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보도하는 언론의 관심은 오로지 정치권의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에 있는 듯하다. 집권당의 내분과 연이은 탈당, DJP연합, 그리고 반DJP연합에 이르기까지 온통 어디에 ‘세력’이 형성되는가가 언론보도의 중심이 되고 있다. 특히 언론은 이같은 정치권의 무원칙한 합종연횡을 중계보도할 뿐 아니라 때로 이를 정당화하고 부추기기도 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 속에서 ‘민주주의’ 원칙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최근 언론의 최대 관심사는 ‘DJP연합’과 이에 대응할 ‘반DJP연합’이다. 지난 27일 밤 JP와 DJ의 회동으로 ‘DJP연합’이 성사단계에 이르자 대부분의 언론이 DJP연합을 비판하고 나섰다.

대부분의 중앙일간지들은 29일자 사설 ‘가정 많은 DJP계획서’(경향), ‘DJP연대의 허와 실’(국민), ‘DJP연합과 야합 비판’(문화), ‘DJP계약의 속과 겉’(조선), ‘대선전 볼모된 내각제 개헌’(한국) 등을 통해 ‘DJP연합은 내각제개헌을 추진하고, DJ가 대통령을 맡고 JP가 총리를 맡기로 하는 등 권력나눠먹기식 밀실야합’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물론 DJP연합은 국민의 의사를 묻는 과정없이 내각제 개헌 추진을 기정사실화했다는 점 등 민주주의의 원칙을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를 충분히 안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비판은 DJP연합의 추진단계에서부터 지적됐어야 한다는 문제점이 남는다. DJP연합은 처음부터 내각제를 표방하며 공개적으로 추진돼 온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회의를 출입하는 중앙일간지의 한 기자는 “DJP연합은 처음부터 내각제를 기본으로 했고 공개적으로 추진해왔다.

문제가 있다면 추진단계에서부터 언론이 지적하고 나섰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 합의가 끝난 지금에 와서야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양 ‘위법성’ 운운하며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서는 건 결과적으로 흠집내기밖에 안된다”고 지적했다.

또 일부언론은 DJP연합을 비판하면서도 엉뚱하게 반DJP연합을 소리높여 촉구하고 있다. 세계일보는 30일자 ‘이만섭씨 탈당과 반DJP’라는 제하의 사설에서 “DJP연합이 사실상 성사된 마당이고 보면 이에 맞설 반DJP연합도 당장 다급한 요구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다 …(이회창-이인제-조순) 세후보가 각각 자기중심의 반DJP연합을 계속 고집한다면 새정치에 대한 국민기대를 배신하는 결과”라며 반DJP연합을 촉구했다.

중앙일보 29일자 김영배 칼럼 ‘DJP연합-두김 야합?’도 “권력을 잡기위한 두 김의 야합”이라고 비판하면서도 “그러나 두 김 야합에 대항할 세력은 아직 떠오르지 않고 있다”며 반DJP연합을 촉구하는 태도를 보였다.

한편 조선일보는 지난 29일자 ‘DJP 계약의 속과 겉’이라는 제하의 사설에서 “개헌이라는 큰 소용돌이가 우리 정국을 심하게 뒤흔들 것이라는 전망이 일말의 불안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북한의 동향이 심상찮을 앞으로의 2년 사이에 말이다”라며 DJP연합 비판에 예의 ‘국가안보’ 논리를 펴는 등 문제의 초점을 흐리기도 했다.

이같이 DJP연합을 비판하면서 은근히 ‘반DJP연합’을 부채질하는 언론은 반DJP연합에 대해서는 ‘DJP연합’을 비판하던 ‘민주주의의 원칙’이라는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DJP연합을 선거법이 금지한 ‘후보자 매수’라고까지 비난하면서도, 여권의 합종연횡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또는 빠른 시일안에 반DJP전선을 구축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반DJP연합의 후보가 되든 이 또한 권력 나눠먹기로 흐를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후보 사퇴에 따른 지분보장 등의 ‘후보자 매수’가 나타날 것이 필지의 사실인데도 언론은 오히려 이를 부추김으로써 ‘동일 사안’에 대해 이중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언론의 보도태도는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보다 분명해진다. 지난 7월 여당사상 최초로 치른 자유경선을 언론은 ‘대의원 혁명’ 운운하며 ‘민주주의의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언론은 경선에서 탈락한 이인제후보가 출마하도록 부추겼거나 적어도 민주주의의 원칙을 깬 그의 행동을 묵인했다.

우선 이인제후보가 경선에서 탈락한 후에도 그를 여론조사에 포함시키고 높은 지지율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출마에 앞서서 수십명의 기자들이 떼거리로 도지사공관과 경기도청 도지사실에서 일주일이상 머물며 그의 발언 하나 하나를 기사화했다. “출마할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생각중”이라고 답변하면, ‘출마를 고려중’이라는 제목으로 기사화한 것이다. 이는 이인제후보가 지난 10월중순 기자들과 만난 사석에서 “언론에서 나를 출마하도록 부추겨놓고 요즘에는 왜 안 밀어주느냐”고 발언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이같이 언론은 대선보도에서 꼭 지켜야 할 민주주의의 원칙은 무시한채 정치권의 합종연횡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심지어 한 중앙언론사의 논설위원은 언론사의 이같은 보도태도가 정치권의 합종연횡을 단순히 보도하는 차원을 넘어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언론이 비정상적인 정치적 행태까지도 정상적인 것처럼 보도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지탄받지 않고 합종연횡을 시도할 수 있도록 정당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합종연횡 보도의 홍수속에서 대선후보들이 중간중간에 발표하는 정책이나 신문, 방송, 단체들이 주최하는 토론회 석상에서 내놓는 공약과 정책들은 신문지면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언론이 갈등을 드러내고 부각시킴으로써 오히려 조장하는 흥미위주의 보도와 선거판의 대세가 어디에 있는가를 좇는 동안 독자들은 어떤 후보에게 미래를 맡겨야 할지 방향성을 잃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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