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나는 왜 조선일보를 비판하는가?: 안티조선을 위한 변명>이란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견해, 다른 접근 방식을 결코 사악하게 보지 않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4년 전 창간기념사설로 공언하고도, 대북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조선일보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를 여전히 비상식·비정상으로 몰아가는 조선일보의 '한입 두말' 버릇과 앵똘레랑스적 태도를 지적하며, 이처럼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신문에 분노하며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는 요지의 글이었지요.
 
댓글이 꽤 많이 달렸더군요. 공감을 표시하며 격려하는 글도 많았지만, 비난하는 글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 몇가지만 간추려 소개할까 합니다.
 
"결국 신문은 독자가 선택하는 겁니다. 그 신문이 엉터리라면 왜 독자가 봅니까...."(미디어오늘), "니만 잘났느냐? 조선일보를 사랑하고 노무현을 미워하는 이유를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미디어다음), "그래도 조선이 우리의 현실을 제일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하오. 일년간 다른 신문 보다가 다시 조선을 보는데 우리의 현실을 너무 잘 알려 줍디다...."(미디어다음) 등등.
 
상기한 말들은 '조선일보를 위한 변명'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조선일보 독자들이 즐겨 부르는 애창곡 레파토리라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조선일보가 우리 현실을 가장 잘 대변한다느니, 노무현 정권이 미워서 조선일보를 본다느니, 구독률 1위를 자랑하는 신문이라면 거기에 합당한 이유가 있지 않겠냐느니 하는 따위의 말들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요? 

긴 말 보탤 것 없이 17일자 조선일보 사설 <"남(南)의 반(反)사회주의자와 언론에 테러를 계획했다">를 통해 구체적으로 따져 보기로 합시다.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조선일보가 사설을 통해 제기한 문제는 날이 갈수록 풍성한 내용을 더해가는 핫이슈라 지금 되새겨도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어서 더 좋은 소재라고 할 수 있지요.
 

   
  ▲ 조선일보 11월17일 사설  
 
사설은 제목만큼이나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사설은 "북한에서 충성맹세를 하고 돌아와 인터넷에 북한을 찬양하는 글을 올린 40대의 민노당 당원"이 검찰 수사과정에서 토로했다는 "전두환 황장엽 이건희 같은 반사회주의자와 조선일보 사장 등 언론인을 테러하고 조선일보를 폭파하려고 했다"는 자백에서부터 "이번 암살 시도의 의도는 두말할 것도 없이 사회 전체에 극도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추론을 끌어냅니다.
 
이어 "테러 대상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대기업의 총수를 포함한 것은 이 정권의 주역들이 독버섯처럼 왕성하게 번식시켜 이 사회의 질병이 돼버린 '가진 자'에 대한 적개심을 테러로 함께 폭발시켜 보겠다는 뜻.... 이번에 검거된 테러 미수범은 민노당 당원이다. 민노당은 전·현직 간부 2명도 386간첩단 '일심회' 사건에 연루돼 구속돼 있다"는 등의 말을 흘리며, 앞서 언급한 민노당 당원의 '테러 기도'가 현 정권 하에서 추진된 것처럼 논지를 이끌어 갑니다.
 
   
  ▲ 조선일보 11월17일자 1면  
 
자! 조선일보를 신뢰하는 독자가 있다고 합시다. 그는 이 사설을 읽고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될까요? 필경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1)북한에서 민노당 당원을 포섭해 남한 사회를 테러하도록 사주했다. (2)북한이 민노당 당원을 통해 테러를 계획한 것은 노무현 친북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잠재워 적화통일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3)민노당 당원은 북한의 사주대로 요인들을 테러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다. (4)"남쪽이 벌겋게 물들어 가는구나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4)은 사설 밑에 달린 '백자평' 가운데 하나를 빌려 온 것입니다. 조선일보를 무비판적으로 곧이곧대로 받아 들이는 독자들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불길한 느낌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각설하고, 그러면 '북한의 사주를 받은 민노당 당원이 노무현 친북정권에 편승해 현 정권에 적대적인 사람들을 테러하려고 치밀하게 준비까지 했다'는 조선일보 사설의 내용은 사실과 얼마나 부합할까요?
 
결론부터 말해서, 이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엉터리입니다.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있는 상상 없는 상상 다 동원해서 뻥튀겨낸 소설이라 이거지요.
 
우선, 민노당 당원이 테러계획을 세웠다는 시점부터 살펴 볼까요? 이 사건을 보도한 17일자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1990년대 중반 국내 유력인사와 보수인사에 대한 테러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1998년 테러가 쉽지 않다고 판단, 테러 계획을 스스로 포기했다고 진술했다"고 돼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조선일보의 파트너 한나라당은 같은 사건에 대한 논평에서 "민노당원 박모씨가 90년대 초 국내 보수인사와 유력인사에 대한 테러계획을 세운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했습니다.(<민노당, 보수인사 테러계획 진실을 밝히라>, 2006.11.16, 박영규 수석부대변인)
 
한나라당 논평대로라면 테러계획을 세운 시점은 1994년을 넘지 못하고(90년대 초), 조선일보 보도를 따르더라도 2000년을 넘지 못합니다(90년대 중반). 아무리 늘리고 뻥튀기한대도 노무현 정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더군다나 1998년에 이미 계획을 포기했다지 않습니까?
 
사정이 이러한데도, 조선일보 사설은 민노당 당원이 테러계획을 세웠다는 '시점'이나 그를 '포기했다'는 말을 빼버리고, 이 일이 마치 현 정권 하에서 일어난 냥 "이 정권의 주역들이 독버섯처럼 왕성하게 번식시켜 이 사회의 질병이 돼버린 '가진 자'에 대한 적개심" 운운하며 사실을 호도, 왜곡, 날조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 정상적인 언론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조선일보가 '북한에 포섭된 무지막지한 테러리스트'로 묘사한 민노당 당원은 실제로는 북한에 밀입북했으나 그곳에서도 냉대받고 쫓겨나 남북 모두에게 극심한 배신감을 가지고 있는 서글픈 인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가 구상했다는 테러 또한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며 일기장에 끄적거린 게 전부이고 구체적으로 계획하거나 준비한 일조차 없었다는 게 국정원 구속영장을 입수, 보도한 오늘자 한겨레신문을 통해 밝혀졌지요.
 
나아가, 그가 구상했다는 엄청난 테러는 어떻습니까? 그것도 그가 2003년 북한에 밀입북하기 훨씬 전에, "(북에 남기 위해) 통일사업 협조 의사 등을 밝혔다가 거부되면 반사회주의자들에 대한 테러로 통일사업에 일조하겠다며 밝히려 한 구상안"에 불과했으며, 요인 테러를 위해 그가 준비했다는 것도 한겨레신문에 실린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자택 사진이 전부였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조선일보 사설은 시간의 선후조차 무시하고 그의 테러계획이 마치 북한의 사주에 의한 것인 냥 "북한에서 충성맹세를 하고 돌아와.... 북한 또는 친북파들이 8·15 해방 전후와 같은 요인 암살을 통해 사회 혼란을 일으키려 할 것이라는 여러 예측 속에서도...." 운운하며 안보불안을 가중, 선동하기를 마지 않고 있으니, 이를 어찌 올바른 언론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픈 말이 많지만 이쯤해서 접고, 앞서 소개한 '조선일보를 위한 변명'으로 되돌아가 말을 계속해 봅시다. 조선일보 독자들은 말합니다. 조선일보만큼 우리 현실을 잘 대변하는 신문은 없다고. 좋습니다. 보는 눈이 제각각이니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사실과 진실에 기초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현실'이 허구와 환상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굳이 신문을 읽을 필요가 무에 있겠습니까? 
 
조선일보 독자들은 또 말합니다. 노무현이 미워서 조선일보를 본다고. 그렇습니까? 미안하지만, 요즘엔 유치원생들도 이렇게 놀지 않습니다. 도대체 이런 논법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정치인의 몫 따로, 언론 몫 따로"라는 건 조선일보도 숱하게 울궈먹는 말입니다. 그런데 특정한 정치인이 미우니까,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언론은 거짓말하고 왜곡해도 괜찮다? 애도를 표하고픈 마음입니다.
 
"신문은 독자가 선택하는 것이다. 그 신문이 엉터리라면 왜 독자가 보겠느냐?"는 조선일보 독자들이 가장 애용하는 레토릭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을 따로 준비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방금 읽은 조선일보 사설이 그 증거니까요. 조선일보가 구독률 1위의 신문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독자들이 엉터리 신문을 보고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할까요? 신문이 엉터리라면 왜 읽겠느냐고요? 물론 엉터리인 줄 모르니까 읽겠지요. 설마 조선일보 독자가 바보가 아닌 바에야 엉터리인 줄 알면서 읽기야 하겠습니까? 비싼 돈 내가면서 말예요. 그런데 조선일보가 사실과 어긋난 거짓을 말하고 있는데도 그게 잘못된 줄 모르고 있다면, 그 또한 모양새가 좋다고 말하긴 어려울 터. 왜 그런지는 각자 알아서 판단하시길....

문한별 / 언론인권센터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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