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단위 일간신문이 잇단 건설사 비리를 보도하면서 익명보도를 남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자 일간신문은 전날 대검찰청이 발표한 재개발·재건축 비리 사건을 일제히 보도했다. 하지만 지면을 본 독자들은 비리 건설사가 어디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대부분의 신문이 비리에 연루된 이수건설, 경남기업, 현대건설, 한신공영 등 유명 건설사명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명공개 기준 제각각=조선·중앙·동아일보 세 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문은 비리 건설회사명을 ‘이니셜’ 처리했다. 한겨레·경향신문·서울신문·세계일보 등은 ‘ㅇ건설’ ‘I건설’ ‘H건설’ 등으로 표기했다. 이는 검찰 기소사건의 경우 실명보도를 해오던 기존 관행과 어긋나는 것이다.

실명을 공개한 신문사의 기준도 제각각이었다. 조선일보는 ‘이수건설, 경남기업, 현대건설, 한신공영’ 등 신문 중 가장 많은 실명을 공개했으며, 중앙일보는 이수건설과 롯데건설 외에는 ‘D건설’ ‘K기획사’ ‘H건설’ 등으로 부분적으로 이니셜 처리했다. 동아일보는 이수건설과 경남기업 사례를 중심으로 보도했다.

비리 건설사에 대한 이니셜 처리는 이번 뿐만은 아니다. 지난 7월3일자에 보도된 현대건설 재건축 비리 때도 조선일보와 한겨레 단 두 곳만이 제목과 기사에 실명을 사용했다. 당시 일부 신문은 ‘판갈이’ 과정에서 실명을 이니셜로 바꾸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검찰 출입기자들의 의견은 익명-실명으로 엇갈렸다. 실명보도가 바람직하다는 데는 대체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기준이 모호하다는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A기자는 “익명 보도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해온 사람은 있었지만 보도에 고려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며 “기자들이 익명 보도를 너무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데스크에게 실명으로 보도해야 한다는 의견을 직접 올렸다는 B기자는 “보도 첨부자료에도  실명이 나왔고, 이수건설의 경우 이미 검찰이 행정처분 통보까지 한 상태였다”며 실명보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명을 사용한 기자들은 이수건설 실명이 유난히 많이 등장한 데 대해 “다른 곳에 비해 ‘죄질’이 안 좋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반면 이니셜을 사용한 C기자는 검찰의 기소 여부를 보도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적발된 업체는 수없이 많은데, 업체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실명을 공개해 보이든 보이지 않든 피해를 가게 하는 게 바람직한가란 고민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건설사 보이지 않는 ‘손’=언론계에서는 이니셜 보도의 원인으로 부동산 광고를 꼽는다. 기자들은 기사 작성이 끝난 후에도 실명이 이니셜로 둔갑한다는 불만을 터트리곤 한다.

미디어오늘이 광고데이터 전문 집계회사 KADD NMR의 자료를 토대로 올해 상반기 상위 200∼300위권 내에 포함된 건설사, 시행사 등 건설업계의 광고비를 집계한 결과 대략 800억 원대로 추정된다. 이는 상반기 전국단위 종합일간신문(내일신문 포함 11개·미디어오늘 집계)의 전체 광고매출액(4863억 원)의 16.5%에 달하는 금액이며, 한달치 광고매출액에 버금가는 규모다.

조중동 3사의 경우 부동산 광고가 전체 광고매출액의 17∼20%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상가·오피스텔 등 분양광고가 상대적으로 많은 경제신문은 그 정도가 심해 20%대 후반에서 많게는 30%까지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현대·LG 등 대형광고주가 신문사 광고매출액에 몇 십%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광고의 절반 이상이 몇몇 대형광고주와 부동산업계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이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말로 흘려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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