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지면이 심상치 않다. ‘친이회창’이란 세간의 평가를 뒷받침하는 ‘물증’이 지면을 통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지난 22일 검찰의 비자금수사 유보가 청와대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보도를 시작으로 연일 김영삼 대통령을 겨냥한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김대통령 DJ 비자금 수사유보 지시’(10월 22일자 1면), ‘김 대통령 탈당 요구’(10월 23일 1면), ‘김대통령 이인제씨 밀었다’(10월 24일 1면), ‘이회창 청와대 회담 거부’(10월 25일 1면), ‘여 내분 김대통령 가세 난투’(10월 26일 1면) 등 제목만 언뜻봐도 중앙일보의 지향점이 어디인지 명확하다. 이회창 대표의 정치적 주장을 지원하는 논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최소한 이회창 총재측을 의식한 듯한 기사가 넘치고 있다. 이는 당장 일선 기자들의 반응에서도 확인된다.

신한국당에 출입하는 한 기자는 “최근 기자들 사이에선 중앙일보 지면이 화제다”며 “며칠간 중앙일보 지면을 보면 노골적으로 이회창측 주장을 대변하고 있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국민회의 등 야당은 아예 공식석상에서 ‘중앙일보=이회창’이라는 등식을 내놓고 있다.

중앙일보의 이같은 지면 제작은 일단 전 육 편집국장의 ‘의중’이 상당히 깊게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92년 14대 대선 당시 정치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친YS’라는 평가를 받았던 전 국장은 한동안 동경총국장으로 근무하는 등 편집국장 직전까지 적지 않은 시련을 겪기도 했다.

특히 ‘검찰 수사유보 청와대 개입설’ 보도의 경우 사실상 전 국장이 진두지휘했던 것을 전해져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신문제작의 전반을 책임지는 편집국장 입장에서 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명확한 근거도, 실명의 취재원도 없이 정치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올 내용을, 그것도 일부 기자들이 기사화를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밀어붙인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이 기사에서 청와대 개입설과 국민회의 압력설의 근거로 청와대와 여권의 고위소식통을 내세웠었다.

중앙일보 편집국장 출신으로 이회창대표시절 비서실장을 거쳐 현재 이후보 섭외특보를 맡고 있는 고흥길씨의 유무형의 역할도 중앙보도 배경의 한 주목거리다. 구독률 측면에서 수위를 다투고 있는 중앙일보가 대선 보도의 시험대 위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지 곰곰히 자문해 봐야할 시점이라는 것이 중앙일보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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