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 이후 한반도 정세는 더욱 불안정한 상황이다.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 하루 하루를 살아가야 하지만 국민들은 침착하고 냉정하다.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사태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이나 언론 등 공적인 역할을 해야 할 주체들은 국민혼란을 부추기는 데 앞장서고 있는 모습이다. 17일자 조간신문 역시 이러한 흐름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조간신문 대부분은 북핵 문제와 관련된 뉴스를 1면 머리기사로 전했다. 중앙일보는 국정원이 대북 교류를 일시 중단할 필요가 있다는 건의를 했다는 소식을 1면 기사로 전했고 서울신문은 일본 불임 부부들이 한국에서 대리출산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머리기사로 올렸다.

다음은 주요 조간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

경향신문 <정부대응 정말 헷갈린다>
국민일보 <'북핵중재' 속도내는 러시아>
동아일보 <정부, 미에 삭제 요청했었다>
서울신문 <일 불임부부들 원정 한국 대리출산 성행>
세계일보 <"미·일, 북 붕괴 대책 마련중">
조선일보 <"북한과는 돈거래 안됩니다">
중앙일보 <국정원 "대북교류 일시중단 필요">
한겨레 <중 랴오닝·지린서도 대북 송금중단 조처>
한국일보 <'북핵' 한반도 외교전 시작됐다>

전쟁이 그리운 보수언론?

북한 핵실험 이후 주요 언론의 보도태도를 보면 확연한 시각차가 드러난다. 보수언론들은 대북 강경책을 요구하며 정부와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 부시 정부의 논리를 충실히 따르는 모습이다. 반면 중도 진보 성향 언론들은 신중한 대처를 주문하며 '대화'를 통한 해결이라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모습이다.

합리적인 의견교환과 조율을 통해 해법을 만들어가고 논쟁과 토론을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게 만든다면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일부 언론의 보도태도는 심각한 의문을 던져주게 만든다.

"밖이 소란했다. 북한이 핵폭탄을 발사했다고 술렁거리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어디로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섬광이 번쩍이더니 빌딩이 녹아 내리고 있었다. 아…, 벌써 늦었구나. 나는 이미 방사능에 노출됐고 이제 곧 핵 폭풍이 불어닥칠 것이다. 절망이었다. 가위에 눌려 꿈에서 깼다."

중앙일보 문창극 주필, 꿈 속의 가상 핵전쟁

중앙일보 17일자 31면에 실린 문창극 주필의 <어두움의 끝은 통일의 시작이다>라는 칼럼에 실린 내용이다. 소설에나 나올 법안 내용이지만 북한 핵실험 사태와 한반도 정세 불안을 감안하면 중앙일보 주필의 칼럼 내용은 그냥 흘려 버릴 수 없다. 17일 아침 중앙일보를 받아 든 독자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 중앙일보 10월17일자 31면  
 
한반도는 지난 1950년 전쟁의 광풍으로 처참한 현실을 경험해야 했다. 한국전쟁의 아픔은 여전히 국민의 마음 속에 남아 있다. 보수언론은 북한 핵실험 사태가 터진 이후 안보불안을 부추기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동아일보는 3면 <작전권환수 이어 핵우산마저 접으면 '안보 공황'>이라는 기사에서 "수천t의 생화학 무기에 핵무기까지 보유하는 등 북한이 한국에는 없는 '비대칭전력' 증강에 열을 올리는 상황에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이어 핵우산까지 걷어 버릴 경우 총체적인 안보 위기가 초래돼 국가 안위가 바람 앞의 촛불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 "국가 안위는 바람 앞의 촛불"

동아일보는 <북한의 핵 선제 공격시 미국의 핵우산 예상도>라는 제목의 그래픽을 통해 한반도의 가상 전쟁 상황을 친절히(?) 설명하고 있다. 냉전 이데올로기 확산을 위한 '색깔론'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 동아일보 10월17일자 3면.  
 
동아일보는 8면 <'북 핵보유 정당화' 친북서적 나돈다>는 기사를 통해 "이적단체로 규정된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 남측본부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북한의 이른바 '선군정치'를 찬양하는 서적을 팔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경찰은 범청학련이 2004년 국내에서 접속이 차단된 반제민전 사이트에 실린 글을 책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은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된다고 보고 수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보수언론은 안보불안을 부추기면서도 전쟁 가능성을 높이는 대북 제재 강화를 한 목소리로 주문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추진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한국의 적극적인 참여를 주문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5면 <"정보 얻기위해서라도 PSI 참여는 필요">라는 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 정부의 외교 정책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고 있는 문정인 연세대 교수(외교부 국제안보 대사)는 16일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 1718호가 본격 실행되면 동해에서 미·북간 국지적인 무력 충돌 등 긴장 국면이 예상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보수언론의 PSI 참여 압박

조선일보의 보도처럼 PSI에 참여할 경우 동해상의 국지적인 무력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국지적인 충돌 정도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모습이다. 무엇 때문일까. 북한 체제 붕괴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34면 <류근일 칼럼: '금강산-개성'을 거부하는 운동을>을 통해 "이제 우리 내부의 대치선은 더욱 뚜렷하게 그어졌다. 김정일 편이냐 그 반대편이냐, 반 대한민국이냐 대한민국이냐의 구분이 그것"이라며 "대한민국 진영은 이참에 '김정일 없는 북한', '김정일 아닌 북한'의 국제정치적 생성 조건을 예리하게 탐사해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조선일보 10월17일자 34면.  
 
세계일보는 <"미·일, 북 붕괴 대책 마련중">이라는 1면 머리기사를 통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이후 미국과 일본이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가속화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의 경제제재가 북한의 붕괴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정보분석에 따라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일본 군사소식통들이 16일 전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김정일 체제 붕괴가 목적?

세계일보는 <정부 PSI 참여로 북핵 해법 찾아야>라는 사설을 통해 "북의 핵 보유로 남북간 군사적 비대칭이 확연해졌는데도 언제까지 작금의 안보 위기 상황을 방치하고 안보리 결의를 외면할 수 있겠는가"라며 "PSI 참여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렇다면 차라리 자발적인 참여에 따른 한미동맹 강화의 기회라도 잡는 게 실익이 아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차분한 대화를 통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언론도 적지 않다. 한국일보는 30면 <그래도 통일을 말해야 한다>는 제목의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칼럼을 통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남북 교류의 끈이 끊어져 분단이 고착화하는 것이다. 난해하더라도 우리 목표는 북의 민주화와 궁극적으로 통일에 맞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한국일보 10월17일자 30면.  
 
한겨레도 1면 <'마주 달리는' 북-미 제재를 협상 지렛대로 중·러 '대화중재' 긴요>라는 기사를 통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북한이 또 다른 잘못된 결정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제재가 또 다른 제재로 이어지는 걸 막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대화와 협상 vs 대북 압박과 제재

한국정부의 대응방향은 한반도 정세에 적지않은 영향을 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보수언론은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며 강경책을 주문하는 상황이다. 조선일보는 <북 핵실험 이후 바뀐 세상 못 읽는 '핵맹' 한국>이라는 사설에서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자주 국방' 구호에 취해 있다가 10월9일 아침부터 핵무장한 북한 앞에 무방비로 서게 됐다"며 "한마디로 이 정부는 핵에 대한 관심도 핵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도 없고 핵 실상에 대한 파악능력도 핵에 대한 대처 능력도 갖추지 못한 '핵맹' 정부라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북핵 대처할 의지도, 방향도 없는 정부>라는 사설에서 "모든 상황을 현실은 무시하고 정치적 목적에 맞춰 해석한다. 이런 중차대한 시절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누구도 모르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정부에 국민은 생명과 재산을 맡기고 있다. 비극이다"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북핵실험 사태 이후 적절히 대응했는지는 의문이다. 갈팡질팡 행보와 무소신 행보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대북 강경책에 동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정부가 뚜렷한 원칙을 갖고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경향신문 "대북 특사 파견 검토해야"

한겨레는 <'북핵 대화 해결'위한 한국의 선택>이라는 사설을 통해 "대화의 '대'자도 거론하지 않은 채 대북 봉쇄에만 골몰하는 이런 태도는 북한 핵실험에 맞먹는 또다른 모험주의로, 그대로 진행될 경우 사태 악화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북한 정권이 압박을 못 이겨 굴복하거나 체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가정은 근거가 빈약하며, 압박 강화는 북한의 격렬한 반발만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각국의 대응은 대화와 협상을 성공시키기 위한 방안을 찾는데 집중돼야 하고, 제재는 보조수단에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정부의 창의적 북핵 해결노력 필요하다>는 사설을 통해 "중국이나 미국의 대북 특사파견에 매달리기보다는 우리가 파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며 "지금과 같은 간접경로가 아니라 논리를 갖고 부시 행정부에 직접 얘기할 때, 가능성은 낮지만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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