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부터 이듬해까지 LA타임스의 주필이었던 미국의 마이클 킨슬리는 최근 신문의 위기를 명문 권위지 LA타임스의 예를 들어 진단했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웹사이트는 사람들을 컴퓨터 앞에 끌어들이는 게 문제였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문제는 "50세 이하 세대들이 신문을 찾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 지난 2001년 2월 국세청 조사요원들이 한 일간지가 제출한 세무조사 관련 서류들을 쌓아두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사람들은 신문을 읽을 수도 있고, 뉴스를 보다 재미있고 정치적으로 구미 당기게 꾸미는 웹사이트 쪽으로 갈 수도 있다. 웹사이트는 정보를 대부분 신문에서 얻기 때문에 예를 들어 돈을 퍼부어 바그다드에 지사를 두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LA타임스는 세계 각국에 지사를 두고, 워싱턴에 대규모의 인원을 배치했다. 그러고도 로스앤젤레스에서만 독점적 지위를 누릴 뿐 다른 지역에서 경쟁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6년 전 LA타임스를 인수한 시카고 트리뷴 본사는 끈질기게 지출 삭감과 감원을 요구해 왔다. 이에 대해 LA타임스 측은 지난 9월 더 이상의 감축을 거부했다.

킨슬리는 신문구독료는 종이 값일 뿐 뉴스는 독자에게 공짜로 제공되는 것임을 강조한다. 신문사는 광고 수입이 있는 한 뉴스는 공짜로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이 신문은 퇴장 국면에 있지만 모든 신문이 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객관성과 정확성 같은 기사작성의 오랜 구각(舊殼)에서 탈피한다면 살아남을 수도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사실 보도와 주관적 의견(오피니언)을 구분하지 않는 영국의 신문을 꼽고 있다.

신문의 위기…한국과 미국

그래서 "살아 남는 신문도 있고, 인원 감축문제로 여러 해 싸우다가 사라지는 신문도 있을 것"이라고 킨슬리는 보고있다('타임' 10월2일자).

종이신문의 위기감은 이 나라에서도 현실적인 문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국과 같은 민주적 언론 선진국과는 차원이 다를 만큼 위기감이 심각하다. 그만큼 세계에 유례가 없는 한국 특유의 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선진 민주국가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한국의 신문위기는 지난 19일 국세청이 정기적 언론사 세무조사를 발표하자 쏟아진 논란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한국방송(KBS), 매일경제와 함께 세무조사 대상이 된 조선일보는 사설(21일자)에서 먼저 2001년 김대중 정부 때 세무조사를 난타했다. "김대중 정권이 김정일의 답방을 실현시키려는 수단과 과정의 적법성, 그리고 정치적 목적에 의문을 제기하고 국민적 합의과정이 필요하다"는 대북 정책 비판에 "몇 차례의 협박과 회유"를 해봤지만 "조선일보가 거부하자 세무조사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어서 노무현 정부에 의한 5년만의 정기세무조사에 대해 "이 정권은 출범 이후 3년8개월 동안 조선일보에 대해 쉼 없이 권력적·법률적·행정적·언어적 폭력을 휘둘러 왔다"하고 "권력이 신문을 탄압할 수는 있었을지언정 신문을 죽일 수는 없다"고 했다.

탈세 안했다면 왜 조사 거부하나

조선일보는 방상훈 사장이 지난 6월29일 대법원 최종심에서 공금횡령과 세금 포탈 등의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벌금 25억 원의 확정판결을 선고받고 발행인 자리를 내놓은 사실을 잊은 것 같다.

조선일보는 입이 열 개가 아니라 백 개라 해도 5년만의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죄를 지은 자가 경찰관에게 붙잡히자 "인권탄압"이라고 거리를 향해 외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조선일보가 정녕 탈세를 하지 않았다면 5년 전 드러났던 엄청난 탈세를 뉘우치고 사죄하는 뜻에서라도 겸허하게 세무조사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것이 이 나라, 이 사회에서 양심과 양식을 대표해야 될 언론기관의 당연한 자세다.

거액의 탈세 전력(前歷)이 있는 조선일보가 5년만의 정기 세무조사에 대해 대뜸 '언론탄압'의 이름으로 노무현 정부를 매도하는 것은 '도끼로 제 발등 찍기'와도 같다. 미국의 신문들은 인터넷과의 경쟁으로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지만 이 나라의 신문은 압도적 시장과점을 바탕으로 군림하고 있는 권력이다. 탈세라는 파렴치한 일을 저지르고도 큰 소리 치는 모습은 이 나라의 양심과 법의 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서는 인터넷의 도전에 대응하기에 따라 죽는 신문과 살아 남는 신문이 엇갈릴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나라의 신문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언론은 양심·양식과 품위를 대표해야 한다. 당연히 탈세를 하지 않는 신문들이 살아 남아야한다고 믿고, 기대한다.

   
 
 

정경희 선생은 한국일보 기자, 외신부장, 문화부장, 부국장,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1992년 '위암언론상', 2002년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했다. 1996년 8월부터 미디어오늘에 '곧은소리' 집필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고대사회문화연구'(1990), '정경희의 곧은소리'(1999), '실록 막말시대-권언 카르텔의 해부'(200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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