법정에서 단죄됐다"는 22일자 사설이나 "타임 인터넷판과 뉴욕타임스에서 한국과 미국의 사이가 벌어졌다고 했다. 이제 한국은 큰일 났다"는 23일자 사설의 무서움이 바로 그것 아니겠습니까?
 
이렇듯 철저하게 '친미코드'로 무장하고 오늘도 쉼없이 미국의 목소리를 이 땅에 주입시키기 위하여 숙야분려하고 있는 조선일보 사설을 보고 있자니, 일제 강점기에 조선일보가 어떤 식으로 펜대를 굴렸을지 절로 감이 오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상정일련'이라, 솥단지 안에 가득한 국을 다 먹지 않고 한술만 떠먹어 봐도 맛을 아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폐일언하고, 어제는 친일 오늘은 친미.... 이처럼 시대를 달리하여 파트너를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춘정을 일삼는 비루한 신문지를 어느 때 쯤에야 '역사의 법정'에 세워 '대죄'를 추궁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할수록 서글픔만 더해가는 나날입니다.

문한별 / 언론인권센터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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