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13일은 영원한 '노동자의 벗' 전태일 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36주기 되는 날이다. 해마다 이날을 전후로 노동자들의 대규모 행사가 열린다. 1970년 11월13일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서울 평화시장 앞에서 목숨을 던졌다. 전태일 열사는 한국 노동운동사를 바꿔놓은 인물이 됐다.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 대학 새내기들의 필독서가 된 때도 있었다. 전태일 열사가 죽음으로 외쳤던 노동자 차별철폐의 구호는 여전히 유효하다. 비정규직 차별은 여전하고 뚜렷한 해법 역시 마땅치 않다. 언론의 친자본적인 보도태도도 비정규직 차별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주고 있다.

반노동자 정서 확산에 앞장서고 있는 대한민국 언론. 1970년 11월13일 그날의 현장은 어떻게 보도했을까.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보도태도를 통해 그날과 지금의 '노동'에 대한 시각을 비교해보자.

동아일보 "당국의 무성의와 업주의 외면"

   
  ▲ 동아일보 1970년 11월14일자 7면.  
 
동아일보는 70년 11월14일자 7면 왼쪽 상단에 <농성(籠城)근로자 소신자살(燒身自殺)>라는 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는 기사에서 "당국의 무성의와 업주들의 외면으로 엉망인 근로조건이 개선되지 않은 채 말썽이 거듭돼오던 서울 평화상가 등에서 끝내 이에 항의하는 분신자살까지 빚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13일 낮 1시35분경 처우개선 등을 위해 투쟁해오던 서울 중구 을지로 6가 평화·통일·동화 상가 등의 피복제조 종업원 6천여명의 친목단체인 삼등회 회장 전태일씨(23·서울 성북구 쌍문동 208의 215·재단사)는 회원 천여명과 함께 업주들의 불성실한 태도에 항의, 국민은행 평화지점 앞에서 농성을 벌이다 '근로기준법을 지켜주고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온몸에 휘발유를 뿌려 분신자살을 기도, 중화상을 입고 성모병원에 입원가료 중 이날 밤 10시경 숨졌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 평화시장 노동자의 열악한 삶 '조명'

동아일보는 <"내 죽음 헛되이 말라">는 제목의 관련 기사에서 "3년 전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 상경한 전씨는 평화시장 등지의 피복점에서 재단을 배워 일해 오다 지난해 9월 피복제조종업원들의 친목단체인 삼등회를 조직, 회장을 맡고 종업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싸워오다 업주로부터 해고당해 휴직 상태에 있으면서 근로기준법을 연구해왔으며 지난 5월 다시 왕성사에 복직했으나 여론조사를 해 종업원들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또 해고를 당했는데 업주들이 계속 종업원들의 처우개선에 대해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자 심태식씨가 쓴 '축조근로기준법'이라는 책을 껴안고 분신자살한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전씨는 지난 9월초 2백4십여명의 동료종업원을 상대로 처우실태를 조사하여 이를 근거로 종업원들의 근로조건개선을 서울시와 노동청 등에 진정해왔으나 별다른 개선의 움짐임이 없자 이날 항의 농성에 나섰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아일보는 "한편 이날 오후 2시3십분경에는 동진상가 재단사 최종인씨(38) 등 6명의 피복제조종업원들도 을지로 6가 국민은행 평화지점 앞에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혈서와 함께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농성을 10분간 벌이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 해산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 "월 3천원…혹사에 질병"

또 동아일보는 <월 3천원…혹사에 질병>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들 평화시장 일대의 재단사 미싱사 등 남녀종업원 2만7천여명은 하루 평균 13시간에서 16시간의 중노동과 분진 조명도 등 유해 환경에서 오는 눈병 신경성위장질환 폐결핵 같은 직업병 및 보조수들의 월평균 3천원의 낮은 일급 등을 근로기준법에 맞게 시정해주도록 호소해왔다"고 보도했다.

   
  ▲ 동아일보 1970년 11월14일자 7면.  
 
동아일보는 "그러나 노동청은 근로시간 일급 등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조건의 철저한 시정조치에는 무성의, 다만 사업주들에게 오는 11월까지 사업장의 분진과 조명을 개선하고 건강진단을 실시하라는 미온적 지시로 환경의 시설개수조치에만 그쳤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비인도적 사업주 노총서 규탄성명>이라는 관련 기사를 통해 "한국노총(위원장 최용수)은 14일 평화시장종업원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분신자살 사건에 성명서를 발표, 청소년소녀근로자들을 나쁜 작업환경에서 저임금과 중노동으로 일을 시킨 평화시장 동화시장 통일상가 등의 비인도적인 사업주들을 규탄하고 정부와 기업주 및 일반사회의 노동에 대한 이해와 협조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전태일 열사 죽음 단신 처리

   
  ▲ 조선일보 1970년 11월14일자 8면.  
 
조선일보는 70년 11월14일 8면 하단에 <시장 종업원 분신자살>이라는 제목의 단신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13일 오후 1시30분쯤 서울 을지로 6가 17 평화시장앞길에서 시장종업원 전태일( 全泰一·23·성북구 쌍문동 208)군이 '노동청이 근로조건 개선을 적극 협조해주지 않고 있다'고 분신자살을 기도, 중화상을 입고 성모병원에 입원 중 14일 새벽 숨졌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전군은 1시부터 청계천 5가-6가 사이의 평화 동화 통일 등 3개 연쇄상가 종업원 5백여명과 같이 근로조건 개선 등 요구조건을 내걸고 농성을 하려 했으나 경찰과 시장경비원들의 제지를 받자 가지고  온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고 설명했다.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세월 흘러도 구호는 같아

동아일보 등 당시 일부 언론이 상세한 보도를 내보내자 전태일 열사의 죽음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고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씨앗이 될 수 있었다. 시간은 36년이나 흘렀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여전히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1970년 당시 동아일보를 만들었던 언론인들은 요즘 동아일보의 노동관련 논조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