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이번 주부터 '김석 기자의 영화읽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김석 기자의 영화읽기'는 미디어의 하나인 영화 속에 표현된 언론과 언론인의 다양한 모습들을 미디어와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접근해 볼 것입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유명하고 대중적인 영화에서부터 그동안 조명되지 않았던 영화들까지 망라해 '영화와 미디어' 두 가지를 함께 조망하는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김석 기자는 현재 KBS <미디어포커스>에서 미디어비평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 '시민케인' 포스터  
 
장면 하나: 젊은 신문재벌 케인은 어느 날 불쑥 자기 신문 1면에 '원칙 선언문(Declaration of Principles)'을 싣겠다고 한다. 그러자 케인의 심복이 묻는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선 안 됩니다." 케인의 대답은 단호하다. "지킬 거야." 원칙 선언문의 내용은 이렇다. "본인은 시민 여러분께 정직한 기사만을 담은 신문을 공급하겠습니다. 또한 본인은…."

장면 둘: 어느 날 케인은 49만 5000부를 발행하는 뉴욕 최고의 신문 <크로니클>의 사옥 앞으로 경영진을 데려간다. "여러분을 이곳에 모셔온 이유가 있소. 우리에게 좋은 것을 가져다 줄 테니까. <크로니클>의 좋은 아이디어를 알게 되는 거지." 6년 뒤, 케인은 무려 20년에 걸쳐 꾸려진 <크로니클>의 임원진을 모조리 스카우트해버린다.

장면 셋: 유럽여행에서 막 돌아온 케인은 황급히 자기 신문의 사회면 편집자를 찾아 쪽지 하나를 건넨다. "저… 사회적으로 발표할 게 있는데… 이걸 다르게 편집하지 말아주길 바래요." 그리고는 서둘러 자리를 떠난다. 잠시 후 쪽지 내용을 본 사회면 편집자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케인과 대통령의 조카 에밀리 먼로 노튼의 약혼 선언문이었다.

장면 넷: 케인의 두 번째 아내인 재능 없는 가수 수전 알렉산더의 첫 오페라 공연에 대한 평론을 케인의 동료 릴랜드가 맡는다. "수전 알렉산더는 예쁘지만 형편없는 아마추어다…"로 시작되는 악평 일색의 기사를 손수 마무리한 케인은 릴랜드를 해고해버린다. 얼마 후, 릴랜드로부터 편지가 온다. 안에는 케인이 발표한 '원칙 선언문' 원본이 들어있었다.

언론재벌 허스트, 협박과 회유 통해 영화 개봉 막아

   
  ▲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1863~1951)  
 
이것이 찰스 포스터 케인, 아니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 1863∼1951)의 면면이다. 이런 자신의 치부를 낱낱이 까발리는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허스트가 가만히 있었을 리 있겠는가. 허스트 진영은 개봉 전에 필름을 파기하지 않으면 사생활과 비리를 폭로하겠다는 협박에다 개봉을 하지 않는 대가로 제작비 전액을 보상해주겠다는 회유까지 갖가지 압력을 가했지만, 끝내 영화 개봉을 막지 못했다. 웰즈가 주장한 '표현의 자유' 앞에서는 제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진 언론재벌 허스트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허스트는 한때 신문사 37곳, 잡지사 13곳, 통신사 2곳을 포함해 라디오 방송국과 영화사까지 광대한 언론제국을 품안에 거느렸던 언론계의 거물이었다. 어느 날 불쑥 '원칙 선언문'을 1면에 싣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릴 만큼 대중적 감각을 지닌 '타고난 신문인'이었지만, 이 시대 언론의 가장 큰 고질병인 신문의 체인화와 독점화의 '원조'이기도 했다.

예컨대, 경쟁지의 유능한 임원들을 대거 스카우트한 데 대한 세간의 비난에 허스트는 이렇게 응수했다. "다 그냥 빼앗아버리면 됐지 규칙이 어디 있어? 다들 그렇게 하잖아."

허스트는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위해 신문을 사유물로 만들었고, 편집권 독립을 무참하게 짓밟아버렸을 뿐 아니라 경쟁사의 유능한 직원들을 닥치는 대로 빼오는 일도 서슴지 않은 무자비한 인물이었다.

신문 사주의 전횡은 지금도 '현재진행형'

영화는 이 야심만만한 자본가가 서서히 몰락하는 과정을 마치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예리하게 추적한다. 그리하여 쿠빌라이 칸의 궁전 이름을 딴 대저택 '재너두(Xanadu)'에서 '로즈버드(Rosebud)'라는 한 마디만을 남긴 채 쓸쓸하게 운명한 케인(허스트)의 삶의 궤적이 그려내는 미국 자본주의 성장사는 케인이 건설한 부와 사치의 바벨탑 '재너두' 만큼이나 허망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 영화 '시민케인'  
 
불과 1년 전, 한 신문사의 기자들이 김포공항으로 우르르 몰려간 일이 있었다. 취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이 소속된 신문사 전 사주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기자가 그래도 되느냐"는 질문에 어느 기자는 "자발적으로 한 것이다. 최소한의 불상사를 막아보자는 취지에서 한 일이었다"고 대답했다.

1999년에도 이 신문 기자들은 탈세 혐의로 검찰에 출두하는 사주를 검찰청사까지 따라가 "사장님, 힘내세요!"라고 외쳤다. 영화가 그려낸 시대로부터 무려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이런 볼썽사나운 장면들이 심심찮게 연출되는 걸 보면, 모양만 다를 뿐이지 예나 지금이나 신문 사주의 전횡 또는 사주 눈치 보기라는 고질적 폐단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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