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기가 막힐 일이다.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를 '안보 위협' 내지는 '한미동맹 균열'과 직결시키면서 절대불가 입장을 천명해 온 조선일보가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절로 미국으로부터 건네받게 될 것"을 노무현 정부가 괜히 서두르다 일을 그르쳤다며 새삼 방법론을 탓하고 나섰다. <정말 기가 막힐 일>이란 제목을 단 20일자 양상훈 정치부장의 칼럼에서다.
 

   
  ▲ 조선일보 9월20일자 38면  
 
"이제 와서 보니 그냥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는 말로 시작되는 칼럼에서 양 부장은 (미국이) "자신들의 필요 때문"에 "이미 전시 작전통제권을 한국에 넘기기로 결정해 놓고 때만 보고 있었고", 따라서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결국 미국 쪽에서 먼저 한국에 작통권 이양 얘기를 꺼내게 돼 있었는데, 노무현 정부가 '자주'를 들먹이며 먼저 나서는 통에 기다리는 자에게 주어지는 프리미엄을 누릴 수 없게 됐다고 푸념을 잔뜩 늘어 놓았다.
 
요컨대 아쉬운 쪽은 미국이었는데 미련한 노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일을 확대시키는 바람에 미국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막대한 이익을 놓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양 부장은 "기가 막힐 일이다"는 탄식으로 칼럼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정말 기가 막혀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그동안 조선일보는 노 정부가 원하는대로 전작권이 환수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면, 한미연합사가 해체되고, 한미동맹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하며 그로 인해 한반도 안보에 큰 구멍이 생긴다고 일관되게 외쳐 왔다. 기억을 상기시킬 겸 최근 자료만 몇개 살펴 보자.
 
조선일보는 16일자 사설 <대북정책에선 제각각, 동맹 허무는 데는 한목소리>에서 "안보문제인 전작권을 자주에 결부시켜 미국으로부터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양 정치문제로 바꿔놓은 것은 바로 이 정권이었다"고 비판했다.(전작권 본질=안보 문제)
 
13일자 사설 <한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대통령의 마음가짐>에선 "전작권은 나라의 안위가 걸린 문제"라고 거듭 못박으며 "대통령의 자주구호에 솔깃했던 국민들도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온 각계각층 지도자들의 나라걱정을 들으면서 사태의 중대함을 깨닫게 됐다"고 주장했다.(전작권 본질=나라의 안위가 걸린 문제)
 
12일자 사설 <전작권, 대통령이 맺은 매듭 대통령이 풀어야>에서는 "한미연합사 해체 의도는 국가 이익에 명백히 어긋나는 것이며 전시 작전통제권 단독행사는 북한만 이롭게 하는 것"이라는 유병헌 전 합참의장의 말을 인용하며 "(전작권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문제이니 노대통령이 생각을 고쳐먹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고 압박했다.(전작권 환수=친북이적행위)
 
조선일보는 또 같은 날 작성된 <반 외교·윤 국방은 역사에 책임질 각오 있나> 사설에서는 "전작권 단독 행사로 연합사 체제가 해체되면 유사시 한반도 통일을 위해 미군의 자동 개입을 보장하고 있는 '작전계획 5027'은 무효"가 되고 "한국군 혼자서 한국 방어를 책임지고 미군의 역할은 한국군을 지원하는 보조적 역할에 그치게" 되며 "북한이 수십년 간 집요하게 기대하던 사태가 오는 것이다"고 윽박질렀다.(전작권 환수=친북이적행위)
 
전직 외교관들의 공동성명 내용을 상세히 소개한 11일자 사설 <사상 초유 전직 외교관 성명 "전작권 단독행사 안돼">에선 "이 정부가 전작권 단독행사를 끝내 밀고 가면 한미동맹의 축 자체가 사라지게 되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 협박 속에서 미국과 북한의 충돌 가능성이 고조되는 현 국면에서 우리 안보가 결정적인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불안을 부추겼다.(전작권 단독행사=안보 위기)
 
2일자 사설 <대통령, 국방·외교장관, 안보수석 이러면 안된다>에선 국책연구기관인 국방연구원의 보고서를 인용, "북한은 아직도 한국에 대해 (군사력 면에서)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으며", "무리한 전작권 환수는 미국측의 반발과 거부감을 불러일으켜 미국 내 동맹 무용론을 확산시킬 위험이 있다"면서 "대한민국 4800만 국민은 이렇게 안보를 장난으로 아는 넋 나간 사람들에게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내맡겨둔 신세다"고 볼륨을 높였다.(전작권 환수=안보 위기)
 
나아가 8월26일자 사설 <'전시 작통권', 국가위험 높이고 국민부담 키우고>에서는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은 한미동맹, 한미연합사, 유사시 즉각 자동지원조항 등 외부 공격을 차단해 온 안전장치가 풀려버림으로써 머지않아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북한의 공갈 한마디에 증권시세가 동요하고, 외국 투자가는 투자를 망설이고 한국기업에 대한 융자에서 위험금리를 요구하는 갖가지 소용돌이를 겪게 될 것"이라면서 "국민은 대통령에게 요구한다. 대통령은 보름 남짓 남은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국군 원로는 물론, 역대 외교부 장관, 재계 지도자들을 두루 만나 국가적 지혜를 결집해서 국가적 불행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이 없는가를 마지막까지 찾아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전작권 환수=국가적 불행)
 
"작전권 환수가 이뤄지고 이에 따라 한미연합사 해체와 주한미군 대부분이 철수하는 상황이 현실화될 경우....한국 안보가 결정적으로 뒤흔들리게 될 것"(8월3일자 사설 <13명의 전 국방장관 "작전권 환수할 때 아니다">)이라는 조선일보의 목소리를 다 찾아 들으려면 아마 밤을 새도 모자랄 것이다.
 
이모양 조선일보는 '전작권 환수=안보 위험+동맹 균열'이라는 공식을 만들어 시시때때로 절규해 왔다. 그런 조선일보가 갑자기 칼럼을 통해 "이제 와서 보니 그냥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고 느닷없이 말을 바꾸었으니, 조선일보 펜대만 바라보던 독자들로서는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추라는 것인지 '정말 기가 막힐 일' 아닌가.
 
언론의 신뢰성과 논조의 일관성을 중히 여기는 언론이라면 이래선 안된다. 더욱 전작권 환수로 인한 더 이상의 사회적 혼란과 분열을 막기 위해서라도, 조선일보는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 전작권 환수는 누구에 의해서도 &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결코 허용될 수 없고 허용되어서도 안되는 국가의 중대사에 해당하는가? 아니면 미국이 주도하고 넘겨주기로 했으니 "그냥 기다리면 될 일"에 해당하는가?
 
- 조선일보가 노무현 정부에 분노하고 규탄하는 것은 안보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전작권 환수를 주장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를 넘겨 주기로 한 미국보다 먼저 입빠른 소리를 해서 기다림에 따른 프리미엄을 상실했기 때문인가?
 
- 전작권 환수를 노 정부가 요청하면 대한민국의 국가적 불행을 초래할 수 있는 '친북이적행위'가 되고, 미국이 그를 넘겨 주겠다고 하면 그저 '자신들의 필요에 따른' 전략적 행위가 되고 마는가? 조선일보에겐 전작권 환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누가 주도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인가?
 
- 미국이 '전략적 유연성' 확보에 따른 자신들의 구상을 위해 전작권을 넘겨주기로 오래 전부터 계획하고 때를 노려 왔다면, 그를 막기 위해 릴레이성명 발표와 군중집회 등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한나라당과 보수단체는 결국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반미행위를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이들 반미단체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발할 생각은 없는가?
 
- 마지막으로, 조선일보는 이제까지 전작권이 환수되면 금방이라도 나라가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안보불안을 선동하며 국민을 위협하는 한편 노 정부에 대해 근거없는 이념공세를 퍼부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미국의 계산에 따른 것임이 밝혀진 지금, 이에 대해 깨끗하게 사과할 생각은 없는가?


문한별  / 언론인권센터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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