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언동'이란다. 그러면서 "제발 어른스럽게 처신하라"고 어른다. 15일 북한 핵실험 제재에 관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나온 뒤, 정부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금강산관광, 개성공단사업 등을 계속 추진할 의사를 밝히자 조선일보가 흰자위를 드러내며 내뱉은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걸까? 사설에 따르면, 정부가 유엔 결의 중심의 완벽한 공동대응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기만 하면, 스스로 '핵을 안고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협상테이블로 돌아 오게 된단다.(조선 사설, <정부와 집권당, 제발 어른이 돼라>, 2006.10.16)
 
유엔 결의안과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을 구분한 한국 정부의 태도를 '물타기'라고 준열하게 꾸짖는 중앙일보의 날선 목소리도 조선일보 못지 않다. 두 사업을 통해 북한에 들어간 돈이 올해만 2000만 달러고 이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확인할 길이 없는데, 나아가 미국은 이것이 북한 핵무기 제조에 전용됐다고 보고 있는데, 정부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선을 긋는 것은 "국제사회와 등을 지겠다고 결심한 것" 아니면 "나라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행동에 다름 아니라고 매섭게 힐난한다.(중앙 사설, <유엔 결의안에 벌써부터 엇박자 내려 하나>, 2006.10.16)
 
동아일보는 숫제 <"전쟁하잔 말이냐"로 국민 또 속일건가>고 호통이다. 북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주문할 때마다 정부 여당 측에서 되받는 "그럼 전쟁이라도 하자는 말이냐"는 반박이 사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역정이다. "정말로 우리를 전쟁의 위험으로 몰고 가는 쪽은 맹목적인 대북 포용주의자들"이며 "포용정책만 고집하면 다음 단계엔 북핵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으니 "얼치기 친북좌파 이념으로 나라를 통째로 변질시켜 김정일 집단에 바치려는 의도가 없다면 잘못된 포용정책은 재고해야 마땅하다"는 거다.(동아 사설, <"전쟁하잔 말이냐"로 국민 또 속일건가>, 2006.10.16)
 

   
  ▲ 조선일보 10월16일자 사설  
 
   
  ▲ 중앙일보 10월16일자 사설  
 
   
  ▲ 동아일보 10월16일자 사설  
 
사설 옆에 배치된 칼럼의 목소리는 한결 더 강경하다. <칼을 든 폭력배가 전철을 탔다면>. 조선일보가 뽑아든 16일자 '강인선칼럼'의 제목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결의안이 나와도, 안보를 강화할 고민을 하기보다는 '포용정책' 살리기에 더 열을 올리는 정부의 불감증(?)을 치유하자고 회칼을 든 폭력배가 전철에 탄 상황을 가상해 국민을 윽박지르는 조선일보의 친절한 상상력이 섹시하다.
 
중앙일보는 예전에 "북한 더 잘 살아야 개방 빨리 온다"는 기사를 썼지만 "북한의 핵실험을 접하고나서는 스스로 무식함을 넘어 현실 인식의 유치함을 통감하게 됐다"는 남윤호 경제부문 차장의 참회록을 16일자 '노트북을 열며' 칼럼란에 실었다. "이런 상황에서 포용정책의 기조를 유지하거나 그 정당성을 주장하는 건 김정일 정권에 대한 지지선언이나 다름없는" 것이니 자신을 본받아 서둘러 전향하라는 게 그 요지.(<'포용' 계속은 김정일 지지 선언>)
 
동아일보 육정수 논설위원이 쓴 16일자 '광화문에서' 칼럼은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 김정일 정권과 그럼에도 포용정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남한 노무현 정권을 질타하는 격한 울분과 선동적 언어로 질펀하다. 여기에 더해 대국민 공포를 부채질하는 가공할 가정법까지. "북한이 간첩을 시켜 서울시내 지하철역 몇 군데에 독가스를 풀었다고 해 보자. 서울은 일순간에 대공황에 빠질 것이다"....운운.(<평화는 군사력이 만든다>)
 
상기한 주장을 종합하자면, 유엔 결의안이 나왔는데도 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을 계속하는 것은 "얼치기 친북좌파 이념으로 나라를 통째로 김정일 집단에 바치려는 (불순한) 의도"로 "국제사회와 등을 지고, 나라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행동"으로 정죄될 수 밖에 없으니만큼, 정부가 구원받는 길은 "철부지 언동을 벗어던지고 어른스럽게 처신"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북한을 압박하면 문제가 절로 해결된다는 게 조중동의 가르침 되겠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조선일보는 북한을 거세게 압박하면 결국 '핵을 안고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협상테이블로 복귀할 거라고 낙관한다. 그러나 이는 흰 색을 검은 색이라 하고, 검은 색을 흰 색이라 하는 철면피한 거짓말에 불과하다. 모든 대화를 단절하고 오로지 강경 일변도로 치달은 미국의 압박이 낳은 것이 북핵이다. 북한 핵실험은, 조중동이 주장하는 것처럼, 포용의 대가가 아니라 압박의 결과물이었다는 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압박에만 올인하자고?
 
중앙일보는 정부가 유엔 결의안과 별도로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을 계속하겠다는 것은 국제사회에 등을 지고 나라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으름장이다. 그러면 기분 나쁘다고 당장 걷어 치울까? 아다시피 이 둘은 많은 민간기업들이 관계된 남북 경협의 핵심으로서 한반도 평화의 안전판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상징적인 사업들이다. 이것이 중단될 경우 남북간 긴장고조는 물론 국가신인도의 추락과 엄청난 경제적 손실은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무조건 중단하고 보자고?
 
동아일보는 "북한하고 전쟁하잔 말이냐"는 국민을 속이는 정부의 거짓말이라고 비난하며, 오히려 맹목적인 대북 포용주의자들이야말로 전쟁의 위험으로 몰고가는 사람들이라고 되받아친다. 그러나 진짜 거짓말 하는 쪽은 어디일까? 긴 말 할 것 없이 PSI 참여확대를 주장하며 '국지전 발발' 가능성까지 상정한 한나라당 공 모 의원과 "평화 원하면 전쟁 각오해야 한다"고 부르짖은 송 모 의원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전쟁까지 가상하고서 미국과 손잡고 해상봉쇄에 적극 나서잔다. 그 다음은? 육 논설위원의 말처럼 "서울에 핵 폭탄이 떨어졌다고 해 보자. 서울은 일순간 잿더미가 되고...." 그걸 원하는 건가?
 
지금은 '수구꼴통의 대부'로 비웃음받는 조갑제 씨가 예전에 어쩌다 한번 입바른 말을 한 적이 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년 언론의 방약무인과 무책임을 목도하고서 한탄하듯 내뱉은 말인데 이 시점에서 반드시 되새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감히' 일독을 권한다. 나라의 명운이야 어찌돼든 말든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함부로 내뱉는 조중동의 오만방자한 행태를 생각하면 절로 무릎을 치며 공감하게 될 것이다. 조중동의 무책임한 선동이야말로 나라를 망치는 장본인이며, 거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망국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전략).....중견기자들의 모임에서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나라가 가장 빨리 망하는 방법은 야당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 빨리 망할려면 신문사설이 하자는 대로 하면 된다' 다른 기자는 '행정부의 사람들이 언론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보면 아찔할 정도이다. 제발 우리가 하자는 대로 안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언론은 안개와 같은 것 아닌가. 애당초 무섭게 느끼는 사람에게는 귀신 같이 보여 기절하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콧방귀를 뀌는 사람에게 안개는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우리 언론이 지금처럼 과장과 왜곡을 계속해서 일삼는다면 아무 것도 아닌 안개가 돼 버릴 것이다'

언론은 그 속성상 무책임하다. 숱한 오보를 하고서도 정정은 커녕 사과 한 마디 없다. 대안도 없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 많고 여론과 정부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가서 결과적으로 일을 그르쳤을 때는 또 다른 구실을 찾아내 난도질을 한다. 이제 국민들과 공무원들은 언론을 무턱대고 믿거나 따르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할 때다. '신문에 났더라'가 사실여부의 척도가 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정부없이는 못 살지만 언론없이는 살 수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후략)...."(조갑제 홈페이지, <언론독재를 타도하는 길>, 1989년)

문한별 / 언론인권센터 대외협력위원장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