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기업에 의한, 기업을 위한 지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경제지들의 '일방적' 기업 옹호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심하게 표현하면, 기업 대변지로 전락한(?) 듯한 모습마저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출자총액제한제도와 환상형 순환출자금지안을 다루는 경제지들의 보도태도는 이미 균형감각을 상실한 지 오래다.

   
  ▲ 서울경제 11월13일자 3면  
 
'출총제 폐지와 순환출자금지 도입 반대'를 주장하는 기업들의 입장을 그동안 충실히 반영해 온 경제지들은 '중핵기업 출총제 유지+환상형 순환출자 금지'라는 공정위의 수정안에 대해서도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무조건적 폐지를 요구한 기업들의 논리를 충실히 대변한 데 이어 공정위의 수정안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히고 있는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의 입장에 더 방점을 찍는 보도태도를 보였다.

정부 내 부처간 이견은 지속…최종안은 아직 정해진 바 없어

정부 내의 이 같은 '이견'과 관련해 이번 주초에 열릴 2차 관계부처장관 회의에서 합의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14일로 예정된 대통령 주재 장관회의에서 최종안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공정위가 기존 입장에서 계속 후퇴해 왔고, 공정위를 제외한 정부 부처들 '전부'가 공정위 수정안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 정부의 최종안은 아무 것도 결정된 바 없고, 정부내 부처간 이견은 지속 중인 상황이다. 허나 일부 경제지들은 아예 오늘자(13일) 지면에서 정부가 순환출자금지를 도입하지 않는 쪽으로 이미 결론을 내버렸다.

지면으로 이미 순환출자규제 도입 안하는 쪽으로 '결론'

한국경제가 대표적이다. 한경은 오늘자(13일) 1면 <순환출자 규제 도입 안할 듯>에서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가 출자총액 제한제도 대안 마련과 관련 '출총제 적용대상 기업을 축소하고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는 도입하지 말자'는 방안을 공정거래위원회에 공식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 한국경제 11월13일자 1면  
 
한경은 "이는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중핵기업 출총제 도입'이라는 공정위 안과는 크게 다른 것이어서 공정위가 재경부 및 산자부 안을 수용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경은 3면 <재경·산자부 "절대 반대" 권 공정위장 강행 어려울 듯>과 39면 사설 <출총제는 무조건 폐지가 정답이다>에서도 재경부와 산자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 한국경제 11월13일자 사설  
 
한경의 1면 기사는 재경부와 산자부가 공정위에 '공식 제안'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한경은 기사 제목을 <순환출자 규제 도입 안할 듯>으로 뽑았다. 동력이 많이 빠진 공정위에 대한 사실상 '고사작전'인 셈이다.

머니투데이와 아시아경제 등을 비롯해 동아일보 등 전국단위 종합일간지들도 재경부와 산자부 등의 입장에 무게중심을 두고 보도했지만, 이 같은 입장에 대해 공정위가 수용할지 주목된다는 식의 태도를 취했다. 한경처럼 정부안이 결론이 났다는 식으로 보도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최종안 결정을 앞둔 상태에서 그래도 '공정한' 축에 끼는 보도는 서울경제 기사다. 서울경제는 3면 <부처협의후 해석 제각각, 정부안 합의 쉽지 않을 듯>에서 "정부의 촐총제 관련 합의안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공정위는 '각론 조정'을 통해 수정된 대안을 내놓을 것이고 재경부 등은 각론이 아닌 '큰 틀' 수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다수 언론, '재경부·산자부 제안에 대한 공정위 입장 주목'으로 보도

서울경제는 "미묘한 인식 차이가 출총제 대안 전체를 보는 시각의 차이로 이어져 관계부처 조율은 또 다시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경향신문은 좀더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경향은 "공정위는 실무협의에서 신규 환상형 순환출자는 금지하되, 기존에 이뤄진 환상형 순환출자는 규제하지 않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출총제를 적용받는 대상 기업을 현행 343개에서 20∼30개로 줄이는 데는 부처간 이견이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경향은 "신규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처간 이견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재경부와 산자부는 '자산 2조원 이상의 중핵기업을 대상으로 출총제를 적용하고, 신규 환상형 순환출자까지 규제하면 기업들로부터 이중 족쇄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 뻔하다'며 신규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반면, 공정위는 신규 환상형 순환출자를 규제하지 않으면 대기업 총수 일가의 편법 재산 증식이 횡행할 가능성이 높아 반드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울신문 "재벌 문제, 사적인 차원 아닌 공적 문제"

공정위가 이처럼 재벌을 규제하려는 '이유'는 어떤 것일까. 오늘자(13일) 서울신문에 그 속내가 반영돼 있다. 서울은 공정위의 이 같은 입장을 언급하면서 논란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왜 논란이 예상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 서울신문 11월13일자 1면  
 
서울신문은 1면 <"출총제 개편 재벌총수 겨냥">에서 "서울신문이 12일 입수한 공정위의 '시장경제 선진화 태스크포스(TF)' 내부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총수는 부당지원행위, 이익 편취, 물량 몰아주기 등을 통해 사익을 추구함으로써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면서 "공정위는 '총수가 계열사의 지분을 이용해 주주총회와 이사회 등을 장악, 내부 견제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고 계열사간 출자를 통한 내부 지분율 확보로 외부 견제 시스템도 차단됐다'고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서울은 "내·외부 견제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총수의 지분이 적은 회사가 총수 지분이 많은 회사를 지원하는 방법(tunneling)으로 총수가 사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공정위는 밝혔다"면서 "공정위는 '재벌 총수의 사익 추구와 지배구조 문제는 중소기업과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시키기 때문에 사적 기업 차원이 아니라 공적인 성격에서 다뤄질 사안'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서울은 "이는 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 투자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재계 및 시장의 요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논리"라면서 "권오승 공정위원장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없앤다고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겠느냐'고 반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출총제를 없앤다고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겠느냐'는 공정위원장의 주장이 타당성을 갖는지 따져보고 면밀히 검토해보는 경제신문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냥 재계가 반발하고 있고, 기업 투자가 위축된다는 보도만 있을 뿐이다.

서경, 여당 의원 등 이중대표소송 확대 법안 제출…재계 '줄소송 우려' 반발 보도

비슷한 보도는 서울경제에도 있다. 서울경제는 오늘자(13일) 1면에서 "정부가 입법예고한 이중대표소송제보다 적용기준이 훨씬 강화된 상법 개정안이 이상민 열린우리당 (의원) 등 19명의 명의로 최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제출돼 재계가 강력 반발하는 등 큰 파문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울경제의 기사 제목이 <여 의원 등 이중대표소송 대상 2배 늘려 법안 제출, 재계 "줄소송 우려" 강력 반발>이다. 3면에도 관련 기사를 실었는데 핵심은 '기업활동을 방해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다.

경제지들의 기업 방어 논리도 이제 좀 업그레이드 해야 할 때가 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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