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인적자원부 출입기자들이 대학서열화 조장과 수험생들의 혼란을 막자는 취지에서 제정, 준수해왔던 '대입 보도강령'이 폐지되자 수능 점수별 대학 배치표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교육부 출입기자들은 각 학원의 대입설명회장과 인터넷에 이 같은 내용이 공개돼 굳이 기자들이 보도강령을 준수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지난해부터 보도강령을 폐지하기로 한 바 있다. 

   
  ▲ 200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6일 서울 필운동 배화여고에서 한 수험생이 후배들의 응원을 받으며 시험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창길 기자 photoeye@  
 
조선·연합 등 "서울대 합격선 392점" 수능점수별 대학배치표 보도 잇따라

종로·대성·중앙학원 등 7개 주요 입시전문기관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교육부·교육청 기자들을 대상으로 표준점수가 나오기 전에 배치표 및 올해 수능 점수 등락폭 등 구체적인 자료를 일체 제공하지 않기로 합의했음에도 이 같은 보도가 이어진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또한 기자들과 입시기관 등 일선 교육현장에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 조선일보 11월20일자 20면  
 
조선일보는 20일자 10면 <서울법대 392점 넘어야>에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11개 국내 주요 대학에 대해 입시학원이 밝힌 배치표를 보도했다. 조선은 대성학원·종로학원·유웨이중앙교육이 19일 밝힌 배치표를 근거로 서울대 법대 392∼394점, 의예과 389∼390점 등 각 학교별 합격 가능 예측 점수를 구체적으로 기재했다.

조선의 보도가 나온 데 이어 연합뉴스도 이날 오전 6시쯤 송고한 <"서울대 법대 합격선 원점수 392∼395점">에서 "서울대 법대에 합격하려면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점수 400점 만점 기준으로 392∼395점을 맞아야 할 것으로 예상됐다"며 종로·대성·중앙학원의 배치기준표를 분석해 보도했다.

MBN과 노컷뉴스도 각각 7시25분과 9시50분쯤 송고한 기사를 통해 같은 내용을 전했다.

7개 입시학원 "올해도 언론에 자료제공 않기로…기자가 설명회 때 배치표 가져간듯"

이 같은 보도에 대해 자료 제공을 않기로 했던 입시기관 관계자들은 입시 설명회 때 기자들이 와서 받아간 것을 보도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종로학원 김용근 이사 겸 평가연구실장은 "우리가 보도자료를 준 게 아니라 기자들이 엊그제 있었던 입시설명회 때 배치표를 가져가 기사를 쓴 듯하다"며 "올해도 우리 7개 학원은 지원가능 점수 등을 언론에 제공하지 않기로 했고, 일부 언론의 자료 부탁이 있었음에도 정중히 거절했다"고 밝혔다.

7개 학원의 평가실장·학원장들은 지난달 말과 이달 초 두 차례에 걸쳐 교육부와 교육청 기자들에게 △각 영역별 ±몇점 식의 자료 △가채점 자료 △각 대학 모집단위별 지원가능점수 및 점수대별 추정 분포표 자료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전했다고 김 이사는 말했다.

김 이사는 "수능 표준점수가 발표되기 전까지 입시학원에서 언론에 이 같은 자료를 제공하면 혹시라도 오류나 혼란이 발생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앙학원 고위관계자도 "각 입시설명회 때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제공했던 배치표를 기자들이 입수해 취합한 듯하다"며 "예상합격선이 보도된 것은 의외였고, 다소 유감스럽다. 그렇게까지 보도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 200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6일 오전 서울 필운동 배화여고 입구에 수험생을 응원하는 학생들과 취재진이 몰려 있다. ⓒ이창길 기자 photoeye@  
 
"수능 비율 50% 불과하고 대학마다 방식 달라…배치표 무의미할 수도"  

그는 "하지만 이런 보도는 수능 비율이 50%에 불과한데다 신입생 선발방식이 대학마다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의미한 내용이고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7개 입시기관에서는 이런 이유와 함께 대학서열화와 사교육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 언론에 제공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대성학원 관계자도 "배치표 기사는 정보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며 "이런 식으로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으면 했다"고 지적했다.

대학서열화를 부추길 수 있는 이 같은 언론보도를 막는 것은 입시기관의 정보제공 거부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7년간 유지됐던 교육부 대입보도강령이 지난해 폐지돼 기자들 스스로 자제할 수 있는 장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기자들 "안쓰는 게 좋지만…여기저기 다 나오는데 난감"

기자들에 따르면, 수능 직후 보도된 가채점 결과와 20일 보도된 점수대별 합격 가능 대학 배치표 보도에 대해 기자들 내부에서 특별히 문제삼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또한 입시기관이 점수대별 대학 배치표를 기자들에게 제공하지 않는다고 해도 설명회 현장이나 인터넷을 통해 충분히 구할 수 있고, 7개 기관 외에 수많은 기관들이 계속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자료 제공 여부에 큰 의미가 없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 출입기자단 간사는 "기자들이 의견을 모아 (그러한 기사를) 안 쓰는 게 가장 좋다. 입시는 표준점수를 갖고 판단하게 돼있는데도 지금은 원점수만을 근거로 보도하기 때문에 정확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면서도 "인터넷과 각 설명회장에 배치표 등이 떠돌아 다니는데다 수험생이 궁금해하는 만큼 보도하지 않을 수도 없다. 솔직히 애매하고 난감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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