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신문들이 북한 핵실험으로 위기에 처한 '미국 구하기'에 나섰다. 미국 내에서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부시 행정부의 강경한 대북 정책이 북한의 핵실험 강행 사태를 불러왔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국내 보수 신문만은 "미국탓이 아니다"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 중앙일보 10월13일자 사설  
 
중앙일보는 13일자 사설 <'북한 핵실험 미국 책임론' 무책임하다>에서 "미국은 한·중·일과 함께 북한이 핵 포기만 하면 체제 보장은 물론 엄청난 규모의 경제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며 "국제범죄를 저지른 측엔 아무런 질책 없이, 자국의 금융질서 확립을 위해 이런 조치를 취한 미국에 대해서만 책임을 묻는다면 과연 온당한 주장일까"라고 반문했다.

중앙은 "유엔을 비롯한 미·일의 강력한 대북 제재가 곧 시작"되는 판에 "미국 책임론만 거론한다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북한과 공조하려는 국가'라는 낙인과 함께 고립될 것이 자명하다"며 "이럴 경우 가뜩이나 취약해진 우리 안보는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밝혔다.

중앙의 속내는 사설의 제일 마지막 문장이다.

"햇볕정책의 실패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직 대통령과 집권층이 안보 불안을 부채질하는 주장을 서슴없이 하니 정말 우려된다. 당장 중지하라."

   
  ▲ 중앙일보 10월13일자 1면  
 
특히 중앙은 1면 <경제 거덜난 북한 그 돈 어디서 났나> 기사에서도 "북한이 1979년 핵 개발을 본격 추진한 이후 9일 한 발의 핵탄두를 실험하는 데까지 2억9000만∼7억6400만 달러(약 2750억∼7258억원)의 직접비용이 들어갔을 것으로 국방부는 추정하고 있다"며 이 비용의 출처에 대해 "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화해협력 정책에 따라 북한에 건네진 달러의 전용 가능성"을 제기했다.

현대와의 금강산 관광 사업, 남북 정상회담 당시의 대북 송금, 개성공단 토지 대가, 각종 민간 교류 등을 통해 북한에 지원한 것들이 핵무기 개발에 전용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도 미국 편들기를 거들고 있다.

동아는 <총리까지 미국 탓하며 북 핵개발 응원하나> 사설에서 "그렇지 않아도 친북단체들은 '미국 책임론'을 앞세워 반미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며 "이들은 '북의 핵실험은 미국의 대북 압살정책이 낳은 결과로 이참에 미제의 숨통을 끊어 놔야 한다'며 반미 선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100달러 지폐를 대량 위조한 북에 대한 금융제재에 착수한 것은 작년 9월"인데 "북은 그전에 이미 핵개발을 끝내고 실험만 기다리고 있었"고, "그런데도 북은 '미국의 압박과 북-미 양자회담 거부 때문'이라고 강변하고, 우리 정부와 여당 인사들까지 이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13일자 5면 <북핵 '그것이 궁금하다'> 상자 기사에서 미국 책임론을 '핑계'라고 규정했다.

조선은 기사를 통해 북한이 "처음부터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었다"며 "대북 금융제재도 북한의 핵폭탄 개발과 관계가 없다. 금융제재는 작년부터였는데 북한은 1980년대부터 핵을 개발해 왔다"고 했다.

   
  ▲ 조선일보 10월13일자 5면  
 
그러나 한겨레는 13일자 4면 <미, 직접대화 왜 거부하나> 기사에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좌우하는 네오콘들은 외교를 협상이 아니라 보상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특히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나 북한, 이란 등 '악의 축'과의 직접 대화는 거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한겨레 10월13일자 4면  
 
조중동의 '미국 편들기'는 부시 행정부의 초강경 대북 정책이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는 국제 사회의 시각과는 거리가 먼 분석이다.

"북한의 핵 실험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완벽한 실패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 페리 전 국방장관.

"미국이 대화하지 않음으로써 북한을 더 호전적으로 만들었고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하고,핵무기 실험도 실시했다" - 유엔주재 대사 출신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

"미국은 지나친 금융 제재와 강경 노선으로 북한 지도자들로 하여금 올가미가 조여지는 느낌을 갖도록 했다. 정권교체를 갖고 게임해온 것은 너무 위험했다." - 셀리그 해리슨 국제정책센터(CIP)선임연구원.

"미국이 북한과 단독 대면을 외면한 채 6자회담만 고집해 사태를 그르쳤다" - LA타임스.

"미국이 지나친 금융 제재와 강경 노선으로 북한 지도자들로 하여금 올가미가 조여지는 느낌을 갖도록 한 것이 문제" - 워싱턴포스트.

"20여년에 걸친 미국의 대북정책 실패의 소산" - 뉴욕타임스.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의 벼랑끝 외교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낳은 '쓴 열매'…핵 보유를 억제하기 위한 정책이 그 반대의 결과를 낳은 만큼 정책의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 르몽드.

"북한의 핵개발을 허용한 부시 행정부의 대북 '무대책'에 대한 비판이 미국에서도 나오고 있다"- 아사히신문.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북 강경책을 펴오자 북한의 반발은 한층 심해졌으며 이에 따라 긴장도 고조됐다" - 모로코의 로피니옹.

북한 핵실험 이후 세계 언론과 대북 전문가들이 내놓은 분석이다. 조중동은 이들에게도 "미국에 책임을 넘기려는 핑계를 대지 말라"고 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들도 동아가 주장하는 '친북단체'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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