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신문에는 없고 오직 조중동에만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신문의 얼굴이라는 1면과 5, 7면(동아의 경우엔 9면)의 광고를 비교하면 답이 나온다.
 
9일자 중앙 일간지들의 1면을 우선 훑어 보자. 조중동 1면 하단에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변호사 개업(영입)광고가 박스로 실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게다. 다른 신문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 2006년 10월9일자 조선-중앙-동아 1면에 실린 변호사 개업(영입) 광고.  
 

조선 - 대법관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이 모 변호사를 고문변호사로 영입하게 됐더라는 000 법무법인 광고.
중앙 - 광주·부산지검 검사장, 법무연수원장 및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직을 두루 역임한 정 모 변호사가 법무법인 000의 고문변호사로 업무를 개시하게 됐더라는 광고.
동아 - 헌법재판관 임기를 마치고 변호사로 새 출발한 김 모 변호사가 동료들과 함께 00합동법률사무소를 개설하게 됐더라는 광고.

 
변호사로 옷을 갈아 입고 새출발 하는 이들이 광고효과가 큰 특정신문을 선택해 자신을 PR하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다.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는 나라고, 게다가 빛바랜 영화처럼 늘상 봐 온 해묵은 관행이니까.
 
문제는 고위 법관으로 지내던 이가 퇴임해서 변호사로 개업하는 것이 법조비리의 온상인 전관예우를 부추긴다는 것이고, 더 큰 문제는 입만 열면 '전관예우' 관행을 질타하며 사법개혁을 부르짖는 신문들이 이러한 문제점을 버젓이 알면서도 공공연하게 변호사 개업광고를 1면에 내거는 앞뒤 다른 꼴불견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2005년 11월12일자 사설에서 '전관예우' 논란을 불러 일으킨 박시환 대법관 후보자와 조대현 헌법재판관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법조인들의 밥그릇 챙기기를 이렇게 꼬집었다.
 
"전직 판·검사가 변호사를 개업하면 일정 기간 법원이나 검찰에서 여러가지로 보살펴주는 전관예우는 '판·검사의 비공인 퇴직금'으로까지 불리는 법조계의 뿌리 깊은 병폐고, 대표적인 악습이다. 법복을 벗고 변호사 개업을 해 1년 안에 몇십억원대를 벌지 못하면 무능력자로 여겨진다는 말까지 나돈다.

전관예우의 악습이 뿌리뽑히지 않는 근본적인 책임은 '전관예우의 미래 수혜자'가 될 현직 법조인이 퇴직 법조인들과 하나의 이익집단으로 얽혀 그런 관행을 이어받고 재생산하는 데 있다.... 사법개혁은 판검사들이 전관예우와 같은 자신들의 기득이권을 포기하는 결단에서 출발해야만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사설, <전관예우에선 보수·진보가 없는 법조계의 현실>, 2005.11.12)
 
동아일보도 다르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두산그룹 비자금사건 집행유예 판결을 비판함으로써 사법부 안팎에 파장을 일으킨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과 관련, 사설로 이렇게 주장했다.
 
"이 사건 판결은 전관예우의 의심을 받을 만하다. 피고인의 변호인 5명이 재판장과 고교 동문 또는 사법연수원 동기다. 재판부는 286억 원 횡령 및 수백억 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기소된 11명에게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전원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법관의 독립성은 존중돼야 하지만 일부 법관이 독립성의 우산 밑에서 전관예우와 유전무죄의 관행에 안주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많은 국민이 법원의 양형을 신뢰하지 않고, 우리 사회에서 부패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대법원장이 경고한 유전무죄와 전관예우>, 2006.2.18)
 
중앙일보라고 남다를까. 중앙일보 또한 <'전관예우 금지'의 법제화>란 제하의 사설(1998년 5월11일)에서 전관예우 금지의 법제화를 둘러싼 논란을 소개하면서 "전관예우는 곧 공정한 법집행이 안된다는 의미다.... 사법부와 검찰은 전관예우 금지의 위헌성 주장에 앞서 다시는 전관예우 때문에 특혜나 피해를 보는 당사자가 없도록 단속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입바른 말을 늘어놨다.
 
앞에서는 '세균척결'을 소리높이 외치고, 뒤돌아선 '부패 곰팡이균'를 키우는 조중동의 야누스적 행태가 이러하다. 이를 어찌 일관성 있고 양식있는 언론의 자세라 할 것인가.
 
1면의 변호사 개업(고용)광고를 훑어 봤으면 이제 지면을 넘겨 5면, 7면의 광고(동아는 9면)를 살펴 보자. 무엇이 보이는가? 그렇다. 자동차다. '억'소리가 절로 나는 외제 자동차 광고.
 
조선 - 메르세데스 벤츠 New M-Class(5면 우측 하단), 볼보S80(7면 전체)
중앙 - 아우디 A6 TDI(5면 좌측 하단), 볼보S80(7면 전체)
동아 - 재규어XJ(5면 좌측 하단), 혼다 레전드(9면 전체)

   
  ▲ 2006년 10월9일자 조선-중앙-동아 5면에 실린 자동차 광고  
 

   
  ▲ 2006년 10월9일자 조선 7면-중앙 7면-동아 9면에 실린 자동차 전면광고  
 

조중동을 제외한 다른 신문들에는 이같은 외제차 광고가 없다. 왜 없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독자의 구매력에서 조중동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조중동을 일컬어 괜히 '부자신문'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조중동은 그 자체로 언론재벌 내지는 재벌언론일 뿐만 아니라 그 독자들 또한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씀씀이가 크기로 정평이 나 있다. 조중동에만 실려 있는 외제차 광고가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아니한가?
 
태생이 그러하고, 체질이 그러한 고로 조중동이 기업을 편들며 노동자를 적대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나아가 '분배'의 'ㅂ'자만 나와도 얼굴색이 변하고, 성장드라이브를 끊임없이 합창하는 것 또한. 그런데도 왜 가난한 서민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 주지도 않는 조중동을 즐겨 보는 걸까?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 

문한별 / 언론인권센터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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