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해 - 김현철 회동’
신문 보도




한보사태가 1백여일을 넘어섰다. 온 국민의 관심 속에 몸통을 찾기 위한 검찰수사와 국회청문회가 있었고 언론의 추적이 있었다. 그 실체가 대선자금으로 접근되면서 청와대로 그 의혹의 시선이 모아졌다. 이 시점에서 언론보도의 흐름을 짚어 앞으로의 양상을 가늠해본다.

지난 8일 정국혼란을 끝내야 한다는 기사와 주장이 꼬리를 무는 가운데 권영해 안기부장의 김현철씨 극비회동 파문이 불거져 나왔다. 중앙일보가 보도를 했으나 권영해 안기부장을 ‘고위인사’로 익명처리함으로써 흠집난 특종을 했다. 다음날 동아일보·한겨레·세계일보 3개 신문이 고위인사가 안기부장임을 밝힐 때도 중앙일보는 “야당, 고위인사회동 진상촉구” 기사를 1단 처리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이어 9일 열린 국회정보위에 출석한 권안기부장은 야당의 추궁 끝에 현철씨, 김기섭씨와 회동사실을 시인했다. 국가 최고 정보책임자가 피의자 신분인 현철씨를 비밀리에 만났다는 점과 그 시점이 청문회 직후인 4월 28일이라는 점에서 권력의 비호와 수사외압이라는 추론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10일자 신문보도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국회정보위 보고내용 중 황장엽씨 진술만이 지면을 채웠다. 거의 모든 신문들이 “김정일 92년 남침 계획”을 1면 톱, 중간으로 다루었다. ‘북 핵무기 화학무기 위협’을 내용으로 하는 해설기사와 사설이 다음날인 11일까지 이어졌다. 황씨의 진술이 이미 정부가 알고 있는 수준의 것이며 전쟁징후는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은 거의 무시되었다. 이것을 제목에 반영한 조간신문은 단 한군데도 없었고 일부 신문사는 기사마저 누락시켰다.

이러한 황씨 진술 보도와는 달리 안기부장 비밀회동 사실은 축소되어 처리됐다. 한겨레와 중앙이 각각 ‘안기부장 사퇴촉구’와 ‘현철수사 개입의혹’을 제목으로 1면 톱 처리하고 동아일보 한국일보가 4단으로 다루었을 뿐 나머지 일간지는 1·2단으로 가볍게 보도했다.

해설기사 역시 공정치 못했다. 수사외압으로 방향을 잡은 곳은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문화일보 뿐이고 나머지는 위로차원이라는 안기부장의 변명과 이를 추궁하는 야당의 주장을 단순히 나열 보도했다. 또한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만이 관련 사실을 실었다.

안보 이야기만 나오면 톱 해설 사실로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해온 것이 우리 신문이다. 그러다가도 다음날 정부나 미 국무부가 전쟁징후 없다는 논평을 하면 1-2단으로 처리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 지는 것을 되풀이 해왔다.

현철씨 구속이 임박하고 대선자금에 관심이 몰리면서 정권의 부담이 한계에 달한 요즘 언론은 호흡을 조절하고 있는 것같다. 북한 보트피플기사가 이틀에 걸쳐 과다하게 보도되고 국정표류를 걱정한다는 식의 기사 사설이 줄이어 나오는 한편 대선주자 인터뷰 기사가 시도때도 없이 등장하는 것이 석연치 않다. 대선자금을 밝히라는 사설을 주요 신문들이 모두 썼음에도 불구, 그 말이 공허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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