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이다. 아니 광복절이라고 해서도 안 되겠다. 광복절이란 뜻깊은 단어를 두고도 우리 신문들은 시비를 건다. 조선일보는 15일자 사설 <8·15에 생각하는 대한민국 건국의 의미>에서 "8월15일을 건국일로 떠올리는 국민이 너무 적다는 사실은, 민주체제를 지켜온 지난 60년 성취의 건국사를 모독하고 부인하는 세력이 기승을 부리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고 했다.
조선 "60년 건국사를 모독하는 세력 기승"
조선일보는 "8·15는 1945년 일제에서 해방된 날이자 1948년 대한민국이 탄생한 날"임에도 다수의 국민이 대한민국 건국일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장탄식을 쏟아낸 뒤 이렇게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남북의 체제경쟁이 이미 종식됐음에도 아직 대한민국에는 건국사를 모독하는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그 원인을 "좌파 계급주의가 눈 먼 민족주의와 결합해 건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자기파괴적 역사관이 우리 사회에 똬리를 틀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 집권세력에 대한 비난도 빼놓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을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집권세력이 단정하는 세상이 됐다"고도 했다. 조선일보는 이런 상황에서 "8·15의 이름을 광복절 대신 건국절로 하자는 제안들은 젊은 세대의 올바른 역사관을 위해서라도 검토할 만하다"고 제안했다.
▲조선일보 8월15일자 사설 | ||
동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다시 꽃피우자"
동아일보도 역시 북과의 체제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비판의 칼날을 현 집권세력으로 옮겼다. "노무현 정권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가볍게 여기고 자랑스러운 성취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노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자주의 꽃'이라고 했지만 '자주'만으로 평화와 안전이 보장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 동아일보는 그 이유를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한 확신의 결여'에서 찾았다. "어떤 정책이나 법안도 좌우 이념의 눈으로 보니 실사구시의 정치가 설 자리를 잃는다. 민생을 위한 구체적 대안도, 선진화 비전도 나오지 않고 있는 이유다."
동아일보는 끝으로 "근대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뤄 낸 저력을 살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다시 꽃피워야 한다. '자주'에 갇혀 세계의 외톨이가 돼선 안 된다"며 "국민의 지혜와 힘으로 대한민국의 위험한 변질을 중지시키고 국가와 사회의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의 우리의 소명이자 광복과 건국의 정신을 되살리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 동아일보 8월15일자 사설 | ||
한겨레 "친일파 여전히 지배세력으로 군림"
한겨레는 사설 <광복 61년만에 이뤄지는 친일파 재산환수 작업>에서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친일파 400여명의 재산을 환수하는 작업에 나선 것은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는 첫걸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겨레는 이어 조선·동아일보의 사관와 전혀 다른 역사인식을 보여준다.
"침략세력인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를 강탈하는 데 앞장서서 협력했던 친일파를 45년 광복 직후 청산하지 못한 것은 당시의 사회문제로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 사회발전의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나라를 되찾고자 온갖 고초를 겪으며 일제와 싸웠던 애국자는 독립 후에도 가난에 시달린 반면에 친일파는 여전히 지배세력으로 군림한 사회가 잘못된 메시지를 전파하기 때문이다. 사회정의를 추구하고 공동체를 함께 가꿔나가는 것보다는 나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 힘센 쪽이 정의이며 선이라는 잘못된 가치관이 득세한 것이다."
한겨레는 조사위원회의 재산 환수 과정에서 직면할 여러 어려움을 나열한 다음 철저한 조사와 사전 준비를 당부했다.
경향 "일제잔제 청산해 자주독립통일국가 목표 새겨야"
이날짜 조간신문 중에서 광복절의 의미를 가장 강조한 경향신문도 사설 <광복 61돌에야 시작되는 친일파 재산환수>에서 친일파 재산환수의 의미와 친일파가 득세하는 현실을 적시한 뒤 이런 바람을 적었다. 경향신문은 1면 머리기사와 함께 6개 면을 광복절 특집기사로 채우는 성의를 보였다.
"풍찬노숙을 하면서도 항일투쟁의 드높은 기상을 꺾지 않았던 독립 투사들의 자손들이 비참하게 살고 있는 현실과 비교하면 쓸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광복절의 풍경은 일제잔재를 완전히 청산하고 자주독립통일국가의 목표를 거듭 되새길 수 있는 뜻깊은 날이 되기를 희망한다."
▲ 경향신문 8월15일자 사설 | ||
중앙 "과거청산 명분으로 포퓰리즘에 빠져선 안 돼"
중앙일보는 그러나 "이 같은 역사적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조사위의 활동에 우려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며 갑자기 논지의 방향을 틀었다. 중앙일보의 우려는 △소급입법 논란 △조사대상이나 몰수재산의 범위 등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우려 △환수하지 못하는 재산과의 형평성 논란 등이었다.
중앙일보는 "조사위는 독립성·공정성을 엄격히 지켜야 하며 개인의 인권과 재산권을 훼손하는 연좌제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과거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정치적 포퓰리즘에 빠져서도 안 된다"며 "이를 위해선 현실정치로부터 독립성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조선·동아일보와 달리 중앙일보의 현실주의·실리주의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중앙일보 역시 '정치적 독립성'이라는 말로 현 집권세력에 대한 불신의 일단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 중앙일보 8월15일자 사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