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총학생회의 개최거부 탓인가, 경찰의 원천봉쇄 탓인가.

지난달 28일 서울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조국통일 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남측대표 강위원 한총련의장) 집회가 무산된 배경을 놓고 이같은 논란을 빚고 있다. 조선일보와 한국일보가 이날 집회 무산을 서울대총학생회의 개최거부 탓으로 돌린데 대해 서울대총학생회가 ‘경찰의 원천봉쇄’가 최종적으로 집회가 무산된 결정적 원인이 됐다며 언론보도를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9일자 사회면 3단 ‘서울대총학, 한총련집회 막았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한총련지도부는 집회예정시간인 오후2시를 넘기면서까지 서울대총학생회측과 행사개최여부를 놓고 협상을 벌였으나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오후3시쯤 ‘행사장소를 한양대로 옮긴다’며 학교를 빠져나갔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도 이날 사회면 두번째머릿기사 ‘서울대 한총련집회 제동, 학교측-총학생회 반대 유례없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서울대 총학생회와 대학당국이 한총련이 강행하려던 교내 집회를 막았다”고 보도, 서울대총학생회와 대학당국의 저지로 이날 집회가 무산됐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보도에 대해 서울대총학생회측은 “당초 범청학련 주최의 행사를 서울대에서 개최하는 것에 대해 ‘범청학련의 통일운동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해왔던 것은 사실이나 이날 집회가 무산된 것은 기본적으로 경찰의 원천봉쇄에 있다”며 “조선일보와 한국일보 보도가 학생운동의 분열상을 부각시키기 위한 왜곡보도”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서울대총학생회는 특히 조선일보가 ‘노천강당과 학생회관에서 제조중이던 화염병 3백여개를 발견해 학생회 간부들이 치우기도 했으며…’라고 보도한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울대총학생회에 따르면 집회를 열기로 한 28일 오전 범청학련측과 회의를 갖고 ‘범청학련의 기본적인 입장에는 반대하지만 경찰의 학내 진입시에는 공동으로 대처한다’는데 합의하고 서울대에서 행사를 치르기로 했으나, 오후 2시30분경 범청학련측이 경찰의 원천봉쇄로 행사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집회장소를 변경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와 한국일보 보도는 경찰의 원천봉쇄로 집회장소가 변경됐다는 사실은 전혀 지적하지 않은채 서울대총학생회가 처음부터 범청학련의 행사 개최를 반대해왔다는 점만을 부각시켰다. 이에대해 기사를 쓴 한 기자는 “범청학련 집회가 경찰의 저지없이 이루어진 적은 없다”며 “이날 집회무산은 학생운동 노선의 차이로 인해 서울대총학생회측이 행사를 협조하지 않은 데 커다란 원인이 있었다. 경찰의 원천봉쇄로만 볼 수 없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이번 범청학련 집회를 둘러싸고 학생운동 노선간에 갈등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이같은 갈등이 집회 성사여부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날의 여러가지 상황들을 고려할 때 경찰의 무리한 원천봉쇄가 집회무산에 적지않은 원인이 됐음에도 이를 간과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총학생회가 한총련 집회를 막았다’는 왜곡된 정보를 제공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언론보도에 대해 서울대총학생회가 지난 30일 발표한 ‘선배기자들에게’라는 제하의 글은 이런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는 그 어둡던 시절 단 1단 기사에도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거나 그것도 안되면 행간에 그런 분위기라도 남기려 했던 존경할 만한 기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단지 과거의 일로만 기억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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