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길 기자 photoeye@  
 
“골이 깊을수록 산이 높다.” 구관서(사진) EBS 사장이 지난 20일 뒤늦게 선 취임식 자리에서 밝힌 소회의 한 구절이다. 구 사장은 이날 “속이 타는 아픔과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을 느낀 기간이었지만 지난 인생을 성찰해보고, EBS에 대한 의지와 신념을 더욱 굳게 만든 기회이기도 했다”며 “우리가 겪은 갈등과 번민은 화합과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 사장은 방송위원회로부터 지난 9월19일 임명장을 받았지만 각종 의혹에 휘말리며 EBS 내부 구성원들의 반대로 정상 출근을 하지 못했다. 노조의 출근저지 투쟁, 팀장 전원의 보직 사퇴 및 업무 불복종, 직원 623명의 사장 퇴진 서명까지 갈등은 멈추지 않았다.

이 때마다 구 사장은 “EBS 미래만을 생각하며 함께 나아가자”고 말하며 결코 물러날 의사가 없음을 거듭 밝혔다. 또 사장 임명의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며 출근을 저지한 조합원을 상대로 업무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을 냈고, 팀장들에게는 징계 방침을 시사했다. EBS의 갈등 사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로 향하는 듯 했다.

그러나 EBS 노사가 ‘사장 중간평가’ 등 6개항의 노사합의서를 전격 체결하고, EBS 조합원들도 상당한 격론 끝에 이를 수용하기로 결정하면서 두 달여 동안 끌어온 EBS 사태는 일단락이 됐다.

전국언론노조 EBS지부는 차기 집행부 선거 일정에 돌입했고 새로 들어설 집행부와 구 사장은 노사합의서의 구체적인 내용을 진행할 예정이다. 구 사장은 경영에 나선 지 1년 이내에 직원들로부터 신임을 묻는 중간평가를 받아야 하고, 특히 ‘EBS의 정치적 독립과 민영화에 대해 노사가 단호히 대처한다’는 합의 내용은 향후 ‘공영방송 EBS’의 미래와 직결된 사항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갈등 상황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중간평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구 사장을 진정한 EBS 사장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부 불신의 골은 여전히 깊다. 구 사장이 그동안 제기된 각종 의혹을 어떻게 정리하고, EBS 발전을 위해 어떤 비전과 계획을 내놓을 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골이 깊을수록 구 사장이 넘어야 할 산도 높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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