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기자들의 한국생활은 어떨까? 궁금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광화문 모 빌딩 지하 커피숍에서 히키치 타쯔야(引地達也)기자를 만났다.

187cm 장신에 '잘 생겼다'. 물론 한국말은 수준급이다. 94년에 마이니치신문에 입사했다. 이후 경제연구소 부설 월간지를 거쳐 98년, 지금의 교도통신에 입사했다. 외신부 시절, 한국 특파원으로 파견 예정이던 선배의 사망으로 대신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1년간 한국어학당에서 유학 후 2004년 4월부터 한국특파원으로 근무 중이다.

고교 때까지 유망한 야구선수였다. 어깨부상으로 야구를 포기, 진학을 한다. 전공은 독일문학. 전공보다는 킥복싱과 재즈에 심취했던 대학시절이었다.

"오로지 재즈를 듣기만 하는 바(bar)가 있어요. 말을 하면 안 되는 곳이죠. 거기서 살다시피 했어요. 그리고 체육관 가서 운동하고. 대학 때 기억은 이게 전부일 정돕니다."
"상당한 파워의 하이킥을 작렬했을 것 같은데요. 한방에 보낸 적 많죠?"
"아니요. 오히려 한방에 간 적이 많아요."
'평화주의자'였기에 '공격형' 스타일이 아닌 '수비형' 스타일을 택했단다.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한국에 온지 2년 4개월째다. 한국 먹거리도 입에 잘 맞고, 사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단다. "이해 안 되는 거 하나 있어요. 2, 3차 술 마시고 길가에 토하는 사람들.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입니다."
"그럼 양국 언론 문화의 차이점은요?"
"정치권와 언론과의 거리 차이죠. 한국이 더 밀접합니다. 유착관계죠. 기자회견 후 서양기자가 제일 먼저 자리를 뜹니다. 그리고 한국기자들은 밥 먹으러 가죠. 마지막으로 정리 다 하고 자리를 뜨는 게 일본기잡니다."

96년 마이니치신문 기자시절, 위안부 여성의 재판 취재를 하게 됐다. 한국인들이 겪었던 아픔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한일 과거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심층취재를 하려 했지만, 회사에서 허락을 안 해 주더군요. 자비를 들여 그때 한국을 처음 찾았어요. 위안부 할머니, 징용 할아버지들의 한(恨)을 듣게 됐죠."

이후 2002년 한국어학당 유학 시절, 서대문형무소 역사박물관에서 안내 자원봉사를 하게 됐다. 박물관을 찾은 일본 관광객들에게 양국 과거사의 진실을 알리는 일이었다.
"과거사의 진실을 모르고 있는 일본사람들이 여전히 많아요. 진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은 일이었지만 훗날 평화로운 양국의 관계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했던 만큼 지금 생각해보면 의미 있는 시간이었죠."

취재 다음날이 광복절인지라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민감한 현안이라 고민고민하다 질문을 던졌다.
"조심스런 질문입니다. 일본인으로서 야스쿠니 참배는 어떻게 보시는지? 한가지 더. 독도분쟁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 주신다면?"
"야스쿠니 참배는 잘못된 행동이죠. 전몰희생자들께 실례가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대마도가 일본땅인 것처럼 독도! 한국 땅 맞습니다."

어렵게 꺼낸 질문에 대한 답이 오히려 간략하고 명쾌하다. 그만큼 양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사관(史觀) 뚜렷하다. 그는 '일본평화학회' 정회원이다. 화해와 평화의 공존을 고민하며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과 우익 정치가들의 발언에 비판의 목소리를 주창하는 단체다.

유학 중인 아내와 여섯 살 된 아들은 호주에 살고 있단다. 대학 때 캠퍼스커플로 만나 결혼한 아내와 아들을 보러 이달 말, 휴가지는 호주로 정했다고.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일본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인야구팀 'JAPAN'에서 못내 이룬 야구의 꿈을 실현시키고 있단다.

공교롭게도 지난 주 '만만사' 주인공이었던 김정민 기자에 이어 2주 연속 사회인야구를 하는 '선수'를 만나게 됐다. 지난 해, 리그우승컵을 거머쥐었다는 말에 '저희 팀하고 한 게임 하실까요?' 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 다음날 리그 기록표를 '추적'해보니, 4번 타자에 7할의 무서운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물 만난 고기처럼 야구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던 취재 막바지에 그가 한마디 건넨다.
"저도 요즘 그림을 그립니다."
"무슨 그림을요?"
"동물 그림이요."
해외 출장을 가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 있단다. 바로 동물원이다. 언젠가부터 동물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단다. 그래서 생각나는 동물들을 스케치북에 담곤 한다는 그.

'만만사'를 연재하면서 처음 만난 외국인이었다. 더구나 광복절 전날 만난 일본인 기자였다.
질문 하나 하나가 조심스러웠던 필자에게 서글서글한 웃음과 진지함으로 '이해의 시간'을 선사해준 '착한 사람'이다.

중언부언이겠다.
"왜 KO패가 많았냐구요? 맞아주는 거죠. 전 평화주의자니까요."

폭염으로 이글거렸던 아스팔트 횡단보도 위에 '평화주의자'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진다. 그리고는 '척척' 발걸음의 전경 무리가 필자의 앞을 지나갔다. 그날 광화문에선 보수와 진보단체의 시위가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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