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의 장기간에 걸친 담합 소식을 전하는 20일자 조간신문들의 보도태도가 제각각이다. 대상업체의 표현도 그렇고 기사 크기도 그렇다.

공정위는 19일 국내 석유화학업체 10여곳이 장기간에 걸쳐 고밀도·저밀도 폴리에틸렌, 합성수지 등의 주력제품 가격과 물량 등을 담합해온 것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과징금도 그동안 담합행위 과징금 최고액인 1100억 원을 훌쩍 넘긴 2000억 원 수준이다.

'장기담합'과 '과징금 최고액'이라는 두 가지 점만 보면 제법 무게가 있는 기사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이들 업체들은 1970년대부터 담합행위를 했고, 이로 인해 국내 소비자들은 지난 20여년간 비닐봉지, 플라스틱 용기와 같은 합성수지 제품들을 비싼 가격에 사용한 셈이다.

하지만 신문 지면에 등장한 석유화학업체들은 이름표기가 들쭉날쭉했다. 20일자 조간신문에 소개된 장기담합 업체들의 이름찾기도 '숨은 그림 찾기'다. 전부 표현한 곳도 없거니와 아예 없는 곳도 있다. 신문보도를 보면 대상업체가 정확하게 언급되지 않았지만, 공정위는 대부분의 석유화학업체들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앙일보(SK㈜, LG화학), 매일경제(SK, LG화학, 호남석유화학), 조선일보(SK㈜, LG화학, 호남석유화학), 파이낸셜뉴스(SK㈜, LG화학, 한화석유화학), 경향신문(SK, LG석유화학, 한화석유화학), 국민일보(LG화학, 한화석유화학), 한국일보(SK㈜, LG화학, 호남석유화학) 등 대부분이 같은 회사를 언급했다.

   
  ▲ 한국경제 11월20일자 2면  
 
10여개 업체라고는 하지만 기사에 언급된 곳은 2~3개 정도다. 이데일리는 다른 신문과 달리 '삼성토탈'을 기사에 언급했고, 연합뉴스·동아일보·한겨레는 대상업체를 적지 않았다. 국민일보는 유화업체 '빅3'만 해당되는 것처럼 제목을 뽑았다.

기사의 크기도 제각각이다. 1단(조선일보, 중앙일보), 2단(한겨레, 파이낸셜뉴스, 아시아경제, 한국경제, 국민일보, 세계일보), 3단(동아일보, 서울신문, 한국일보, 머니투데이, 한국경제), 4단(경향신문, 매일경제) 등이다. 한국경제는 2면 <유화업계에 최대 2000억 과징금>이란 발표기사와 함께 6면 <사전규제 제동에 사후규제 강화>란 해설기사까지 같이 다뤘다. 한경은 공정위의 사후규제 강화라는 기사를 통해 공정위에 대한 비판적인 톤을 유지했다.

한경은 6면 기사에서 "개별 시장의 공정거래질서 확립을 위한 사전 규제인 출자총액제한 제도 대안 논란을 일단락지은 '권오승호' 공정거래위원회가 사후 규제 쪽으로 선회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며 "카르텔 등 기업들의 불공정 행위에 사상 최고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사후 규제의 강도를 한층 강화하는 분위기다"고 보도했다. 또 업계에서는 규제남발의 우려가 있다는 내용도 같이 전했다.

   
  ▲ 한국경제 11월20일자 6면  
 
이어 한경은 "공정위는 인력 및 기능을 확충하는 방안과 관련, 조만간 조직 개편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이미 방침을 정했다"며 "기업들의 불공정행위 혐의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기 위해 '시장조사실'(가칭)을 신설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계속되는 '공정위 죽이기'

'환상형 순환출자 금지'를 하겠다고 밝혀 보수신문과 경제신문들로부터 호된 몰매를 맞았던 공정위가 또 다시 이들 신문으로부터 얻어맞고 있다. 이유는 하나다. 악성적인 순환출자를 시행령으로 규제하겠다는 계획 때문이다.

현재 공정거래법은 9조에서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그룹의 상호출자를 금지하면서 15조에서는 이 규정의 적용을 면탈하려는 탈법행위도 금지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에는 해당 탈법행위의 유형 및 기준은 대통령령(시행령)으로 정한다고 돼 있지만, 현행 시행령에는 채무보증의 탈법행위만 제시돼 있다. 시행령에는 상호출자의 탈법행위 조항은 없는 셈이다. 이에 공정위는 시행령에 악성적인 순환출자를 탈법행위로 포함시키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머니투데이, 서울경제, 한국일보 등 일부 신문들은 또 다시 공정위에 비판을 가했다. 머니투데이는 1면 <'미련 못버린' 공정위>라는 기사를 통해 논란이 예상된다고 썼다. 또 머투는 "정부 내에서는 순환출자 규제를 위한 법령은 개정하지 않기로 합의된데다 추가적인 법적 검토도 필요해 시행령 개정이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고 보도했다. 서울경제는 5면 <'미련 못버린' 순환출자 금지>라는 기사에서 "공정위의 규제안이 환상형 순환출자 금지 규제의 확대로 해석될 요인도 있어 관련 당사자들의 반발도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 머니투데이 11월20일자 1면  
 
한국일보도 17면 <"순환출자 금지, 시행령 개정으로도 가능">이라는 기사에서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이 재벌 그룹의 순환출자 금지를 공정거래법이 아닌 시행령 개정을 통해서도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혀 새로운 논란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와 달리 경향신문은 14면 <"악성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 강화">라는 기사를 통해 공정위의 시행령 개정 움직임을 그동안 다른 부처와 언론 등의 관계까지 소개하면서 자세히 다뤘다. 특히 경향신문은 이 기사에서 권 위원장의 언론에 대한 불만감 표시도 같이 다뤘다. 

   
  ▲ 경향신문 11월20일자 14면  
 
경향은 "그(권오승 위원장)는 기자들과의 산행 도중 언론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삼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출총제 개편안과 관련한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우회적으로 불만을 털어놨다"며 "독일에서 경제법을 전공한 권 위원장은 '독일에서는 신문만  열심히 읽어도 사회적 인식이 저절로 올라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 정도까지는 되지 않는 것 같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