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부 얼굴도 못 봤는데…서글픈 마음”
“증조부 얼굴도 못 봤는데…서글픈 마음”
[메일 전문]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 "일부 언론횡포에 답답"

월간조선은 11월호를 통해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증조부가 동학혁명 당시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조기숙 전 수석은 미디어오늘 기자를 비롯한 자신의 지인들에게 심경을 담은 이메일을 보냈다. 조기숙 전 수석에게 양해를 구해 이메일 전문을 공개한다. / 편집자

안녕하십니까. 잘 지내셨지요.

   
  ▲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 ⓒ연합뉴스  
 
7월에 귀국했는데 귀국인사가 좀 늦었습니다. 그 동안 저의 꿈이었던 소시민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얼마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혼자만 너무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입니다. 화창하고 높은 가을 하늘은 어디 가고 희뿌연 안개와 후덥지근한 날이 계속되는지 마치 오늘 제 마음 같네요. 밝고 상쾌한 소식을 전하지 못해 더욱 죄송합니다.

모신문과 그 자매지가 지난해에도 저에 대해 터무니 날조를 하더니 올해도 또 특집을 했네요. 2005년 5월호에서는 반기문 장관을 흠집내는 특집을 실어 반장관이 얼마나 많은 심적 고통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직업 외교관이 그 언론에 당하는 것은 정권의 실세가 됐다는 증거이니 너무 상심하지 마시라고 위로를 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두 번이나 당하게 되니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요. 지난번 특집은 완전 작문이라 대응할 가치도 없었지만 여전히 작문이 곳곳에서 발견되긴 해도 이번 특집은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것이라 그냥 침묵하고 넘어갈 수만은 없을 것 같아 지인들께 몇 자 띄웁니다.

국민들이 일부 언론사 사장이나 정치인의 조상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친일의 대가로 얻은 재산과 권력을 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 조상에 대해 감출 것도 없고 감춘 적도 없습니다. 조상의 과거가 저의 공직수행과 관련이 있다면 당연히 공개적으로 밝혀야겠지요.

하지만 저는 조상의 이름을 팔아 명예나 권력을 누리지도 않았고 그 재산을 물려받아 호의호식하지도 않았습니다. 저의 아버지나 저는 모두 자력으로 공부했습니다. 이번 기사를 보며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증조할아버지까지 팔아서 저에게 나쁜 이미지를 덧씌우나 하는 생각에 서글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그 기사에서도 지적했듯이 이미 학계에서는 저희 증조부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오류일 수도 있다는 학자들의 논문이 발표된 바 있습니다. 어떤 역사적 사건은 한 개인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고부군수가 고부에 부임하기 직전 김해부사를 지냈고 그곳에서 선정을 베풀어 마을 주민들이 공덕비를 세웠습니다.

최근까지도 부사의 선정이 구전으로 전해져 이를 기억하는 주민들이 15년 전쯤 아버지를 불러 큰 잔치를 베풀어주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그곳에 간 적도 공덕비를 손질한 적도  없습니다. 기자의 추측을 마치 사실인 양 앞 쪽에다 배치해 독자를 속이는 수법을 쓴 것도 익히 보아온 행태입니다.

   
  ▲ 월간조선 11월호 표지  
 
부사는 군수보다 높은 직위인데 왜 군수로 좌천이 되었는지 다른 곳에 발령 받은 지 2개월만에 민란이 있는 전라도에 급파가 되었는지, 어머니 상을 당해 관직을 떠나 있다 3년 후에 돌아오면서 곧 동학군을 만나게 된 군수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울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해야 하는 것이 기자의 자세가 아닐까요.

군수는 재판을 받고 귀향을 간 것이 아니라 무죄선고를 받았으며 재판을 담당했던 판사가 군수의 인물됨에 반해 사돈을 맺었습니다. 금시초문인 내용도 많아 그 사실관계를 권위 있는 기관을 통해 검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반론권도 보장하지 않은 채 무엇을 노리고 이런 기사를 썼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때 역사학도가 되어 억울한 가족사를 바로 잡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동학혁명에서 본질은 농민군이 조정의 학정에 대항에 조직적으로 저항했다는 사실이며, 그것이 우리의 근대사와 정신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가 하는 것입니다.

동학혁명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혁명의 의미를 정당화할 학정의 주체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그 희생양이 된다면 그리 나쁠 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억울한 일이 될지 몰라도 누가 학정을 했느냐 하는 것은 역사의 흐름에서 비본질적인 문제에 속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저의 조상이 했다고 알려진 일들이 사실이라 해도 저는 그 자손으로서 지킬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역사적 오류 가능성을 더 이상 캐지 않은 것도 당시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억울함을 벗는다고 희생자에게 어떤 위로가 될까 하는 생각에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청와대 수석 재직 시 동학운동기념행사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제가 참석하는 것이 유족께 누가 된다며 주최 측에 제 개인사정을 솔직히 말씀드리며 양해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조상에게 잘못이 있다면 저라도 업보를 씻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어려웠던 유학시절에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생활비 일부를 기부해왔고 지금도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살아가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억울하지만 저의 가족사를 왜곡한 적도 숨기려한 적도 없는데 이것이 왜 이 시점에서 문제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신문도 장사라지만 아무리 경우가 없는 장사라도 최소한의 상도의는 지키는 법입니다. 불륜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갈취하는 협박꾼이 떠오릅니다. "우리에게 협력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추구할 때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겠다"며 다른 교수와 정치인들을 협박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봅니다. 전자의 경우는 피해가 개인에게 한정되는 데 비해 후자의 경우는 조직적이어서 그 폐해가 사회 전체에 미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들의 횡포를 용납한다면 제2, 제3의 희생자가 나올 것이고 누구도 언론의 무소불위에 맞서려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반론권 청구를 비롯해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 등 이들이 재직 시에 가한 온갖 왜곡 오보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저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소시민 생활에 너무 맛들여진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도 해봅니다. 하지만 현정권 창출세력이 똘똘 뭉쳐 단합한다면 일부 언론의 부당한 횡포에 이렇게까지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이들의 프레임을 깨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습니다. 역사에서 엄청난 진보란 없는 것 같습니다. 힘을 보태주는 사람들이 다수 생길 때까지 저도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저는 저를 힘들게 하는 분들께 늘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왔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기독교의 원죄랄까 불교의 업보랄까 하는 것이 조금은 가벼워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언론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립니다. 일부 억울했던 저의 가족사에 대한 진실을 밝혀주신 것과 저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저의 업보를 어느 정도 벗겨주신 것 모두 감사드립니다.

날씨가 쾌청해지면 일산 호수공원에 한 번 초청하겠습니다. 소주라도 한 잔 하면서 소시민의 행복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2006년 10월 19일 조기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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