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조선일보 주필이 ‘5·18 특파원 리포트’에 게재한 고백록의 내용에 대해 신동아측이 발끈하고 나섰다. 김주필의 회고 내용 가운데 신동아의 ‘광주’ 관련 기사 게재 경위가 잘못돼 있다는 게 신동아측의 주장.

김주필의 회고 내용에 따르면 신동아가 85년 7월호에 ‘광주, 그 비극의 10일간’이란 기사를 게재하게 된 이유는 월간조선 때문이라는 것이다. 월간조선이 ‘광주’를 취재하는 것을 알고 윤재걸 기자로 하여금 ‘광주’의 실상을 쓰도록 했으나 기사의 내용이 너무 사실적이어서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것을 마지막 순간에 월간조선이 ‘광주’를 쓴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앞뒤 가릴 여유 없이 꺼내서 실었다는 것이다.

신동아측은 김주필의 회고에 대해 “터무니 없는 내용”이라며 “신동아의 기사가 어떻게 게재됐는지를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김주필이 그렇게 쉽게 이야기했다니 섭섭하기까지 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기사를 작성했던 윤재걸(현재 이인제 신한국당 경선후보 특별보좌역)씨를 비롯한 신동아측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신동아가 ‘광주’를 기사화하기로 결정한 것은 85년 5월 중순. 월간조선 특별취재팀이 광주에 내려가 취재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윤씨가 당시 출판국장이던 남시욱 씨(현재 문화일보 사장)에게 보고, 신동아도 기사화하기로 결정했다.

남씨는 윤씨에게 “만약의 상황을 위해 취재를 완결지으라”는 지시를 내렸고, 윤씨는 신동아 6월호의 마감을 끝낸 뒤 5월 18일 광주로 내려가 마지막 보강 취재를 마친 뒤 기사를 작성했다. 이 과정에서 신동아의 방침을 안 문공부가 기사화하지 말도록 압력을 가했으나 신동아측을 이를 거부했다. 윤씨의 원고가 출고된 후 신동아측은 당시의 폭압적인 상황을 감안, 단어 하나하나를 세심히 검토, 당초 3백50매이던 원고 가운데 1백매를 삭제하기도 했다.

한편 윤씨를 비롯, 당시 신동아 부장이던 이정륜(현재 특수건설협회 감사)씨와 남시욱 씨는 신동아가 배포된 직후인 85년 6월 25일, 보안사에 의해 서울 송파 분실로 연행돼 고초를 겪기도 했으며, 동아일보의 출판국 기자들과 일부 편집국 기자들은 연행된 세명의 석방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신동아측의 이같은 증언에 따르면 월간조선이 ‘광주’를 취재하는 것을 알고 윤재걸 기자로 하여금 ‘광주’의 실상을 쓰도록 했다는 김주필의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월간조선이 당시 보도불가의 족쇄에 묶여있던 ‘광주’의 벽을 깼다고 보기도 어렵다. 월간조선이 금기의 벽에 부닥쳐 ‘광주’에 접근을 못하고 있을 때 이미 신동아는 ‘광주’의 실체에 다가서 있었기 때문이다.

윤씨가 ‘광주’에 매달리기 시작한 것은 항쟁이 ‘종료’된 직후. 자신의 동생을 비롯한 가족들이 항쟁에 참여한 곡절을 간직하고 있던 윤씨는 항쟁 당시 담양 근처의 총격전 때문에 광주시내에 진입하지 못하고 서울로 철수한 경험을 곱씹으며 광주를 찾곤 했다. 특히 신군부에 의해 해직된 이후에는 전국사회운동협의회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광주’에 매달렸고, 84년 복직 후에도 진상 캐기를 멈추지 않았다.

또한 자신이 취재한 내용을 기초로 ‘광주’를 기사화 할 것을 여러 차례 요구하기도 했다. 따라서 김주필의 ‘선점 논리’에 따르더라도 신동아측의 주장은 힘을 잃지 않는다.

특히 월간조선이 ‘광주’를 쓴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앞뒤 가릴 여유 없이 기사를 꺼내 실었다는 김주필의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윤씨가 기사를 출고한 뒤 원고를 검토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진통을 겪었던 당시의 상황이 김주필의 주장과는 배치되기 때문이다.

당시 윤씨는 ‘랜드로바 윤’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랜드로바 밑창이 다 닳도록 광주시내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는 윤씨를 보고 광주시민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그만큼 윤씨는 유명했다. ‘광주’에 관한 한 진상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언론인으로 그의 위명은 광주를 넘어 서울에도 퍼져 있었다.

이같은 상황을 모를 리 없는 김주필은 월간조선의 ‘선도적인’ 취재를 강조하고 나섰고 그로 인해 겪어야 했던 불운을 한탄했다. 한 기자, 더나아가 비록 경쟁지이긴 하지만 동료 언론인들의 일관된 노력을 폄하하면서까지 김주필이 움켜잡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한 기자의 기자정신과 자사의 정당성의 강조, 이 어울리지 않는 접점에서 김주필의 속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